터미널에 도착하는 시간은 출발시간보다 한참이나 이르다. 언제나 그렇다. 병적인 불안감 때문에 느긋해질 수가 없다. 발매된 티켓을 보면서도 제날짜, 제시간에 제대로 예약한 것이 맞는지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그 안에 버젓이 쓰여 있는 플랫폼을 찾아가면서도 이곳에 들어오는 버스를 타는 것이 맞는지를 확신하지 못한다. 검표를 마치고 늘 앉던 자리에 앉았는데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는다. 문제가 있었으면 기사님이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과 혹시 그도 사람인데 실수한 거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정신없이 뒤엉킨다. 버스가 출발하고 나서야 서서히 안정을 찾기 시작하는데, 이미 출발해 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체념이 즉효약처럼 작용한 탓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대범하고 무심하다. 이 버스가 어디로 도착하든 그곳은 결국 버스터미널일 것이고, 거기서 집으로 돌아오는 표를 사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풀어진다. 혹 일이 잘못되더라도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그만이라는 배짱도 생긴다. 내가 이런 일로 전화하면 다들 으이구 하며 싫은 잔소리를 늘어놓기야 하겠지만 결국은 달려와줄 것이다. 그제야 나는 긴장을 풀고 좌석에 편히 몸을 기대며 창밖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생긴다. 낯선 버튼을 조심조심 만져가며 등받이와 발받침의 기울기를 조절해 본다. 버스는 목적지가 아닌 곳에 도착한 적은 없다, 경험으로 얻은 확실한 정보를 그제야 확신하며, 비로소 자신의 불안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선다. 긴 여정이 시작되기 전에 마쳐야 하는 이 정신적인 여정으로 나는 버스가 출발할 때부터 이미 녹초가 된다. 그럼에도 떠나기를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오로지 목적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 때문이다. 그 사람을 발견하고는 다급히 뛰어가는 나의 허물어진 표정 때문이다. 그곳에 나의 완전한 진심과 기쁨이 휘몰아친다. 나는 거추장스러운 육신을 밀며 도시의 경계를 넘는다. 나의 몸이 정신과 합치되는 지점을 향해 손을 뻗는다. 잡는다. 주먹을 펴지 않는 버릇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2021년 11월 15일
1년에 최소 4번은 버스터미널에서 시외로 가는 버스를 탄다. 집순이인 나에게는 매번이 도전이고 시험 같다. 그래도 한 5년 정도 반복해서 방문하는 도시가 생기고 나니, 적어도 그곳에 갈 때만큼은 조금 여유를 부릴 수도 있게 됐다.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안 좋은 일을 상상하기보단 곧 만나게 될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여기엔 한 친구의 공이 컸다. 여느 때처럼 친구를 만나러 다른 도시에 갔는데, 미리 도착해 있던 친구가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를 알아본 나는 반가워서 손을 붕붕 흔들고, 신호가 바뀌자마자 총총거리며 뛰어갔다. 친구는 그 모습을 모두 영상을 찍었다가 나중에 내게 따로 보내주었는데, 그걸 보고서 나는 내가 그 친구와 만나는 시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알게 됐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일을 일어나지도 않을 나쁜 생각 때문에 미루거나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먼 도시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 여전히 불안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친구가 찍어준 영상 속의 내 얼굴을 떠올린다. 그 얼굴을 기다리고 있을 친구의 얼굴도 떠올린다. 우리가 우리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거라는 확신을 얻는다. 더는 여행이 불안해지지 않는다. 여행의 재미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2024. 0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