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살아온 베른에서 두 발이 닫지 않는 듯한 기분을 느낀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으로 돌아와 이전의 생활을 이어갑니다. 이제는 어느 쪽이 그레고리우스에게 더 가까운 장소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베른에 살던 그레고리우스가 그레고리우스 자신인지, 리스본에서 프라두의 생애를 알아가는 그가 본연의 그레고리우스인지. 한 권의 책은 여행과도 같고 그 책을 읽고 난 뒤의 자신은 이전의 자신이 아니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요. 그 말이 실현되는 과정을 그레고리우스를 통해 목격하는 기분이 듭니다. 열차를 타기 전과 열차에서 내린 나는 얼마나 다를까요? 그것이 다르다면 열차를 타기 이전의 나는 더 이상 나라고 할 수 없는 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근거로 지금의 내가 달라졌다고 느꼈습니까?
이처럼 소설은 한결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자신이 달라졌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대부분 다른 사람”이라는 직언으로 그레고리우스의 여행은 필연적(혹은 운명적)이었다는 입장을 바탕으로 깔면서요. 소설을 읽다 보면 그레고리우스의 여행은 그에게 반드시 필요했다는 생각을 넘어 나 역시도 그런 여행을 떠나야만 한다는 요구마저 들리는 듯한데요. 이는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는 있는지를 끝없이 시험하는 감독관의 목소리 같습니다. 머리로는 알지요. 나는 떠나야 한다는 것을. 자신을 아는 일은 삶을 주체적으로 산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또 알지요.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던지고 떠날 만한 각오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생겨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되는 대로 하루를 삽니다. 그레고리우스가 키르헨펠트 다리에서 포르투갈 여자를 만났듯이, 프라두가 친구의 연인인 에스테파니아를 만났듯이. 갑자기 세상이 달라 보이고, 지금까지의 규칙이 모두 무너져내리는 기이한 우연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저 한 명의 어부가 되는 건지도 몰라요. “만족하냐고? 다른 삶을 모르는 걸!(543쪽)” 물론 이쪽도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편에 서면” 그것으로도 “존엄”을 지키는 삶이니까요.
그러나 우리의 그레고리우스는 여행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프라두의 정신과 내면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핵심 인물들을 차례로 만나며 그들이 아는 것보다 프라두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됩니다. 그로써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배워가는 과정이 저는 볼 때마다 신기해요. 한 사람이 쓴 글과 그 글을 쓴 사람에 대한 증언으로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새로 배”운다니. 그 과정을 읽다 보면 인생이란 “타인의 법정”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가혹한 시간처럼 느껴지다가도 결국 그 법정이란 것을 자신만의 무대로 만드는 일이 인간의 숙명이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레고리우스가 글만 보고 반해서 쫓아다니기 시작한 프라두도 결국 그런 숙명에 매달리다가 글을 쓴 것이지 않습니까? “삶을 향한” 그의 “무서운 허기”는 “물리지 않는” “삶의 원형질”, 즉 “완벽한 삶의 무대”를 갖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를 위해 타인을 취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 파고들기에 지나지 않았던 거죠. 이 대목에서 저는 아아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면 가진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훌쩍 떠날 수 있어야 하는 데다가 한없이 내 안으로만 파고들어야 하는 거구나…… 또 생각하고 말았습니다만.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하는 일이 이토록 어렵기에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사람이 이 책을 써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던 시간이었습니다. “나를 잃어버리는 병”을 자처하여 그레고리우스처럼 할 사람은 드물 테니까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우리는 매일 조금씩 자신을 잃어가지 않습니까? 잃어버리는 줄도 모른 채요. 그 방향으로 잃어버리는 것과 그레고리우스의 방향으로 잃어버리는 것 중 어느 쪽이 자신에게 더 나쁜 경우가 될지. 어부가 되느냐, 그레고리우스가 되느냐. 저는 또 시답잖은 생각에 붙들려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지난 주엔 친구와 십카페를 다녀왔습니다. 제 덕메 놔플리가 키링으로 달고 다녀주어서 저는 늘 호강하고 있어요. 노아의 생일달인 2월 예약은 대차게 실패했지만(울지 않습니다). 그래도 생일달이니까!! 말랑하고 뿅아리하게 스쿼트도 열심히 하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내야겠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다 읽을 수 있을지 무서웠는데, 노아 얼굴 보며 여기까지 왔네요. 언제나 느끼지만, 덕질이란 인간에게 참 이롭습니다. 저는 그럼 다음주에. 최애의 리스본행 최종화를 들고 오겠습니다. 모두 잘 자요!
놔꿈(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