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동해역사문화연구회에서 이도경로당 부지 내 별도의 가건물에 잘 보관되어 있는일제강점기에 소화용으로 사용하던 완용펌프를 견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때 경로당 측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실물을 직접 보았는데 완용펌프에 걸려있는 안내판의 설명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도동 의용소방대 완용펌프(소방장비)
일본강점기 때 조직된 이도리 의용소방대는 1927년 최도희 초대 대장으로 조직되어 그 후 김진극, 김진혁, 김형태, 최석대, 박순범, 최윤희, 김한중 등이 활약하였다.
완용펌프는 초대 대장인 최도희(1941년 작고) 대장이 동경에서 최신 소방장비를 보고 크게 깨달아 귀국 길에 그중 하나를 사 온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우리나라 가옥은 거의 목재이고 지붕도 짚으로 이은 집이라 불이 났다 하면 전소가 되었다.
이도 마을은 의용소방대를 조직해서 완용펌프, 갈퀴, 도기, 구조막, 구조대 등의 장비를 갖추고 교육과 연습을 반복하였다. 완용펌프는 완용펌프를 젓는 대원들의 단합된 힘과 관창수의 정확한 사수 능력이 중요하다.
1970년 2월 6일 삼척산업(현 동부메탈) 화재진화, 북평역 기관차사무소 화재진화, 철도관사 화재진화, 양양산불 진화, 울진‧삼척 공비사건 야간잠복조, 갯목 할미바위 앞길 물꼬트기 등 화재진화 외에도 지역을 위한 일에도 앞장서 활약하였다. 월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단지 투철한 희생정신과 봉사정신만으로 힘든 훈련을 하고 불이 났다 하면 목숨을 버릴 각오로 불을 껐던 사람들이 의용소방대였다.
일제강점기 때(90여 년 전 추정) 들여온 완용펌프를 통하여 고장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선인들의 숭고한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장비이다.
전시된 완용펌프는 이도동 의용소방대가 관리하다가 이도동 재산관리위원회에서 인수하여 관리하여 오던 중 2017년 11월에 북평동행정복지센터에 기증하여 이곳에 전시하게 되었다.”
이 설명에서는 1927년(소화 2년)에 ‘이도리 의용소방대’가 설치된 것으로 나오나 현재 동해시의 각 기록물에는 이도리 의용소방대의 정확한 명칭, 설치년월일 및 조직에 대하여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동해역사문화연구회 홍협 사무국장이 강원도에서 발행한 ‘강원도보(江原道報)’ 자료를 일부 구하게 되어 필자가 그 자료를 검색해본 결과 ‘이도리소방조(梨島里消防組)’의 설치에 대한 강원도 고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원도 고시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총독부 강원도 고시 제24호
삼척군 북삼면 이도리(梨島里)에 아래와 같이 소방조를 설치함
소화 2년(1927년) 4월 2일 조선총독부 강원도지사 박상준(朴相駿)
기(記)
명칭: 이도리소방조(梨島里消防組)
一. 설치구역: 이도리, 세운리(洒雲里, 쇄운리) 일원
一. 설치년월일: 소화 2년(1927년) 4월 1일
一. 조원수(組員數): 조두(組頭) 1명, 부조두(副組頭) 1명, 소두(小頭) 3명, 소방수 63명
一. 조직: 조선인
-이상- ”
이 기록에서 정확한 명칭은 ‘이도리 의용소방대’가 아니라 ‘이도리소방조(梨島里消防組)’이며, 소화 2년(1927년) 4월 1일에 설치되었고 조원수(組員數)는 조두(組頭) 1명, 부조두(副組頭) 1명, 소두(小頭) 3명, 소방수 63명으로 총 68명이었으며 전부 조선인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견학 당시 완용펌프 외 각 소방장비도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이러한 완용펌프와 각 소방장비뿐 아니라 현재 송정동에 있는 옛 송정소방조 건물 등은 대표적인 동해시의 근대적 소방 기구와 시설이므로 이를 잘 보존하여 향후 박물관이 건립되면 후세에 좋은 교육자료와 더불어 지역사의 귀중한 연구 자료로 활용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