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지인들과 함께 상원사에 들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상원사 동종을 보았는데 동종의 아름다움과 함께 종의 맨 위에 있는 용머리 장식에 주목하게 되었다. 예전에 보았던 성덕대왕 신종도 종의 맨 위에 상원사 동종과 유사한 용머리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이 생각나면서 왜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 동종은 맨 위에 용머리 형상을 한 장식이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으며 그 내용을 간략하게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상원사 동종(上院寺 銅鐘)은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상원사에 있는 남북국 시대의 구리종으로 725년(성덕왕 24)에 주조되었으며, 이는 현존하는 한국의 최고 오래된 종으로 성덕대왕 신종보다 46년 빠르다.
지금은 이 동종이 상원사에 있지만, 원위치는 조선 시대 안동의 읍지(邑誌)인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안동대도호부 관아의 문루에 걸려 있었으며 조선 예종 1년(1469) 왕명에 의해 상원사로 옮겨졌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전국의 범종들이 파괴되어 사라질 때 세조가 역사성 깊은 이 종을 보존하라는 명을 내리고 사망한 후 아들인 예종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상원사에 이 종을 보관하게 하고 세조의 명복을 비는 원찰(願刹)로 삼은 덕분에 상원사 동종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종으로 남을 수 있었다.
상원사 동종은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龍鈕, 종의 꼭대기 부분의 장식)가 용머리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용뉴 옆에 음통(音筒)이라는 기구가 달려있는데 이것은 한국의 동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 중의 하나는 12지신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많은 동물 중에서 왜 종의 꼭대기 부분의 장식이 용머리 형상을 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용이 낳았다는 아홉 자식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용이 낳았다는 용생구자(龍生九子, 용이 낳은 아홉 자식)는 각각 그 모습과 성격이 다르며 그 성격에 맞는 장소에서 각자 활약하나 용은 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것을 ‘용생구자불성룡(龍生九子不成龍)’이라고 하며 형제들의 성격이 다른 것을 가리킬 때도 쓰이는 말이다.
용생구자(龍生九子)의 성격과 특징적인 활약에 대해 살펴보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비희(贔屭)
성격: 무거운 것을 짊어지는 걸 좋아한다.
거북 모양으로 무거운 것을 지는 것을 좋아해 비석 받침에 사용하며 수명과 복을 상징한다.
둘째: 이문(螭吻)
성격: 높은 곳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치문'이나 '치미'라고도 불린다.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며, 불을 막는 능력이 있어 건물 지붕의 장식에 사용하며 해태와 유사하다.
셋째: 포뢰(蒲牢)
성격: 우는 걸 좋아한다.
바다에 사는 용으로 고래를 무서워하여 보기만 하면 종(鍾)의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운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주로 불교에서 종 위에 조각하는데, 고래 모양으로 깎은 당(撞, 절에서 종이나 징을 치는 나무 막대)으로 종을 쳐서 놀라게 하여 우렁찬 소리를 내게 한다.
넷째: 폐안(狴犴)
성격: 정의를 수호하는 걸 좋아한다.
정의를 수호하는 호랑이 형상으로 감옥 문에 세워져 범죄자에게 경각심을 준다.
다섯째: 도철(饕餮)
성격: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한다.
모습은 늑대를 닮았고 음식을 탐하는 악수(惡獸)로, 솥뚜껑에 새겨져 식욕과 탐욕을 경계한다.
여섯째: 공복(蚣蝮)
성격: 물을 좋아한다.
'이수'라고도 한다. 물을 좋아해 다리 기둥이나 아치 부분에 주로 조각을 새기며, 강을 따라 들어오는 악귀들을 막는다. 생긴 것은 용을 닮았다고 한다.
일곱째: 애자(睚眦)
성격: 죽이는 걸 좋아한다.
늑대를 닮았으며 험상궂게 생긴 인상이 많고 살생을 좋아해 칼의 고리(환두, 環頭)나 창날에 새기며 관우의 청룡언월도에 등장한다.
여덟째: 산예(狻猊)
성격: 불과 연기를 좋아한다.
금예(金猊)라고도 한다. 사자를 닮은 용이며 불과 연기를 좋아해 향로에 새겨진다. 절의 불좌에 앉아 있는 사자의 동상이 바로 산예이며 불교에서는 수행자로 묘사된다.
아홉째: 초도(椒圖)
성격: 닫기를 좋아한다.
개구리와 소라를 닮았다는 기이한 형상의 용으로 닫는 것을 좋아해 주로 문고리에 많이 장식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용뉴가 용머리 형상인 것은 용생구자의 셋째로 고래를 무서워하여 우는 걸 좋아하는 포뢰(蒲牢)를 형상화 한 것이다.
또한 우리가 사찰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석 받침에 사용되는 거북은 무거운 것을 짊어지는 걸 좋아하는 용생구자의 첫째인 비희(贔屭)를 형상화한 것으로 용생구자(龍生九子)는 우리 문화재 속에서 여러 형태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형태의 많은 용생구자를 보았지만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이제라도 용생구자를 잘 이해하고 문화재를 감상한다면 아는 만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