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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에 기록된 삼척의 풍속(風俗)

by 강동수

이 글에서는 1,5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대략 100년 정도마다 삼척지역의 풍속이 어떻게 변하여 왔는가를 보고자 하였으며, 옛날 삼척 토착민의 풍속을 치켜세우거나 깍아내릴 의도가 전혀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옛 기록을 들추어 봄으로써 현재 우리의 풍속은 어떻게 변화해 나가고 있는지 또 자본주의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현대문명의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풍속은 앞으로 어떻게 기록될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대표적인 삼척의 풍속에 대한 몇 가지 기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강원도 > 삼척, 1530년


【풍속】

무당과 귀신을 믿는다. 사람의 성품이 대체로 교활하다. 오금잠(烏金簪)에 제(祭)한다. 고을 사람이 잠(簪, 비녀)을 작은 함에 담아, 관아(官衙) 동쪽 모퉁이 나무 밑에 감추었다가 단오날이면 끄집어내고, 제물을 갖추어 제사한 다음 이튿날 도로 감춘다. 전해오는 말에는, 고려 태조 때 물건이라 하나 제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예전부터 전해오는 일이므로 관에서도 금지하지 않는다.


* 오금잠제: 음력 5월 단오를 기해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오금잠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마을굿 형태로 신라 또는 고려 때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삼척지역의 전통 행사이며 오금잠제에서 모시는 신령의 신체는 오금잠(烏金簪), 즉 비녀의 일종이다.


【風俗】

信巫鬼。人性多巧。祭烏金簪。邑人盛簪小函,藏於治所東隅樹下,每遇端午,吏民取出,奠而祭之,翌日還藏。諺傳高麗太祖時物,然未審其所以祭之之意。遂成故事,官亦不禁。



오금잠제-1-삼척시청.png 오금잠제 Ⓒ삼척시청



2.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 강원도 > 삼척, 조선 현종 대(1660~1674)

【풍속】

사람들의 성품이 우직하고 성실하며, 즐기고 욕심내는 것이 적다. 영동(嶺東)의 여러 고을이 대개 이와 동일하다. 습속이 명주(溟州)와 같다. 《지지(地志)》 귀신을 믿는다. 본조 이산해(李山海)가 이르기를 “영동의 풍속은 귀신을 믿는데, 이르는 곳마다 모두 그러하다.”라고 하였다. 백성들이 검소하고 인색하며 대부분 질박하다. 《척주지》


【風俗】

人性愚愨,少嗜欲。嶺東諸郡大槪同此。習俗同溟州。地志。信鬼神。本朝李山海云:“嶺東俗信鬼神,所至皆然。” 其民儉嗇多質。《陟州志》。

3. 여지도서(輿地圖書) > 강원도 > 삼척, 1757년(영조 33)∼1765년(영조 41)

【풍속】

무당과 귀신을 믿는다. 검소하며 꾸밈이 없다.

【風俗】

信巫鬼。儉嗇多質。

4. 관동지(關東誌) > 삼척, 1829년(순조 29)∼1831년(순조 31)


【풍속】

무당과 귀신을 믿고, 사람의 성품이 기교가 많았으며, 오금잠(烏金簪)에 제사 지낸다. 고을 사람이 비녀를 작은 함에 담아 성황사(城隍祠) 곁의 한 칸에 소장해 두었다가 단옷날 관리와 백성이 제사를 지낸다. 전해오는 말에는, 고려 태조 때 물건이라 하는데 매우 요상하고 괴이하여 백성의 근심이 컸다. 성암(省菴) 김효원(金孝元)이 수령이었을 때 비녀를 석함(石函)에 담아 땅속에 묻어 그 근심이 마침내 끊어졌다. Ⓒ『국역 관동지』

【風俗】

信巫鬼人性多巧祭烏金管邑人盛營小函藏於城隆祠之傍一間遇端午吏民祭之義傳高麗太祖 時物騁妖怪大爲民患省蒂金孝元爲守時盛醬石函埋之地中其患遂絶

5. 강원도지(江原道誌), 1940년


【풍속】

무당과 귀신을 믿는다. 사람의 품성은 꾀가 많다. 금오잠(金烏簪)에 제사 지낸다. 고을 사람들이 작은 상자에 비녀를 담아 치소(治所)의 동쪽 모퉁이 나무 아래에 감추어 두었다가 매년 단오(端午)에 관리와 백성이 꺼내어 정중하게 모셔놓고 제사 지내고 다음 날 다시 간직해둔다. 속언(俗言)에 고려 태조 때의 물건이라고 전하는데 그러나 비녀에 제사 지내는 까닭은 알지 못한다. 마침내 옛부터 전해오는 전통적인 일이 되어 관청에서도 금지하지 않았다. 《여지승람》 광업과 어업에 힘쓰고 공업과 상업에 노력한다.

* 여지승람: 동국여지승람. 1481년(성종 12)에 총 50권으로 편찬된 조선 전기의 대표적 관찬 지리서.

【風俗】

信巫鬼 人性多巧 祭金烏簪 邑人盛簪小函箴於治所東隅樹下每遇端午吏民取出奠 而祭之 翌日還藏諺傳高麗太祖時物然未知其所以祭之之意遂成古事官亦不禁 ○輿地勝覽 務鑛漁 進工商


6. 강원도지, 1956년


【풍속】

인성이 초초영리(稍稍怜悧)한 편으로 상호 협심(協心)이 적고 사리지폐(私利之弊)가 유(有)하며 대체 어농광업(漁農鑛業)을 주무(主務)로 하고 무복(巫卜)을 숭상하며 조숭자립력(祖崇自立力)이 강하고 근검하며 언어에 있어 특유한 방언이 유(有)하니라.

* 초초(稍稍): 점점, 점차, 조금씩.

* 영리(怜悧): 눈치가 빠르고 똑똑함. 꾀가 많고 세상 물정에 밝음.

* 사리지폐(私利之弊):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는 폐단.

* 조숭(祖崇): 조상 숭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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