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 어떻게 이렇게나 잘 성장했는지 찬탄이 절로 나는 아이들이 있다. 당장에라도 교사의 옷을 벗고, 육아 선배이신 학부모님께 달려가 상담을 받고 싶을 정도다. 특히나 마음에 들지 않는 아들의 모습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 불쑥 올라오는 화를 터트리거나 꾹꾹 누르는 힘겨운 싸움에 마법 같은 주문 따위가 있길 바란다. 실제로상담을 하면서 육아팁을 넌지시 갈구한 적이 있다.
"어머니 OO를 어떻게 그렇게 잘키우셨나요?"
"(웃음) 글쎄요. 전 별로 한 게 없는데요."
허탈한 대답앞에 속으로 '에이, 거짓말'하며 비법 공개 거부로 접수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인재를 함께 키워 가도록 동아줄하나만내려주시지,박한 답에 못내 아쉽다.
아들은 자연을 좋아한다. 곤충을 덥석 덥석 맨 손으로 잡는 것은 기본이고 어려서부터 어딜 가나 자연 현상이 궁금하여 멈춰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쫑알대곤 했다. 데리고 걸으면 목표 행선지 직행은 언제나 머릿속의 꿈일 뿐, 계획의 지체 내지는 차질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라는 걸 학교에 보내면서 알았다. 방과 후면 친구들과 축구를 하거나 학교 뒷산 자연학습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침, 숲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들에게 딱 어울리겠다 싶어서 팀을 꾸려 작년부터 체험활동을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너무 좋아한다.처음에는 한 달에 한번 말고 매주 가면 안 되냐고 성화였다.
6개월 텀이 끝나고 올해도 연장을 하려고 팀원들에게 의사를 물었다. 모두가 아들 같지는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았다. 빠지겠다는 아이들이 몇 명 있어서 인원을 추가로 모집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문의 사항을 정리하여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한참 후 전화벨이 울린다.뜻밖에 선생님의 이별 통보를 전해 들었다. 다음 달 마무리 수업 후, 선생님 대신 다른 분과 함께 연장해야 할 것 같다고 하신다. 워낙 아이들을 잘 이끌어주시던 분이라 아들이 좋아했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떠나는 시점에서 꼭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수업한 아이 중에 몇 손가락 안에 들어요. 집중력도 좋고, 과업을 끝까지 해결해 내려는 의지나 리더십이 정말 뛰어나요. 아는 게 많아서 제가 무슨 말을 하면 추가적인 지식들도 자기 말로 잘 정리해서 이야기하고요. 서율이 덕분에 수업하다가 그냥 지나쳤던 것도 아이들에게 더 많이 알려줄 수 있었어요. "
이것이 내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맞는가? 머리가 띵하게 혼미해져서 아무 말도 못 했더니 선생님께서 대뜸 그러신다.
"(웃음) 어머니, 집에서랑 다른 모습이죠?"
"네."
"애들 다 그래요." (아니, 내가 학부모님께 드리는 말을?)
이 녀석 참 정치적이네. 집에서는 엄마한테 맨날 혼나는 게 일상인데.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라서 그런지 선생님께는 다른 차원의 모습을 시현해 드렸구나. 아들 칭찬에 기분 좋은 것은 사실이라 붕떠 있는데불쑥 들어온질문에 허가 찔렸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신 거예요?"
앗, 내게 그토록 갈급해했던 육아팁질문을내가 받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던 난감한 상황에서 머릿속을 아무리 뒤지고 더듬어 봐도 답이 없다.
"모르겠어요. 뭐 한 거 없이 본인이 그렇게 컸네요?"
이런, 그때 들었던 말 그대로 도돌이표 대답까지. 사실, 도무지 내가 어떻게 키웠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당자자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선생님께 들은 말로 폭풍칭찬의 기름을 바른 직후아들에게 물었다.
"너 어떻게 이렇게 잘 컸어?"
"엄마가 엄해서 그런 거 같아요."
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내뱉은 답이다. 맨날 혼났던 게 맞나 보다. 유일하게 찾은 답이 엄한 엄마의 육아태도라니.
한 선생님이 질문하셨다.
"힘들고 어려운 교실 상황을 잘 헤쳐나가 본 선생님만의 노하우나 팁이 있으신가요?"
한 선생님이 대답하신다.
"글쎄요. 그 당시에는 힘들고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조차 없어서 허탈하기도 했어요. 그냥 마음을 쓰고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지나고 나니 나중에야 효과가 있었구나를 깨달았어요. 노하우나 팁?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고 뭔지는 모르지만 그런 거 같아요."
정답이다. 때로는 정해진 매뉴얼이나 깔끔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비법이 없어도 지나고 나면 꾸준했던 마음씀이 퇴비로 깔려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다.내 아이의 모든 영역이 핑크빛은 아니지만 적어도 본인의 관심 분야에서 활짝 만개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난 것에 기쁜 하루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계속 엄한 엄마가 되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