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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혜정 Mar 23. 2024

쭈글이 교사 엄마

엄마는 못하지만 교사는 할 수 있는

"선생님 언제 오세요?"


 가정방문의 날, 아들이 신났다. 오실 시간이 가까워 올 수록 묻고 또 묻는다. (시계를 봐라 녀석아!)

현관 벨소리에 쪼로로 달려 나간다. 지하 주차장에서 올라오시는 중인데 벌써부터 문을 열고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나 좋을까. 한참만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환한 미소로 얼굴을 내미신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안길 것 같이 흥분해 있던 녀석이 갑자기 쪼그라들어 수줍게 웃고만 있다. 요란법석을 떨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숨 죽은 배추처럼 경직된 모습, 코미디가 따로 없다.

 

 아들의 하루는 선생님의 가정 방문 준비로 분주했다.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아침부터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고 한다. 특이 성으로 번호가 1번이다 보니 아들은 선생님 책상 바로 앞자리다. 아침에 오면 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조잘대며 선생님께 보고하기 바쁘다고 한다. 쫑알이를 통해 집안 비리(?) 다 폭로될까 걱정스럽다. 담임 선생님이 귀띔해 주신 가정방문 당일 아침 레퍼토리는 이러했다.


"선생님 오늘 저희 집에 오시죠? 뭐 좋아하세요?"

"왜?"

"선생님 좋아하는 음식 사놓으려고요. 말씀해 주셔야 알죠."

"준비 안 해도 돼."

"아니에요. 좋아하는 거 알려주시면 살게요."


 사전 조사, 장보기, 테이블 세팅, 선물 증정까지 손님 준비에 하루 종일 바빴던 일상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물론, 아이와 함께인 남편이 분주했을 것이다.




 선생님께 듣는 아들의 학교 생활은 내 아들이 맞는지 신통방통한 물음표와 느낌표가 오간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공동체를 이루어야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말이 찰떡같이 아들의 삶에 적용되고 있는 모양새다. 마냥 어린아이와 같은 가정에서의 모습 학교에서는 진정한 인간으로 환골탈태하고 있는 느낌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옛말이 예외적인 부분도 있나 보다.

 

 "외동이라서 함께 나누는 걸 잘 못할 수도 있는데 서율이는 친구들에게 주는 걸 참 잘해요."


 반짝이 색종이, 한지 색종이 등 특별한 종류의 색종이를 사 모으더니 학교로 들고 간 적이 있다. 알고 본인만(?) 애지중지 여기는 색종이를 모든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모양이다. 선생님의 시선에서 기특함이 엄마에겐 꽤나 의외적 혹은 이례적인 접점으로 찍히는 이야기들이 한 보따리다. 듣보니 살짝 당혹스럽다. 교사의 옷을 껴 입은 어설픈 엄마의 당황스러움이랄까. 아이는 큰 문제없이 잘 크고 있는데 괜한 걱정으로 아이를 미덥지 않게 여겨온 미안함이랄까. 가뜩이나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엄마로서 쭈그리가 되는 한방이 크게 날아든다.


 "서율아, 서율이 방도 있는데 혼자 자 보는 건 어때? 오늘 혼자 자볼까?"

"네!"

"우와, 그럼 혼자 잘 자고 내일 선생님한테 어땠는지  얘기해 줘!"


 작년부터 수면 분리를 시도했지만 번이 실패로 끝났다. 때가 되면 품에서 벗어나겠거니 하고 실상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주셨다. 설마 했는데 우렁차게 답하는 아이를 보며 과연? 이란 의구심부터 들었다. 그런데...

 아이는 그날, 바로 자신의 방에서 잠들었다. 물론 새벽에 깨서 엄마를 부르긴 했지만 선생님이 다녀간 이후로 잠자리를 바꾸는 것 이틀 동안 해낸다. 엄마의 말은 휘발되버리지만 교사의 말은 통하는, 교사 엄마의 아이러니한 KO 패다. 그래도 선생님 덕분에 자연스레 수면분리가 될 것 기대해 본다.




 하루 차이로 엄마의 자리에서 내려와 교사로서 학부모 총회 준비. 어머니들 자녀의 학교 생활이 얼마나 궁금하실까  번 천 번 공감하며 아이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나누었다. 사실, 부모의 걱정에 비해 아이들은 학교에서 잘 생활하고 있다. 불과 하루 만에 깊이 깨달은 바다. 엄마의 시선과 교사의 시선이 교차하 적절한 균형감을 찾아가게 된다.


 "아이들이 엄마의 말보다는 선생님의 말을 더 잘 듣는 것 같아요. 그러니 잔소리할 것이 있으면 저에게 알려주세요. 쓴소리는 교사인 제게 맡기시고 스트레스 많이 받는 고3 자녀들은 격려와 다독임을 부탁드립니다."


 엄마로서는 자신 없지만 교사로서는 먹힐 법한 허세를 부려보았다. 엄마의 잔소리는 귀가 따갑다. 그래서 휘발성이 강하다. 반면 선생님의 한마디는 훨씬 강하다. 아이를 움직이는 힘 다. 칼릴 지브란이 말했다. 교육은 씨앗을 심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자라게 하는 것이라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주입되는 잔소리가 아니라 심긴 가능성을 꺼내어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자극이다. 내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남의 아이를 돕는 지혜와 더불어 자녀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듬어지는 것 같다. 엄마로서 교사로서 잘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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