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답다. 코로나가 끝나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속내는 여드름 난, 혹은 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가리기 위함이다.
"멀리서 봐도 예쁘지만 가까이서 보면 더 예뻐!"
한 선생님께서 노란 리본과 함께 세월호 아이들을 기리는 스티커를 배달해 주셨다. 반 아이들에게 줄 몫을 챙기다 보니 잔잔했던 마음에 찡한 파문이 인다. 매년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세월호 추모곡 <천 개의 바람이 되어>을 들으며 배가 가라앉는 화면 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아냈던 시간들을 꺼낸다. 한때 잠깐 같은 교무실에서 근무했던 동료 교사가 단원고로 일터를 옮겼고, 차디찬 세월호 현장에 있었다. 뉴스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설마, 아니야'를 반복했다. 결국 그녀가 학생들과 함께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사실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가슴이 미어졌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나와 나의 학생들이 있었다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즐거웠고 선생님들은 그들의 추억을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비켜나간 운명, 애통함과 미안함이 한데 섞여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헤매었다.
지금 세대의 아이들은 세월호 이후 수학여행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은 서로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밝고, 여전히 순박한 앳된고딩이다. 봄꽃의 향연에 마음이 흔들려도 교실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할 고3들,이들에게 따뜻한 봄을 안은 단체 사진을 남겨주고 싶다.
"자치 시간에 사진 찍으러 나가자."
"교실 밖으로요?"
"그럼, 나가야지. 다음 주엔 비 온다니 오늘이 날이야. 운동장으로 가자!"
교문을 나선 학교 밖은 활짝 핀 꽃들이흐드러지는데 교내는 왜그리 빈약한지. 공강 시간에 학교 구석구석을 돌고 돌아 찾은 곳이 겨우 운동장이었다.다행히 구석진 한 켠의 봄이라도 햇살만은 따사롭다.
"선생님, 여기 보다 저기가 좀 더 꽃이 피었어요. 저기로 가요."
풍성한 꽃이 아닌, 덜 빈약한 나무를 찾아 이동하는 아이들이다.함께 밖으로 나오니 그래도 좋은 모양이다. 아침에 읽어준 시구를 한 단어씩 A4 용지에 크게 출력해서 나눠주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하얀 종이를 쥐어들고 자기들끼리 시어를 맞추고 자리를 잡고 복작거리는 모습이 참 예쁘다. 가까이 바라본 예쁜 풀꽃이다. 풀꽃 안은 봄, 봄꽃을 배경으로 풀꽃들의 순간을 남겼다. 스쳐 지나가는 시절은 포착해야 한다. 그 뜻을 따라주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사진을 찍고 나서 남은 10분이라도공놀이하기에여념 없는 남학생들. 세월을 아껴(?) 쓰는 노력이 가상하구나. A4 용지를 스탠드에 버려두고 햇살 품은 족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활기찬 녀석들의 에너지에 흐뭇하다. 풀꽃의 시어들이 찍힌 낱장을 한 장씩 주워 모았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녀석들이 슬금슬금 종이를 나에게 가져다준다.
"뭐야, 선생님이 쓰레기통이야?"
꺄르르르르... 아들도 쓰레기는 죄다 엄마한테 가져다주더니 학생들도 그런다. 그래도 센스 있는 아이가 한 명 나선다.
"선생님 제가 할게요!"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의 봄이 따뜻하게 스쳐가길 바란다. 수학여행은 못 가지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시기는 아니지만, <나의 때가 반드시 온다>만 믿지 말고 지금 이 순간도 나의 때로 만들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