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음이 지천이다. 피어나는꽃의 진동이다.교실 한 구석에 숨죽이고 있던 초록 봉오리가 마침내 핑크빛으로 터져 올랐다. '꽃이 과연 피기는 할까?' 의심반 걱정반으로 기다리다 지칠 무렵, 한 움큼씩 뭉쳐 피어있는 꽃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언제 어느새 소리소문 없이 열심히 피어나고 있었던 걸까.
"얘들아, 꽃이 드디어 피었어!"
"우와!"
연거푸 찬탄의 박수를 쳐대는 교실의 기쁨을 의식한 듯 꽃들은 뭉쳐있지만 서로에게 뭉개지지 않고 각자의 색조를,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제라늄이 이렇게 매혹적인 꽃이었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학기 초, 생명의 틔움으로 희망을 채워주고 싶었던 마음에 아들 것 하나, 교실 것 하나 각각 두 개의 화분에 토마토를 심었다. 아들의 토마토는 싹을 틔운 지가 한참이 지났는데 교실의씨앗들은 도통 어떠한 기미도 없어 내심 마음을 졸였다. 괜한 설레발로 경험할 필요가 없는 실패의 아쉬움을 겪게 할까 긴장하며 화분을 연일 들여다보았다.
죽었나?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다시 심을까? 아들 것과 바꿔치기해야 할까?
고민에 고민의 연속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순간, 파릇한 잎새가 귀엽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우와! 안달하지 않아도 각자의 때가 되니 싹도, 꽃도 움이 튼다.이게 바로 자연의 이치였다.
누군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고. 여행을 떠났지만 여행지에 도착하고 싶지 않았다. 일상에 도착하고 싶었다.
-모든 요일의 여행 중
우리는 시공간을 분리시켜 먼 곳으로이동하는 것만이 여행이라고 생각하지만'여기'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여행이라고 한다. 저 너머의 목적지가 아닌, 일상에 도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차 지필 평가를 치른 바로 다음 날, 시험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가 서있는 이 순간을 포착하는 경험,일상 여행을 하면 어떨까싶었다. 톡 터져버린 봄기운의 완연함을 그냥 지나칠 수도 없다. 아이들을 교실밖으로 데리고 나갔다.봄을 만지고, 봄을 찍었다. 여기에 아름다운 문구들을 버무려 시절의 한 순간을 남기는 미션을 주었다.5월에 찍을 졸업사진을 위해 짜둔 모둠별로 그리고, 개인별로 교정 여기저기의 봄을 담는 아이들과함께 봄 안으로 들어간다. 봄이 고팠나 보다. 봄으로 배부른 것을 보면.
전국연합 1회, 중간고사 1회 벌써 두 번의 시험을 건넜다. 앞으로 빼곡한 시험의 고개를 하나씩 넘어가려면 차오르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긍정 에너지 한 스푼, 회복 에너지 한 스푼, 자연이 내뿜는 봄 에너지 한 스푼. 여기에 입을 즐겁게 해주는 음식 에너지 한 스푼까지. 학년부 전체에서 시험 끝난 아이들의 격려차원에서 동아리 예산으로 햄버거를 주문했다. 뜻밖에 입시 설명회에 방문하신 학부모님께서 깜짝 서프라이즈 선물, 아이스크림까지 교실로 배달해 주셨다. 감사 또 감사다.
"선생님이 오후에 'Something good'이 있다고 하셨어!"
은근히 무언가를 기대하던 아이들의 입과 배를 채워줄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며 먹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녀석들에게 한 마디는 해야 할 것 같아 툭 말을 던졌다.
"먹은 값을 해야 하는 데 입만 즐거운 시간이 되었네. 그래도 잘 먹고 무럭무럭 자라라."
"네, 선생님 주말 동안 더 커 오겠습니다!"
다 큰 고3들의 재치에 웃음이 터진다. 귀엽다. 무럭무럭 마음이 더 자라도록 하여라. 무럭무럭 회복 탄력성이 더 단단해지도록 하여라.성적도 함께 무럭무럭 더 자라도록 하여라. 우리에게 허락된 봄과 앞으로의 계절과 일상을 잘 여행해 내려면. 그리고 너희들의 때에 싹을 틔워 활짝 꽃 피우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