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앨범 촬영이다.5월의 어느 날, 광교 호수 공원에 우리의 시간을 담는다. 1, 2학년들은 체육대회가 한창이고, 3학년들은고등학교 마지막 시절을 자연의 품에 책갈피한다.초행길이라호수공원 집결지까지 시간 맞춰 올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그래도 심한지각없이 전원 출석이라는 기적을 기록한다. 학교에서 반끼리 단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이 빠진 독처럼 한 두 명씩 빈자리가 있었는데 이 날은 다르다. 선생님들은지필평가 성적 확인을 여기서 했어야 한다며 우스갯소리를 하신다. 하긴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쁜 꽃봉오리 고교 시절의 한컷을 남기는 일이리라.
햇살 좋고 하늘이 예쁜 초록 잔디밭에서 평상시에 보기드문(?) 전교생 깔끔 교복 착용으로 촬영 일정이 시작된다. 개인 프로필, 그룹 사진, 반단체 사진 총 세 컷을 찍기 위해 포즈를 고민하고, 반별 순서를 기다리며 아이들은 오래간만에 학교밖 자연에서 뒹군다.교내에서 볼 때와 교외에서 볼 때 아이들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단지 사복 추리닝과 교복의 차이가 아니다. 화장을 곱게 하거나 앞머리를 내리는 등 외모의 변화도 아니다. 인생에서 가장 젊은 지금 이 순간,5월과꼭 닮은 마지막 십 대의 절정, 그 피어오름이그저 눈부시게 아름답다.아이들은 알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지금 현재가 얼마나 찬란한 순간인지를.봄빛까지 통과시킨 에너지의 충천함이먼 미래에는 그리운 추억으로 기억되리라는 사실을.
우리 반 순서를 기다리다 지친 녀석들이 슬쩍 옆으로 다가온다.
"선생님, 너무 목마른데 잠깐 커피숍 다녀와도 돼요?"
"그래, 빨리 다녀와."
나의여고생 시절에는 캔커피가 다였는데 요즘 고등학생들은 테이크 아웃 커피를 즐긴다. 하루에 커피 한잔, 혹은 에너지 드링크에 의지하며 공부하는 학생들을 '건강'을 내세워말려보지만 자연스럽게 스며든 그들만의 문화이다. 사진 촬영 현장 바로 옆에 커피숍이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가북새통을 이룬다. 그래, 오래간만에 친구들과함께 너희들만의 문화와 시간을 즐기렴.
기다림의 시간켜켜이에찐득한 아이들의 사랑이 끈끈하게 들러붙는다.자기들끼리 목을 축이러 갔을 텐데 돌아올 때 빈 손이 아닌, 시원한 아이스 카페라테를사서 건네주는 녀석들에게 감동 한 스푼(내가 아메리카노를 안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었을까 센스쟁이들),지루할까 선생님 옆에 붙어 앉아 쫑알쫑알 수다를 떨어주는 아이들의 마음씀에 감동 한 스푼, 통합반 친구를 챙기며 포즈를 취할 때마다 환호와 격려를 던지는 따스함에 감동 한 스푼, 교복을 안 입고 온 친구를 위해 옷을 벗어주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 주는 감동 한 스푼, 집으로 돌아가면서멀찍이서 선생님 사진한장을찍어 보내 잘 들어가시라는 인사를 잊지 않는 감동 한 스푼.
아이들은 저마다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커가고 있다. 세상을 감동시킬 만한 충분한 싹들을 품고서. 교실 안에서, 내신이라는 성적으로 평가받는 좁은 세상을 넘어서 더 큰 품을 안고 깊게성장하고 있다. 5월의 아름다운 날, 함께의 시간을 더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게 해 준 아이들로 인해 므흣하다. 그래서 난, 바깥세상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