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들어는 봤지만 난생처음지도를 훑으며 그 존재감을 확인했다.충청북도, 충청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전라북도5개의 도가 만나는 접점 지역으로 마치 다섯 송이 꽃잎이 하나라도 떨어질 세라 붙잡고 있는 구심점 같다.우리에겐 덕유산, 스키장, 반딧불이, 태권도 등으로 나름의 지역색을 품은 곳이기도 하다.
김신지 작가의 <제철행복>을 읽으며 알게 된무주 산골 영화제, '바로 이거야!' 하고 지금 딱 맞는 시절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 마음 끝은 이미 무주로! 기한만료직전의쿠폰을발견한 듯 급하게 검색을 시작했다. 영화제 표를 예매하기도 전에 한 가정에게 초대장까지 발송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시간의 흐름 속에 떠밀려가지 않고 행복 깃발을 꽂으려는노력은 가상했다. 그런데반전은,그 열정이 무색하게 표가 이미 매진된 점. 오전에 열려있던 표가 오후로 가니 씨가 말랐다.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올해는? 누군가같이 가자고 옆구리까지 찔러놨으니,게다가 그 가정을 꼬리 물고 다른 한 가정도 여행길에 함께 오른다니이를 어쩌나... 발 빠른뒷수습이필요했다. 무주에서 할 만한 것이 무엇이있을까? 다행히도덕유산이 있어주었다. 그리고, 극 J형계획자 아빠가 동행하는 가정에 선물처럼 있어 주었다. 여행 일정을 계획서로 만들어 보내주는 열정이 담긴 1박 2 일행, 가기 전부터 감탄과 기대가 충천했다.
덕유산 국립공원과 자연 휴양림, 맞춤형 자연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무주의 매력에 흠씬 빠졌다. 평시에는 자주 가지 못하는 전라도청정지역의 백지 한 장이 쫙 펼쳐진 것 마냥 여유로운 시간 속에 배회했다. 캠핑, 자연 관찰, 계곡 물놀이, 곤돌라 탑승, 덕유산 설천봉/향적봉 등반 등 많은 요소들이 추억으로 채색되었다.사진으로 남은 한 폭의 그림들, 아름다운 기억의 향이 제법 진하게 진동한다.
무엇 하나 버릴 수 없는 시간들, 압권은 캠핑이다. 낮동안 실컷 달궈진 땅의 열기가 식기 시작하는느지막한오후,낮을배웅하고 저녁을 마중했다. 서서히 깔리는 어둠의 융단 앞에 불을 지펴 불멍 하는 밤의 여운을 가만히 데려온다. 시린 몸을 데우기 위해 캠프 파이어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들, 한 발치씩 떨어진 옆데크들에서 두런두런 사람들의 대화소리와인기척이 밤공기를 채운다. 숲의 한기와 사람의 온기가 물끄러미 서로를 바라보는잔잔한응시의 시간들, 이래서 캠핑을 하는구나!마시멜로를굽기 위해 길게 팔을 뻗은 아이들의 설렘이 몽글몽글 피어오를 때 쯔음,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하얀 꽃송이를조심스레 입에 물어본다. 보드랍고 폭신하게 스며 나오는 달콤함이 입안에 얇게 퍼진다.
자연이 내어주는 무한한 품.아이들은 즐거웠고, 어른들은 맛있었다.이른 저녁의 바비큐와 떡볶이, 아침의 베이글 토스트와 수박화채는 기대이상이다. 특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맛본 무주농원의 토종닭은스케일과 비주얼이 눈길을 끈다. 영계에 비해 살짝 질겼지만 질겅하게 씹히는 맛이 오래 씹어야 제맛인 여행 인연들처럼혀끝을 오래 잡는다. 그리 맵지 않은 듯 호호 불며 열심히 먹어주는 아이들은이 여행의 마지막을 잘 소화해 주는듯하다.세 가족 모두 다음을 기약하며 기분 좋게 여행문을 닫는다.아들은 '내가 방문한 곳'이라는 추억 스탬프를 찍듯 대한민국 지도 위에 무주를 찾아 테두리 치며 색을 칠했다. 그렇게, 가족 여행 시간을 차곡히 쌓았다. 멀지만 넓었던 무주의 넉넉한 품을고스란히 마음에 남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