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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혜정 Dec 08. 2023

집필 원고 마감

시원 섭섭 그 언저리에서 숨고르기

영어 필사책 원고를 하나 더 마감했다. 무언가를 하나 시작하면 쉬엄쉬엄 없이 몰아치다 보니 종료 시점 헛헛함이 딸려기 일쑤다. 지금껏 달려오던 동력에 밀려 멈춰서는 것이 어색한 관성의 법칙이랄까. 뭔가 더 매달릴 것이 없는지 뒤적이는 내 모습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건다.

생의 사이사이에 멈춰서는 것, 그리고 숨 고르기를 하는 지혜를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원고를 마감한다는 것은 현재 완료형이 아니라 과거 진행형의 결실, 그리고 이어지는 현재 진행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수행했던 지난날의 순간들이 모여 어느덧 꽉 찬 원고가 탄생한다. 1차 퇴고의 과정을 거쳐 손에서 벗어난 원고는 편집장님과 디자이너의 손에서 책으로 만들어지는 또 다른 진행 과정을 거친다. 완료되었으나 여전히 진행 중인 두 개의 시제가 혼재한다. 여기에 어떤 모양의 책으로 출간이 될 미래 시제도 엮여있다. 


현재는 과거 선택들의 결과이고 미래는 현재 선택들의 결과이다. 분리되어 있는 듯 하지만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은 것이 시간계이다. 삶은 그렇게 연결된 시간 속에 선택의 순간과 함께 미래의 불확실성을 조금씩 떨구어 내며 흐른다. 단, 아등바등 분주한 생산자의 삶을 칭송하는 현대 사회에서 잠시라도 시간에 머무르는 여유는 가질 필요가 있다. 시성비(時性比)를 따지며 1분 1초 단위로 시간을 조각내고 그 틈새를 벌려 여러 개의 공을 저글링 하는 또 다른 피로감에서 나오는 결단력을 갖는 것이다.  


분초 사회의 효율성 덕에 빠른 결과물을 누리기도 하지만 속도의 혜택으로 잃어가는 것 역시 많다. 생각이 배회할 수 있는 공간, 상상의 영역이 잠식되고 있다. 여기저기 흩뿌려진 생의 편린들을 짜 맞추어 연속적으로 이어 줄 수 있는 여백의 시간, 느림의 미학과 멈춤의 미덕이 필요한 때다.


그래서 난, 필사하는 시간이 좋다. 잠시라도 멈춰 서서 나와 마주하는 시간, 온전히 텍트에 머물러 사유를 확장하는 기회, 영어 필사책 작업이 신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느림의 미학이다. 주옥같은 표현, 문장, 장면에 머물러 곰곰이 그리고 깊이 생각한다. 텍스트에서 흘러나오는 말과 글이 개인적인 경험, 지식, 정서를 통과하며 나만의 의미로 삶의 결을 잡아준다. 행간의 울림과 감흥이 깊이 있는 성찰과 적용까지 가닿는다. 글 속에 꿈틀대는 수많은 메시지들이 나의 생각과 만나고 이를 통해 광활한 정신의 공간 속에서 의미 있는 점들이 찍히고 연결되는 희열을 느낄 수 있다.”

- <아침 10분 영어 필사의 힘>, 위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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