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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혜정 Jan 06. 2024

긴긴 방학, 치팅데이와 함께

겨울 방학 활동 요모조모

 흔히 대안학교 하면 놀이와 활동 위주의 배움지향하다 보니 학습은 뒷전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공교육 수업을 받아보지 않아 비교할 수 없지만 1년을 경험해 보니 학습량이 그리 헐렁하지만은 않 것 같다. 학기 중에는 매일 숙제가 있고 방학 동안은 과제 안내문에서 볼 수 있듯이 놀기만 할 수 없는 빼곡함이 있다. 신앙과 실력을 겸비하도록 돕는 학교의 지침에 따라 아이는 꽉 찬 생활을 했으리라 믿다. 과제와 함께 긴긴 방학이 시작되었다. 학교 교육 일정이 비어버린 여백 어떻게 메꿔주어야 할지 고민되는 시점이다. 모든 엄마들의 고민 아닐까 싶다.

<겨울방학 과제 안내문>




 아들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숙제 없는 날이 있다. '치팅데이'처럼 그냥 하루 종일 노는 일정이다. 초 1이 하는 일이 대부분 노는 일인데도 숙제가 주는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 불타 본인이 직접 만들어 제안한 날이다. 자기 구미에 맞춰 빠져나가기 위한 구멍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신통방통이라 결재해 주었다. 아들은 숙제 없는 날 정해진 규칙도 없이 마음 동하는 데로 선언.


"엄마 오늘은 숙제 없는 날이에요. 쾅! 쾅! 쾅!"


 그리고는 판사봉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고 활짝 웃는다. 숙제로부터 해방되는 단 하루의 자유로 인해 세상 밝은 표정이다. 하루 30분 뚫려버린 공백으로 인해 나중에 메꿔야 하는 버거움 있지만 일단 뒤로 넘기는 맛을 즐긴. 조삼모사 격인데 하루의 행복이 갑절로 뛰어오르는 황홀경을 바라보며 그냥 눈 감아주기로 했다. 

 하루 종일 뭘 해야 하나 놀 궁리를 할 필요 없이 시간 잘도 간다. 나면서부터 외동이어서 그런지 혼자 노는 법을 잘 알아 시간을 쓴다. 때론 그게 미안해서 마음이 쓰이기도 하지만 인생은 어차피 혼자인 걸, 어려서부터 고독을 다룰 줄 아는 훈련 되면 좋지.. 하며 좋은 쪽으로 생각한다. 아들의 치팅데이 무엇으로 채워질까? 2024년 1월 몇 일간의 활동을 역사의 기록처럼 남겨본다.


1. 독서 및 도서관 나들이


어려서부터 도서관을 자주 데리고 다니고 목 터져라 책을 읽어줬던 습관 덕분인지 기본적으로 독서 여가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요즘은 만화책을 들고 있는 시간이 많아서 계속 어르고 달래고 대화하며 조정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다. 초등 입학과 동시에 또래 문화의 영향권 아래 지분이 커져버린 만화책, 읽기 유창성을 위해 허용해 주었던 것을 재조정해야 할 것 같다. 줄글책의 재미로 전환되도록 도와주는 것, 쉽지 않은 묵직한 임무가 되었다. 

 도서관도 지역별로 골라서 가고 싶은 곳을 말해준다. 집 앞으로 가면 좋으련만 그동안 가본 곳 중 하나를 정해서 여행하듯 간다. 책도 읽고 밥도 먹고 돌아오면 반나절 뚝딱 지나가니 좋다. 여름방학 때처럼 도서관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하면 더 좋았을 텐데 겨울방학 때는 쉬겠다고 한다. 자기주장과 의견이 자라는 시기이다. 그래도 책도 읽고 밥도 먹고 돌아오면 반나절 뚝딱 지나가니 좋다.  


2. 창작활동(그림 그리기, 종이접기, 만들기)


 로봇을 워낙 좋아해서 TV 시청 중에 나오는 장면들 중 멋있는 것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그리고는 나중에 혼자 앉아서 보고 그린다. 꽤나 작품스럽다. 종이접기 역시 매번 시간을 땜빵하는 좋은 활동이다. 작품 대부분이 로봇이다. 유튜브를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상상으로 혹은 친구들에게 배운 것으로 무언가를 접어 내는 것도 신기하다. 택배로 오는 박스들과 재활용품으로 무언가를 만들기도 한다.

한번 꽂히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뚝딱뚝딱 창작활동에 몰두하는 것이 제법이다.

3. 놀이 만들기 및 보드 게임


 다이소에서 사 온 마술 도구로 마술 몇 번 하더니 새로운 마술을 고민하고 개발하고 어설프게 선보인다. 물개 박수 치며 호응해 주었다. 그랬더니 계속 속임수가 다 드러나는 헐렁 마술을 양산해 낸다. 줄줄 새는 바가지 같지만 그래도 상상을 해냈다는 것에 환호해 준다. 자기가 만든 얼토당토않은(?) 놀이에 맞장구 쳐주는 시간도 있다. 하나도 재미없는데 본인은 재미있게 룰을 설명하며 같이 놀자 한다. 차라리 보드 게임 하는 것이 어른 입장에서 좀 더 버티기 좋다. 보드게임  주의할 점은 아이의 승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 것! 엄마가 이길 기미가 보이자마자 즐거운 게임이 급 침울해지기 때문에 살 져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쾌재를 부르며 어깨뽕 자신감과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도록 해준다. 


4. 요리활동


 아들은 잡지나 에서 발견한 간단 요리 레시피들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먹고 싶은 것이 많은 지라 꼭 같이 만들어 먹자고 한다. 함께 요리하는 즐거움도 조리법이 간편하면서도 나름 맛도 있다. 요리 체험 수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셰프가 되어 재료도 만져보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되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어서 좋다.


5. 줄넘기


 앞에서 줄넘기를 함께 한다. 요 근래 미세 먼지가 나빠서 매일은 아니었지만 방학 운동 목표 줄넘기 500개를 채우기 위해 시작했다. 엄마랑 경쟁이 붙으니 더 잘하고 싶은 마음 충천이다. 1년 전보다 줄넘기가 분명 늘기는 했지만 몸이 무거운 부분도 보인다. 줄넘기 학원은 다니지 않더라도 기본기를 가지는 데 의의를 둔다.





앞으로 더 많은 긴긴 방학이 남았다. 그래도 뭐 할까? 를 고민하며 이것저것 지루함을 달랠 활동을 찾아주던 시기에서 살짝 비껴 난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도 무엇을 하고 싶다고 제안도 해준다.


"엄마, 저 지난번에 갔던 도자기 체험 가고 싶어요."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점차 또렷해지고 있는 성장 시기다. 하나씩 채워 주다 보면 그리 긴긴 방학은 아닐 듯다. 복직 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싶다. 아이의 여백과 엄마의 여백이 겹쳐진 이 시간을 꽉 채워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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