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오래간만에 월차를 냈다. 63 빌딩 파빌리온 뷔페 초대권이 있어서 가족들과 거하게배를 채우기 위해서울 나들이를 떠났다. 친할머니, 고모할머니,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길에 아들은 기대치 못했던 선물까지 안아 들고 신이 났다.눈이 많이 와서 걱정했는데 제설 작업이 완벽한 서울길이다. 단, 반전이 있다.차가 꽉 막힌다. 이래서 서울은 차 끌고 가는 곳이 아닌가 보다. 우여곡절 끝에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평일 점심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였고 모든 홀이 꽉 찼다. 포식의 여세를 몰아벨트를 풀고 각양각색의 산해진미로 돌격! 아들 역시 물 만났다.어린이 요금으로 성인 뺨치는 부지런함으로 왔다 갔다 음식을 나른다.만족했는지 배를 두둑하게 채우고 나오는 길에 신나게 한마디 던진다.
"여기 뷔페 또 오고 싶어요!"
공기가 좋지 않아서 한강 나들이를 포기하고 할머니들과 카페로 향했다. 옆에 앉아있던 6살 꼬마가 아들이 받은 선물, 포켓몬 카드 박스를 보더니 "형아! 나 카드 하나 갖고 싶다!" 하며 철썩 붙어 앉았다.아들은 망설임 없이 반짝반짝 좋은 카드 하나를 쾌척한다. 주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 6살 동생의 마음을 순식간에사로잡았다.신난 꼬마는 이것저것 물어보며 형을 대하는 눈빛에경이감이 차오른다. 대뜸, "형아 마음이 넓은 가요?" 하며 물어 주변을 빵 터지게 한다.자신을 알아주는 동생에 한껏 흥이 난 아들은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며 꼬마의 아빠까지도 섭렵하여 함께 시간을 보낸다. 우리 테이블 일행인지 옆테이블 일행인지 모를 정도로 구획을 넘나들며 어린이들끼리 죽이 맞아 포켓몬 삼매경이다.
"형아, 우리 또 만나자."
"그래, 언제 만날까?"
두 꼬마 녀석들이 2월에 만날 약속 날짜와 시간까지 정했다. 하남에서 오신 가족과 용인에서 온 우리 가족은 머나먼 여정 끝에 어찌 강남 한 복판에서 만난 걸까... 잠깐의 접점으로 서로의 아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하사해주고 헤어질 수밖에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도서관에 가고 싶다한다.종료 시간이 1시간 반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꼭가야 한단다. 도서관 서고에 자리를 잡고 앉아한참 동안 읽을 수 있도록 책을 쌓아놓고화장실로 향했다. 오랜만에 동료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잠깐 나가서 아들이 잘 있나 확인 후, 시끄러울까 봐 다시 화장실로 돌아와서 대화했다.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짧은 통화는 아니었다. 그래도 읽을 책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잘 읽고 있겠거니 생각하며 전화를 끊고 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이가
없. 다.
아들이
사. 라. 졌.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책을 읽고 있던 자리가 곱게 정리되어있고 의자까지 책상 밑으로 밀어져 있다.떠난 흔적이다. 당혹스러운 마음에 백방으로 아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도서관 1층, 2층, 주변 바깥을 훑었지만 없다. 혹시 몰라 아이 옆에 앉아서 책을 읽던 여성 분께 여쭤봤다.
"15분 전에 책 정리하고 나가던데요?"
대체 어디를 간 걸까?생각 없이 전화에 매달려 있었던 시간들에 후회막급이다.아들아 어디로 간 거니, 중간에 보고만 가지 말고 통화하고 있다고 얘길 해줄걸, 크나큰 실수를 한 것 같아 혼비백산 별별 생각이 다 든다.엄마가 안 와서 울며불며 찾아다니다가 어디로 간 건가? 엄마 없이 혼자서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본 적은 없는데, 설마 혼자 집에 갔나? 아, 그럴 수도 있겠다. 도서관이 바로 집 앞은 아니더라도 수백 번도 더 함께 걸었던 길이니까. 스스로 안도하기 위해 온갖 시나리오를 써본다. 그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의 행방부터 다그쳐 물었다. 아,엄마가 안 와서 집에 혼자 왔다는 것이다!
다행이다.
"엄마가 화장실 간다고 했는데 안 와서 화장실 앞에서 15분 기다렸어요."
"어? 그럼 화장실 문 열고 들어와 보지 그랬어. 엄마 계속 화장실에서 전화 통화하고 있었는데!"
"통화 소리 안 들렸어요."
"너무너무 미안해. 그런데 우리 아들 이제 다 컸네. 안 무서웠어? 엄마 없이 집까지 혼자 가고!"
모두 나의 불찰이다. 무조건 다 내 잘못이다.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서 아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집까지 혼자 씩씩하게 갔다는 말에 울컥함이 몰려온다. 이제 다 키웠구나. 혼자 판단해서 안 되겠다 생각하니 그냥 집으로 돌아갈 줄도 알고.집으로 돌아와서 꼭 껴안아주며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말한다.
"엄마, 저 이제 도서관도 혼자 다닐 수 있겠는데요?"
"그러네! 우리 아들 다 컸네!"
정말 많이 컸다. 엄마의 불찰로 또 한 번 증명되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자기만의 주장도 피어나고, 엄마의 품에만 있지 않고, 자신의 세계로 나아가는 아이의 성장에 뭉클함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