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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혜정 Jan 12. 2024

글의 향기

글의 힘을 휘두르지 말 것

 2023년 누린 수많은 특수 중 하나는 직장에 있어야 할 대낮에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독서 동아리 모임 참여 수 있었던 것이. 어딘가에 하루 종일 얽매어 있지 않고, 원하는 때에 마음껏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자유는 직장인에게 최고의 호사가 아닐까 싶다. 휴직 덕분에 365일 매일 지천에 깔린 호강을 누렸다.


 아이에게 읽어주며 매력에 폭 빠져들었던 그림책을 성인과 함께 읽고 삶을 나누는 그림책 모임, 그 시간들 꽤나 알찼. 코로나 이후 점차 성인 독자층까지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그림책 어린이건 어른이건 마음에 힐링과 감동을 주는 힘이 있다. 매달 2권씩 책을 함께 펼쳐 들고 다양한 소재들을 일상에 문지르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어색한 시간들을 지나 마지막 날은 각자가 주섬주섬 싸 온 다과를 펼쳐 놓고 아쉬움에  다음 모임을 기약하는 시간으로 변했다. 나 역시 올해는 함께 할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을 담아 출간책을 원하시는 분께 선물로 드렸다. 그리고...경쾌, 진지, 유머, 잡학 등의 다양한 뭉치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던 그때 시간들이 한데 묶여 문집으로 나왔다.


 짬짬이 브런치에 써두었던 글 하나를 꺼내어 보냈을 뿐인데 동아리원들은 맹렬히 총대를 메어준 것처럼 자신들의 글쓰기 수고를 덜어주어 감사하다는 마음을 보여주었다. 나의  글이 용인특례시 도서관 문집에 실리는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무료 문집이지만 공저 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글향기>라는 문집의 제목이 마음에 들어온다. 문득, 내 글에서는 어떤 향이 날까? 금해진다. 강하지 않지만 은은한 향기, 차갑지 않은 스한 온기, 힐링과 나눔의 향기 그중 어떤 것이길 바라본다. 글을 쓰면 쓸수록 조심스러워진다. 사적인 글이 공개될 때, 넘나드는 선을 어디까지 설정해야 할지, 혹은 나의 글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한 마음을 주면 안 되는데 하는 고민 등.

 어떤 이는 상한 마음을 토해내듯 글을 쓴다. 형식 상 정제미를 갖춘 듯 하지만  자신의 논리 안에서 누군가를 무방비 상태로 칼질한다. 그걸 보며 다짐했던 것이 하나 있다. 글을 무기 삼아 상대에게 상처 내는 미성숙한 행위를 하지 말자. 글 쓰는 이의 기본 윤리는 글의 힘을 휘두르지 않는 것이라는 나름의 원칙이 섰다.


세상에는 사실보다 믿음이 앞서는 사람이 많다. 어떤 것이 사실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하는 말이 옳다가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심리이다.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고, 그를 단순화하고, 바라보기조차 거부하는 것이다.

-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류시화 -

 최근, 비상식적인 일들을 당하고 있는 남편이 안쓰러워 그냥 고발 글을 써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나누었더니 남편이 말한다.


"그러지 마. 당신 글로 누군가를 차갑게 비난하지 말고 위로와 힘을 주는 따뜻한 글을 써."


 불쑥 튀어 올랐던 , 욱하는 심정을 덮는 말이다. 장자의 제물론에서 장자가 한 명언을 만났다.


"내가 그대와 논쟁을 한다고 하자. 그대가 이기고 내가 졌다면 그대가 정말 옳고 나는 정말 틀린 것인가? 내가 이기고 그대가 졌다면, 나는 정말 옳고 그대는 정말 틀린 것인가? 한쪽이 옳으면 다른 쪽은 반드시 틀린 것인가? 둘 다 옳거나 둘 다 틀린 경우는 없을까?"


 모두가 옳을 수 있는데 자신의 논리가 맞다고 믿고 사실처럼 고집하는 것, 둘 다 틀렸는데도 아집에 사로잡혀 상대를 적으로 몰아내는 것, 그렇게 편협하고 처량할 수 없다. 듣는 귀 없이 나의 세계에 사로잡혀 냄새나는 글을 쓰지 않길,  모두를 품을 수 있는 향기 나는 글을 쓸 수 있길, 펜의 힘을 걸러내어 부드럽게 모두를 존중하는 글을 쓸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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