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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r 20. 2022

버릴 것이 없다.

우리 집 전자제품



방금 고구마를 씻어서 에어 프라이기 넣었다. 이것은 곧 맛있는 군고구마로 탄생할 것이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갓 구운 고구마가 완성되었다. 고구마를 쪄 먹는 것이 요리시간이 짧긴 하지만 맛은 군고구마가 훨씬 맛있다. 하원한 아이에게 군고구마를 간식으로 내주었더니 아이는 뜨거운 고구마를 호호 불며 맛있게 먹었다.  



군고구마가 만들어지길 기다리며 커피머신에 캡슐을 넣고 커피 한잔을 내렸다. 버튼 하나로 만들어지는 갓 내린 커피, 따뜻한 커피 한 모금에 내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이 커피머신은 무려 7년 정도 된 것으로 잠시 사용하지 않을 기간을 제외하고는 5년 정도 사용했는데 여전히 건재하다. 무려 신용카드 포인트로 산 것인데 그때 왜 내가 빨간색을 좋아했을까 모르겠다. 2년 만에 다시 사용하려고 꺼내니 흰색 커피머신이 아른거려서 자제하느라 혼났다.



어제 늦은 밤에 갑자기 출출해져 냉동실에 있던 꽁꽁 언 만두를 꺼내 전자레인지 넣었다. 가장 센 열로 5분 정도 데우니 따뜻한 만두가 금세 먹을 수 있게 준비되었다. 지난번 엄마가 제주에 오셨을 때 직접 만들어서 가져오신 '김치 수제만두'인데, 엄마의 음식이 생각날 때 꺼내먹고 있다. 원래 일반 냉동만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엄마 만두는 냉동해두고 언제 꺼내 먹어도 정말 맛있다.



어제는 집에 오자마자 너무 허기가 져서 라면을 끓여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자 전기포트에 물을 끓였다. 냄비에 물을 넣고 가스에 올리는 것보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인 후 거기에 라면을 끓이면 더 빨리 라면을 먹는 느낌이 든달까? (시간을 재어보진 않았네) 그리고 겨울 내내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서 자몽차, 유자차, 모과차, 생강차 참 잘도 마셨다. 요즘엔 선물 받은 홍차가 많아져서 차를 주로 마시는데 전기포트가 없었더라면 냄비에 물을 끓여야 하나?



엊그제 맛있는 빵을 사 왔다. 사온 날 먹을 식빵과 모닝빵을 빼놓고 나머지를 냉동실에 얼렸다. 식빵은 먹고 싶을 때마다 꺼내 '해동'으로 스위치를 놓은 토스터기에 넣으면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 물론 갓 만들었을 때만큼 맛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언제 빵이 먹고 싶어 질지 모르니, 빵은 냉동실에 늘 구비되어 있어야 하는 필수품이다. 언 빵을 토스터기에 넣으면 언제든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참 편리하다. 이 토스터기는 5년 전 가장 친한 친구가 선물해준 토스터기인데 그때의 나는 분홍색 토스터에 환장하던 젊은이였다.



일주일에 3~4번 정도 세탁기를 사용한다. 그리고 곧장 건조기에 넣고 돌린다. 때때로 날씨가 좋은 날은 마당에 이불을 널어서 햇볕 샤워를 하기도 한다. 원래 가지고 있는 세탁기는 용량이 큰데 이곳에 설치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이미 옵션으로 있던 세탁기를 사용하는데 작은 용량이라 이불 빨래를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도시에 있을 때는 우리 집 세탁기로 한 달에 한번 꼭 이불빨래를 하곤 했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가 없다. 당분간 빨래방에 가져가서 세탁할까 생각했는데, 이번에 방법을 찾았다. 정말 두꺼운 이불은 어찌할 수 없지만 적당한 크기와 두께의 이불은 내가 손수 세탁해보았다. 머리 쓴 것이 고작 '스스로 이불 빨래하기' 욕실에 이불을 가져다 놓고 씻으면서 밟아봤다. 그렇게 긴 시간을 빨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을 때까지는 밟고 또 밟았다. 그리고 축축해진 이불을 세탁기에 탈수시킨다(세탁은 안돼도 탈수는 되니 다행이다). 그 후에 건조기를 돌렸더니 이불 빨래까지 성공이다! 그러나 계속 직접 이불 빨래할 생각은 없다. 제주에 사는 동안이면 충분할 것 같다. 그나저나 건조기 만든 사람에게는 상을 줘야 한다. 그것을 쓴 이후로 삶의 신세계가 열렸다.



거실 청소는 거대한 청소기로 매일 아침 돌린다. 거대한 청소기는 무려 9년 전 신혼살림으로 구매한 것인데 4년 정도 쓰다가 4년을 쉬다가 이번에 함께 제주도로 건너왔다. 이 청소기는 청소할 때마다 나는 소음이 얼마나 큰지, 아파트에서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겨우 10분 정도 청소하는 시간조차 층간소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정도로 거대한 굉음을 낸다. 이런 청소기 오로지 단독 주택에서만 사용해야 할 듯하다.










전기 먹는 하마 난로





이번 겨울에 작은 난로를 구매했다. 처음 살아보는 주택의 겨울은 녹록지 않았다. 아마 우리는 큰 난로(원래 있던 것, 거실 전용)와 작은 난로(방 전용)가 없었더라면 겨울을 쉽게 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원래 옵션으로 있던 큰 난로를 발견하지 못하고 작은 난로를 사게 되었다. 한참을 쓸 때 없이 소비한 작은 난로가 정말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원래 있던 큰 난로가 훨씬 더 따뜻하길래 거실과 방에서 왔다 갔다 하며 사용하다가 전기에 합선되어 불이 날뻔했다. 큰 난로의 전기용량이 방과 맞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방에서는 작은 난로만 사용했다. 그런 일이 생긴 이후에야 '사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큰 난로를 거실과 방으로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니 편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제주도의 주택에서 느끼는 겨울 추위는 상상 이상이어서 우린 두 개의 난로를 함께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두 개의 전기난로는 전기를 어마어마하게 먹는다. 그렇게 겨울에 전기세 폭탄도 맞았다. 특히 이 집을 이사 가면 작은 난로를 또 사용하게 될까 싶기도 하지만 3월인 지금은 여전히 '매우 잘' 사용 중이다. 아마 4월까지는 거뜬히 사용하지 않을까?




현재 이사 온 제주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인덕션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린 세탁기를 잃고 인덕션을 얻었다. 지난 집에서 인덕션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더 참아보자 넘겼는데 다행히도 이곳엔 인덕션이 설치되어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결혼 생활 내내 요리할 때 가스레인지를 쓸 때마다, (정말 무던히 살고 싶었으나) 내 후각은 너무도 예민해서 가스냄새에 괴로웠다. 여태껏 인덕션을 사지 않은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요리가 하기 싫어서 하는 핑계라 아니라 그 가스냄새가 잘 맡아져 정말 괴로웠다. 이제 인덕션의 신세계를 알아버렸으니 이제 더 이상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없을 것이다.








다행히도 아직 식기세척기, 에어드레서, 김치냉장고를 가지고 있지 않아 다행이다. 이전에 식기세척기가 옵션으로 되어 있는 집에서 살았는데 우리 집 설거지 담당은 남편이라 식기세척기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꼭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어드레서 대신 옷은 정원에서 먼지를 탈탈 털고, 김치냉장고가 필요할 정도김치를 많이 먹지 않는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제습기가 필수라고 했는데 아직 제습기를 쓸 정도로 습하지 않다. 사실 제습기가 꼭 필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여전히 죽은 빵도 살린다는 그 오븐 토스트기와 샌드위치 그릴기, 드립 커피를 위한 전기포트와 신선한 원두만 넣으면 카페 퀄리티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커피머신 등이 탐나지만! 일단은 지금 내가 가진 전자제품을 오래도록 잘 사용할 생각이다. 혹은 쓰고 또 써서 고장이 나버린다고 해도 아깝지 않게 잘 사용하고 싶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을 아끼며 사용하는 것, 그것 또한 지구를 생각하는 하나의 방법일 테니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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