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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r 30. 2022

그릇을 또 사고야 말았습니다.




그릇을 또 사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릇 매장에 들어가면 안 되었다. 가려던 대형마트 앞에 그 잡화점만 지나쳤더라면 사지 않을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물건을 보지 않으면 사지 않을 수 있다는 뻔한 진리를 깨달았는데도 또 그릇을 보러 갔다. '봄이 왔으니 한 번만, 딱 한 번만 구경하면 안 될까? 진짜 구경만 할 거야.' 그런 구차한 이유를 들어서 말이다. 





꽃피는 봄이다.



드디어 봄이다. 왜 봄만 되면 마음이 설레고 난리인지 모르겠다. 봄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막 두근거리고, 달라진 봄바람 향기만 맡아도 설레고, 길가에 핀 작고 작은 꽃만 봐도 심장이 나대는 것이 매년 봄만 되면 조금 진정이 되지 않는다. 아마 '봄 병'이 왔나 보다.  



그래서 그런가 봄만 되면 그릇을 사고 있다. 핑계도 참 좋다. 나의 미니멀 라이프에 가장 도움되지 않는 부분은 그릇, 컵 이런 것들이다. 다행히 냄비, 프라이팬까지 욕심나지 않으니 다행인가?(아니, 욕심을 한번 눌렀다. 너무 비싸서) 재작년 봄에는 벚꽃 드리퍼랑 벚꽃 투명 컵을 샀고, 작년에는 노랑, 분홍 접시와 컵을 샀고 올해는 결국 노랑, 초록 접시와 컵을 사고야 말았다. 이번엔 절대 사지 않아야지 다짐하면서 매년 그릇과 컵을 사다니 놀랄 일이다.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켜다가 나의 주된 활동무대인 주방을 무심코 쳐다봤더니 봄 느낌이 난다. 고작 노랑, 초록 접시와 컵이 2개씩 생겼는데 주방마저 봄이다. 사실 피크닉 느낌 나는 노랑, 초록 접시와 컵 말고 블루도 세트로 있었는데 그것을 참고 참아서 두 세트만 사 온 것이다. 아! 너무 대견하지 않으냐! 



집에 내가 가진 접시는 흰색, 흰색에 파란 무늬, 아니면 베이지, 초록, 회색 온통 단색들 뿐이다. 특히 파란 무늬를 제외한 나머지 90% 정도는 무늬 없는 단색이라, 이번에 사 온 접시와 컵의 노랑 체크와, 초록 체크무늬는 단연코 눈에 들어온다. 어쩜 한가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컵들도, 흰색, 베이지, 노랑, 갈색, 블루, 블랙 색깔 별로 다 있는데 어째서 무늬가 화려한 컵은 하나도 없는 걸까? 참으로 나의 확실한 취향이다. 











겨우 한 개에 6900원짜리, 싸다고 생각하며 네 개를 구매했는데 계산할 때 27600원이라고 해서 갑자기 너무 많이 샀나 하면서 조금 후회할락 말락 하며 카드를 긁었다. 원래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한 개일 때는 이 정도 가격쯤이야 하면서 담았던 것이 계산할 때 보면 꼭 이렇게나 많이 나온다. 특히 나는 마트에서 이런 경우가 자주 생긴다. 



그런데 봄맞이 접시, 컵을 사고 난 이후로 매일 잘 사용하고 있어서 참으로 뿌듯하다. 그나저나 내가 이번에 산 노랑 초록 접시, 컵은 체크무늬가 둘러져있고 노란색엔 민들레 꽃이, 초록색엔 체리가 그려져 있어 조금은  유치해 보이기도 하는데, 어린 친구들이 자취할 때 사서 쓰면 참 귀여울 듯하다. 하긴 젊은 사람들 취향은 또 다르려나? 아무튼 나는 그것을 매일 아이 간식 접시로 얼마나 잘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것들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싫증 나게 되려나?








매번 새로운 것만 사는 것은 아니다. 실은 이번에 무늬가 있는 접시를 처음 사봤다. 굳이 변명을 조금 하자면 왜 파란 무늬 있는 접시가 있으면서, 처음 무늬가 있는 접시를 사봤냐고 말하냐고 묻는다면 우리 집에 있는 파란 무늬 있는 접시는 모두 시댁 찬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들어왔을때 잠깐 살다 가겠지 싶어서, 아주 오래전 자취하던 때 쓰던 주방도구, 접시 등등을 종이 박스에서(왜 안 버리고 가지고 있었나 몰라) 다시 꺼내서 열심히 썼다. 거기엔 심지어 숟가락, 젓가락까지 있었다. 솔직히 이걸 다시 꺼내 쓸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또 이렇게 계속 한국에 자리 잡고 살지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오래된 접시들을 다 갖다 버리고 싶을 정도의 충동을 느꼈지만(적어도 15년, 물건은 여전히 멀쩡하네)  또 사기엔 너무 아까워서 시댁 찬장을 가서 뒤적뒤적거리다가 발견한 것들을 조금씩 들고 와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접시를 몇 장이나 가져온 거야, 컵도 야무지게 챙겨 왔네! 근데 그것들을 지금 제주도까지 들고 와서 하루에 두 끼씩 꼬박꼬박 상을 차리고 있으니 여전히 너무너무 잘 쓰고 있다. 그것들은 최소 어머님이 사신 지도 20년이 흘렀을 테고 우리 집에 온지도 3년이 넘었다. 내가 가진 15년 된 접시들과 시댁에서 가져온 20년이 넘은 접시들을 제주도 떠날 때 조금 정리하고 가고 싶은데, 조금 낡은 것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너무도 새 것 같고 모든 것들을 잘 사용하고 있어서 버릴 것이 있나 모르겠다. 






 



내가 물건을 살 때 고심하는 이유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매해서 아주 오랫동안 잘 사용하고 싶어서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고 싶은 물건을 인터넷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산 것들은 정말로 오래 쓰게 된다. 아주 가끔은 그렇지 않아도 오래 쓰게 되는 경우가 있긴 한데 그것들은 애정이 없다고나 할까? 



이미 내가 가진 물건 중에는 한참을 고심해서 사서 정말 아끼면서 소중하게 다루면서 잘 쓰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다. 아마 세월이 흐르면 그 숫자는 더 많아질 테지만 질이 좋아질 뿐이지 양으로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가진 물건을 오랫동안 잘 사용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환경에 작은 보템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산 컵, 접시는 굉장히 충동적이었다. 언젠가 또 싫증이 나서 버리게 되면 어떻게 하나 벌써 걱정이 되기도 한다. 부디 우리 집에서 왔으니 함께 10년, 20년 넘게 오랫동안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 되길 바란다. 오늘도 나는 소유와 무소유 사이에서 열심히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표지 사진 : Hermes pl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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