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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Apr 19. 2022

요즘 다들 집에 TV 없잖아요.


우리 집에는 있는 것도 많지만 없는 것도 있다. 없는 것 중에 하나는 텔레비전이다. 자고로 미니멀리스트라고 말하려면 집에 TV 정도는 없어야 하지 않나?(ㅎㅎㅎ)



집에 TV가 없는지 10년 차가 되었다. 그 말인즉슨 결혼하면서부터 TV가 집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혼식 올리자마자 한 달 동안 살았던 서울의 신혼집이 있었는데, 그곳에 머물렀을 때 TV가 있었긴 했다. 그 집의 기본 옵션이었다. 우린 분명히 갓 결혼한 신혼이었는데, 서로보다 TV에 빠져 더 즐거워하고 재밌어했다. 그 한 달 동안 TV에 빠져 살다가 알아차렸다. 우리는 영원히 TV의 노예일 수밖에 없는 하찮은 미물이라는 것.  그때 "우린 평생 TV 없이 살자"라고 다짐했다.






우리 집에 TV 없어요








한 달 살았던 한국의 그곳 말고 실상 우리의 신혼집은 미국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몇 년을 살았다. 도착하자마자 텅 빈 집에 들어가서 사는 것은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미국에 제대로 적응할 시간도 없이 살림부터 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우리나라에 Ikea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처음 Ikea에 갔을 때 쁜 것이 정말 많아서 좋았다. 그런데 그 이후 신혼집 살림을 채워 넣으며 이케아를 너무 많이 가서, 나중에는 진절머리가 났다. 다시는 이케아는 쳐다도 보지 말아야지 생각할 정도였다. 가구 조립도 진짜 많이 해봤고, 미트볼도 원 없이 먹어본 것 같다. 그래도 저렴하게 가구와 생활용품을 채워 넣기에 그만한 곳은 없었던 것 같다.



신혼집에 살림을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겨우 둘이 사는데 이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하다니 싶을 정도로 샀다. 그때 미니멀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다행히도 냉장고, 가스레인지, 오븐이 옵션으로 있었다. 거기에 에어컨은 아랫집 아주머니가 신혼부부가 안쓰러운 마음에 용하지 않으시던 것을 주셨는데, 안타깝게도 작동이 그렇게 잘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여름에는 또 없으면 아쉬웠으니 끝까지 잘 썼다. 그것 외에 전자제품은 밥솥, 청소기, 전자레인지, 전기포트 등등을 모두 샀어야 했다. 그때 그곳에서 모든 살림을 다 샀는데도 사지 않은 것이 있으니 바로 TV이다. TV 없이 뭐하고 살았냐고? 그때는 넷플릭스가 없을 때라 대신 도서관에서 책과 DVD를 빌려봤다. 우린 금요일 밤마다  movie night 가지며 즐거웠고 때론 각자의 취향에 맞는 DVD를 보기도 하며 지냈다. TV가 없어서 불편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원래 있다가 없으면 불편하지만 처음부터 없으면 그런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신혼부부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 신혼부부네 집은 조금 과장 보태서 방보다 더 큰 TV가 걸려있었다. 그것을 블랙프라이데이 때 저렴하게 사서 횡재했다고 했다. 우린 사람들이 블랙프라이데이 때 흥분하는 것을 보고(한국까지) 대체 왜 무엇을 사려고 그렇게 난리인 거야? 그랬을 때다. 그날은 전자제품 세일이 폭이 제일 컸고 결국 그들은 엄청나게 큰 TV를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그 얘기를 들은 우리도 블랙프라이데이 때 무슨 물건을 좀 건져볼까 싶어서, 그 야밤에 월마트에 갔다. 어쩐지 사람들이 카트에 전자제품 하나씩은 기본으로 꼭 싣고 다녔다. 아무래도 TV 사이즈가 커서 카트에서도 눈에 띄긴 했다. 분명 보통 때보다는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내 TV를 사지 않았다.








제주 집은 일 년살 이하며 빌린 집이라 모든 기본 가구, 전자제품들이 기본 옵션으로 들어있다. 냉장고도 세탁기도 있고 심지어 전자레인지도 있고 잔디 깎기 기계도 있다. 그런데 딱 한 가지가 없다. 바로 TV이다. 이것은 우리 가족에겐 운명과 같은 일이다(어차피 우리 집도 아닌데 그것만 없다니) 사실 처음에 TV가 없는 것을 눈치못채고 있었는데 엄마가 알려주셨다. "이 집은 다 있는데 TV가 없네" 참고로 TV를 즐겨보는 어른들은 우리 집을 너무 심심하고, 따분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TV가 집에서 없으면 집은 늘 절간처럼 조용하다. 서울 도심에 있어도, 이렇게 제주 시골에 살아도 그냥 계속 조용하다. 우리에게는 TV가 있던 적이 없어서 이제는 이것이 더 익숙하다. 우리에게 TV가 없어서 좋은 점은  TV 대신 책을 읽고, 대화를 더 많이 한다는 것이다. '맨날 보는데 무슨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해?' 우린 밤마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대신 서로가 본 책이나 영화에 대한 줄거리를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추천도 해주기도 하며, 육아에 대한 얘기, 서로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아이는 TV가 없다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장난감을 잘 가지고 놀고, 그림도 그리고 특히 이곳에서는 마당에서 흙을 만지며 논다. 물론 집에 TV가 없다고 영상을 아예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요즘 우리는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시청하며 지낸다. 아이도 아침, 저녁으로 꼬박꼬박 열심히 챙겨본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집에 TV가 없었다. 아마도 아이가 TV를 처음 본 것은 자주 가던 친정에서였을 것이다. 친정에는 보통 때 TV가 계속 틀어있으니 아이외갓집에 가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TV에서는 재밌는 것들이 계속 나왔다. 때론 아이들 전용 방송을 보기도 했고 어른들이 보는 드라마도 함께 보며 즐거워했다. 어쩌면 나도 그래서 친정에서의 육아가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곳에 가면 소파에 가만히 누워서 리모컨을 돌렸고, 아이는 놀다가 TV를 보다 놀다가 TV를 보는 것을 반복했다.  우리는 마치  TV가 있는 곳으로 휴가를 간 것처럼 철저하게 그곳을 즐겼다.






TV가 있을때 우리 모습이 상상된다





아이는 친구들 집에 TV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TV라는 가전제품을 인식하게 되었던 어느 날, 놀러 갔던 친구 집에 정말 커다란 TV(보통의 가정에 있는 사이즈)가 있어서 놀란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신기한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엄마 수아네도 TV가 있어"라고 말해줬다. 그 후 어느 날은 아이가 다른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아이는 친구보다 친구 뒤편으로 보이는 TV를 눈이 빠져라 시청하고 있었다. 좀처럼 대화가 이어지지 않아 영상통화를 종료하려고 하자 "엄마 조금만 더" 하면서 친구가 아닌 TV를 조금 더 보고 싶어 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외갓집 다음이 호텔이다. 종종 호텔이 가고 싶다고 얘기해서 '아기가 벌써 호텔 타령을 하고 큰일 났네" 생각했다. 어느 날 호텔을 너무 가고 싶어 하길래 "호텔을 가고 싶은 이유가 정확히 뭐야?" 하고 물어보니 그곳에서는 종일 TV를 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보통 우리 호텔에 가면 TV를 계속 틀어놓았고, 그곳에서는 아이가 무엇을 보든 내버려 두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이에게는 호텔은 여행을 가서 깨끗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곳이 아니라, 무한정 TV를 보는 곳이다. 왠지 우리가 TV를 너무도 좋아했던 그 피가 아이에게 고스란히 물려진 것 같다.   




며칠 전 내가 뉴스가 보고 싶어 컴퓨터로 뉴스를 틀어놨더니 아이가 뉴스마저 재밌게 보는 것을 보고 너무 웃겼다. "이거 뉴스인데 재밌어?" "어, 진짜 재밌어. 엄마 원래 TV에서 제일 재밌는 게 뉴스야" 유치원생이 말하는 모습이 거의 50대 아저씨 같아서 정말 웃겼다.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TV 없이 어떻게 살아?" 또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말한다 "요즘 애 있는 집은 TV 거의 없잖아" 완전히 다른 두 문장이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굉장히 신경 쓰였던 말들인데 이제는 너무 많이 들었더니 지금은 찮다. 처음엔 "아이 때문에 TV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가 TV를 너무 좋아해서 없는 거예요"라고 변명도 해봤다. 그것도 몇 번 말하고 보니 별 의미없었다. 어차피 남들의 말은 중요하지 않다. 우린 TV 대신 책을 보고 대화를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때론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있으며 이미 질릴 정도로 인터넷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족이 된 시점부터 집에 TV는 없다. 요즘 유행하는 TV 프로그램도 잘 모르고, 때론 중요한 뉴스도 놓칠 때가 있다. 그래서 아쉬울 때가 있지만 없다고 해서 그렇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TV가 있고 없고는 우리의 자유이다.  우리는 아직 TV가 없는 지금의 삶을 좀 더 즐겨볼까 한다. TV 없이 살아도 별일 없이 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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