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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y 11. 2022

또 거기에 간 게 실수야!



오늘 아이가 아빠와 함께 도서관에서 동화책을 빌려왔다. 빌려온 책을 확인하다가 깜짝 놀랐다. 제목이 너무 와닿아서... 동화의 제목은 '또 마트에 간 게 실수야!'이다.



동화책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토끼가 집에서 몽키스패너를 찾다가 없어서 마트로 간다. 마트에 가서 '이것도 필요해, 저것도 필요해' 하면서 카트에 물건을 가득 담은 후 마지막으로 몽키스패너를 떠올리고 그것까지 모두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몽키스패너는 정리안 된 창고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분명 토끼는 마트에서 잔뜩 사 온 물건을 보면서 후회했을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사게 된 거지? 나는 몽키스패너 하나 사러 마트에 간 것뿐인데라고 정신이 들었을 것이다. "또 마트에 간 게 실수야" 이 동화책은 계획 없는 소비에 대비해, 올바른 소비습관을 길러주는 그림책이다.



이 책은 분명 아이가 빌려온 책인데, 내가 읽다가 깜짝 놀라버렸다. 그리고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늘 또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렇다. 난 오늘도 쇼핑을 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고 옷 가게에 들린 게 화근이었다. 하필 오늘의 계획 중에 한 개가 사라지는 바람에 시간이 넘치도록 많았다.  그 남은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서 '또 그곳에 간 게 실수였다'  



오늘따라 매장에 손님도 없이 한가하다(당연하다 평일 오후다). 처음엔 '한번 둘러볼까?' 하고 여유 있게 살펴보았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옷이 하나 나의 레이더에 잡혀버렸다. 그  옷을 몸에 대 본 후,  '한번 입어볼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후 옷을 입고 거울을 보는 순간!! 이것을 무슨 옷이랑 입으면 예쁠생각하며, 집에 가진 모든 옷을 다 생각해내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시물레이션을 돌려버렸다.



그 후 나는 생각했다 '어머 건 사야 해!




인터넷에 떠도는 유명한 '사야 해' 짤




사실 나는 그 옷이 필요 없었다. 이미 가진 옷 너무나 많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나올 수도 있었는데 역시 절대 그럴 수도 없었다. 그곳을 나오는 내 손에는 이미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옷을 사고 돌아오는 길 나의 발걸음은 가볍고도 무거웠다. 예전에는 옷을 사면 100% 즐겁고 좋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50% 정도는 무거운 마음이 함께한다.   



그렇게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 분명 결제하기 전에 직원과 함께 옷을 검품하고 구매했는데, 집에 와서 다시 확인해보니 옷 아래쪽에 올이 쭉 나가 있다. 거기에 단추를 열어보니 안에도 색색 낙서가 되어있었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야!



그때라도 나는 상황을 인식하고 수정해야 했다. '이 옷은 어쩌면 내 옷이 아니구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느낌을 무시하고 또 냉큼 옷가게로 전화했다. 그랬더니 친절하게 바로 맞교환으로 주문해놓겠다고 말한다. 이제 빼박이다. 이 옷은 나를 벗어날 수 없다. '역시 그곳에 간 것이 절대 잘못이다'








때로(아주 때론) 쇼핑을 잘 참는다. 옷이 가득한 쇼핑몰에 가도 절대 사지 않고도 돌아오곤 한다. 그때 나는 오히려  뿌듯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경우가 많지 않다. 특히나 제주에 와서는 쇼핑하기가 힘드니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면 사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어? 정말 이상하다.



오늘 제주는 여름 날씨였다. 여름 날씨에 봄-여름 사이의 옷을 사는 바보 같은 나. 나란 사람은 언제쯤 정신 차려서 진짜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을까. 마음은 그냥 맥시멀인데 미니멀리스트로 사느라 고생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이미 가진 옷으로만 충분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왜 자꾸 쇼핑의 불모지 제주에서 자꾸만 쇼핑을 하는 이유가 뭘까? 응? 정말 뭘까? 왜 그러는 건데?









이번에는 정말 아쉽게도 쇼핑의 욕구에 지고 말았지만!(또?!!!)  어찌 되었건 내가 꿈꾸는 이상향은 미니멀리스트이다. 정말이다. 이미 나는 가진 옷이 충분하다. 그런데 또 옷을 사서 이런 죄책감을 가진 것이다. 그렇다면 미니멀리스트는 옷을 절대 사지 말아야 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평생 심플한 옷으로 똑같이, 영원히 입어야 하는 것일까? 대체 미니멀리스트들에게는 '옷을 구매하는 조건?'이라던지, '옷을 사야 할 이유?' 이런 것은 없는 걸까?  평생 입을 수 있는 옷이 있기는 한 걸까? 무조건 옷의 가짓수를 줄인다고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것일까? 옷이라는 게 취향인데,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옷을 산다고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것일까? 이렇게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결국 그것에 대해 적대적인 생각이나 하고 있는 나는 참으로 어리 석어 보인다.



사실 지금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내가 오늘 옷을 산 것을 정당화하려는 시추에이션이 되겠다. 그렇다 오늘의 나는 옷을 사고 기쁨과 환희 50%, 죄책감 30%, 후회 20% 정도의 마음을 품고 지내고 있다. 앞으로는 정신 차려야지 찰싹찰싹!



오늘 나는 소유와 무소유 사이에서 소유를 선택했다. 언젠간 꼭 모든 소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길 기대해본다.(제발...)







* 메인 사진 : https://pin.it/31KXfQ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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