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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Apr 30. 2022

나는 워킹맘이 아니니까

소풍 도시락


내일은 아이의 유치원 소풍날이다. 처음으로 소풍을 가는 것은 아닌데... 아니 어쩌면 도시락을 싸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소풍'이라고 말한다면 내일이 '아이의 첫 소풍'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아이는 코로나 때문에 유치원을 다녔어도 밖으로 제대로 현장학습을 가본 적이 없다. 그러다 제주로 이사 왔을 때 어린이집에 다니며 귤을 따러 가고, 생태숲에 가고 그래서 더욱 좋았다. 그때는 어린이집이라 그랬는지 도시락을 싸오라고 하지 않았다. 소풍을 다녀온 후 바로 원에서 점심 식사를 하곤 했다. 그러다 올해 새로운 곳으로 옮겼는데... 이제부터는 소풍 도시락을 준비해 오라고 한다.




내가 유치원에서 일했을 때 그 '도시락'에 대해서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도 아이들처럼 소풍 가는 날은 즐거웠다. 오늘은 밖에서 아이들과 재밌게 놀다 들어오면 되겠구나, 아이들만 안전하고 신나게 지내고 오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풍날은 아이들이 가져온 선생님들 간식으로 넘쳐났다. 개중엔 솜씨 좋은 엄마들이 계셔서 3단 도시락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여러 가지로 소풍날은 마치 잔칫날 같았다.



그런데 막상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그리고 소풍이라고 '도시락'을 가져오라고 하니 약간 마음의 부담이다(처음이라 그렇겠지?). 워낙 김밥을 좋아해서 거의 매달 1번씩은 꼬박 집에서 김밥을 싸 먹었는데 왠지 도시락으로 싸서 보내야 할 생각하니 번거롭기도 하다. 거기에 아이디어를 얻고자 '엄마가 싸준 소풍 도시락'으로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엄마들이 갖은 기교를 써서 만든 캐릭터 도시락을 보고는 더욱 부담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했던 아이 소풍 도시락 퀄리티 보소!  / naver




심지어 친구가 소풍을 보냈다고 sns에 올린 도시락 사진만 봐도 그랬다. 메추리알로 만든 꼬꼬와 소시지로 만든 문어에 귀여운 픽까지 꼽은 도시락은 너무 열정적이었다. 나는 사실 미니 김밥이랑 과일만 싸가면 되지 생각했는데... 자꾸 생각할수록 안 되겠다. 소시지로 문어라도 만들어 보내야지 싶어 진다.  밖에 있는 남편에게 사진을 보내며 말했다. "집에 올 때 소시지 좀 사다 줘요" 



나는 집에서 혼자 있을  모든 게 귀찮아서 라면, 쌀국수 인스턴트만 먹는데, 내일 새벽부터 일어나서 김밥 싸고, 소시지로 문어 만들고 여러 과일을 컷팅해서 보내려니 뭔가 기분이 이상해진다.










남편에게 "내일은 나 못 나가. 아이 소풍이라 아침부터 일어나 김밥 싸야 해.." 하고 말했다.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그냥 김밥 한 줄 사서 보내~ 요즘 일회용 박스에 잘 넣어주잖아 그거 보내면 되지~"

"아니 어떻게 아이 소풍 김밥을 사서 보내~ 내가 일하는 워킹맘도 아니고" 그러니까 남편이 "생각을 바꾸면 몸이 편해져. 그냥 사서 보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왜 는 엄마라는 이유로 김밥을 꼭 싸서 소풍을 보낼 생각을 할까? 아빠라는 사람은 (우리 남편만 그렇겠지?) 김밥을 사서 보내라고 쿨하게 얘기해주는데.




사실 선생님으로 지낼 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어떤 한 아이 엄마가 유치원 앞에서 파는 김밥과 일회용 수저를 넣어서 보냈었다. 30명 중에 그 엄마 하나만 사 가지고 온 김밥이었다. 내가 어릴 때 엄마가 소풍 때면, 그러니까 초, 중, 고 1년에 각 최소 2번씩, 모두 24번 거기에 종종 추가되고는 하는 현장학습에도 김밥을 싸주곤 해서 전혀 몰랐었다. '요즘 엄마들은 김밥을 사서 보내기도 하는구나...' 사실 그때 나의 나이는 '김밥을 사 온 엄마'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게 진짜로 엄마를 위한 길이었다. 그때 "어머님 너무 잘하셨어요 바쁘면 김밥 사서 가져올 수도 있죠" 칭찬해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되려 불편하게 생각했던 내가 죄송한 마음이다.



일하는 엄마는 일을 하고 집안일, 그리고 아이를 돌보는 일까지만 해도 벅찼을 텐데 아이 소풍이라고 (그것도 꽤 자주) 매번 김밥을 싸오라고 했으니, 워킹맘에게는 그게 최선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그러면 전업 엄마는 김밥 사서 보내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는 '가벼운 책임'을 가지고 살려고 하는 '전업맘'이니까 다음번엔 사서 보내도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역시 자기 합리화가 최고다!



이번에는 처음이니까, 아니 김밥 재료를 사놓았으니 김밥을 싸서 소풍을 보낼까 한다. 그러나 혹시 내가 너무 캐릭터 김밥을 싸는 것에 스트레스받게 된다면 그냥 노멀 김밥을 싸서 보낼 것이며 그것도 여의치 않아지면... 그래도 보내긴 해야겠지. 우리 아이 혼자 굶게 할 수는 없으니!



너무 부담 갖지 말자. 모든 일은 우리가 행복하려고 하는 일뿐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내버려 두자.





이런 글 쓴 것 치고는 너무 열심히 만든 티가 나는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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