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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y 18. 2022

이미 길들여져 버렸어

침대

제주 우리 집에 4박 5일 손님이 오셨다 가셨다. 4박 5일이 마치 14박 15일, 아니 40박 41일 정도 되었던 느낌이다. 지나고 나면 얼마 되지 않는 날인데 왜 이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 기간 동안 나는 평소에 전혀 아파본 적 없는 발바닥이 아파왔고, 그 중간엔 팔과 다리 등의 몸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특히나 밤이 되면 무릎과 발목이 너무 아파와서 찜질을 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그것 참 이상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랬나? 이전엔 '예민함 혹은 스트레스'로 끝날 일이 이제는 몸까지 아파온다. 당연히 손님맞이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 별일 아닌 일에도 내 몸이 이렇게 아플 정도라니 이상했다.



왜 이렇게 피곤하고 몸이 아픈 거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https://pin.it/7ty8e1Y









그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였다. 우리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긴 했는데, 잠자리가 바뀌니 영 불편했다. 손님이 오신 것과 잠자리가 바뀐 것이 어떻게 연관되냐면... 우리에겐 종종 이렇게 안방과 침대를 내어주곤 하는 손님들이 오곤 한다. 그러면 우리는 2층에 올라가서 자곤 한다. 보통 하루, 이틀 정도이다(우리 집은 1층에 거실과 안방이, 2층에 옷방 겸용 거실과 방이 있다).



그래도 2층에 가서 잘 수 있는 계절이 돌아와서 낫긴 하다. 왜냐하면 겨울의 2층은 손과 발이 시려서 올라가 있을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는 하루라도 잠을 잤다가 아마 동상 상태로 발견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지난겨울의 끝에 손님이 오셨을 때는 안방의 침대를 내어드리고 차마 2층에서 잘 수가 없어서, 남편을 호텔로 보내고 내가 손님과 같이 방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날이 풀려서 2층에서 잠을 잘 수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2층에 있는 침대이다. 2층 침대는 딱딱한 나무 침대이다. 아주, 정말, 매우 딱딱하다. 그런데 돌 침대가 아니라 나무 침대인데 신기하게도 온열 기능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밖은 나무고, 안은 돌일까?).  첫째, 둘째 날은 분명 춥지 않았고, 째 날은 추워서 온열 기능을 켰는데 아주 미미한 온열이 느껴졌다. 그래서 넷째 날은 온열 온도를 확 올렸다. 그랬더니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문제의 딱딱한 2층 침대, 평상시 모습





그런데 바닥이 춥고 따뜻한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흘 동안 나는 딱딱한 나무침대에 적응해지지 못했다. 남편에게 말했다. "혹시 캠핑을 가서 잠을 자면 이렇게 딱딱한 곳에서 잠을 자는 것이 아닐까?(캠핑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의 상상력)"  나흘 동안 나무 침대를 불평하니 남편이 말했다. "산장으로 캠핑 왔다고 생각해" 그렇다, 그 방은 흡사 편백나무로 지어진 산장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렇게 딱딱한 곳에서 자야 하는 것이 캠핑이라면 평생 캠핑은 꿈도 꾸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흘 동안 그 딱딱한 침대에서 잠을 자려니 죽을 맛이었다. 밤마다 울고 싶었다.  "그러면  토퍼를 사서 침대 위에 올리는 것은 어때?" 누군가는 쉽게 말할지도 모른다. 손님이 오신다고 토퍼를 사들이면, 손님이 오시니까 텐트도 사고, 손님이 오시니까 집도 아예 다 내어드려야 할까?  그리고 토퍼를 산 후에 그다음은 어떻게 할 건가? 제주를 떠난 후에는 우리 집에 와서 손님이 자는 일은 절대 없을 건데(확신하고 싶다), 그럼 그 토퍼는 또 쓰레기로 버릴까? 차라리 토퍼를 살바엔 집으로 손님이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을 듯싶기도 하다(부정의 끝판왕).









내가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는 이유 중에 하나는, 언제고 또 지금 사는 곳을 떠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 1층의 안방에서 사용하는 침대를 사기 이전에, 침대 없이 4년을 가까이 살아봤다. 결국엔 침대를 구매하게 되었는데, 내 뜻이 아니라 집에만 오면 잔소리를 하는 누구 때문에 침대를 사게 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냉장고도)이다.




침대를 절대 사지 않으리라 버티다 우여곡절로 침대를 사긴 했는데 생각보다 침대가 정말 좋았다. 푹신하다. 꿀잠이 온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 때면 '정말 편안하다, 참 좋다'라는 생각이 절로든다. 역시 돈이 좋구나라는 생각까지 든다. 인간이 참 간사하다. 아이가 태어나고 바닥에서 4년 정도를 살았는데, 바닥 생활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때는 힘든지도 몰랐다. 그런데 다시 침대로 돌아오고 나니 다시 바닥 생활로 돌아갈 수가 없다. 침대를 갖게 된 지 2년여 만에 나의 몸은 침대에 길들여져 버렸다.



손님들이 제주를 떠나셨다. 주말에 하루라도 손님이 왔다 가면 끊기는 일상인데 4박 5일이나 계시다 가셨으니 완벽하게 깨져버린 흐름이다. 그러나 다시 나의 침대로 돌아와 자니 잠이 보약이다. 흥미롭게도 몸의 곳곳 아팠던 곳이 신속하게 사라졌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정말 좋다.



이번 일을 계기로 미니멀보다 소중한 게 내 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니멀에도 침대는 필요하다. 앞으로 침대는 평생 사용할 것 같다.








메인사진 : https://pin.it/7ztCN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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