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기숙사에는 냉장고가 없었다. 작은 냉장고 하나 있어도 될법한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가 도착했을 당시가 겨울이라 얼마간은 창문 밖을 냉장고처럼 사용했다. 우린 아침에 간단하게 먹을 식빵이나 누텔라 잼 이런 것들을 사서 그곳에 보관했다. 전기주전자는 필요하면 빌려서 사용할 수는 있었던 것 같다.
기숙사는 층마다 공용으로 사용하는 샤워시설이 있었다. 마치 피트니스센터의 샤워시설 모습이었다. 근데 샤워부스가 아니라 샤워 커튼으로 막혀있었다. 샤워기가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샤워기여서 불편했고, 물 조정되는 방식이 양쪽 찬 물, 뜨거운 물을 조절해야 하는 구식이었다. 그래도 따뜻한 물은 잘 나왔던 것 같다. 공용 샤워장이라 샤워를 하고 옷을 잘 챙겨 입고 다시 방으로 돌아오는 것은 조금 불편했다.
지하 1층에는 코인을 넣고 사용하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건조기가 일반화되지 않을 때였는데, 건조기는 정말 편리했다. 세탁기에 세탁물을 넣어놓고 올라갔다 내려오면 빨래가 다 되어있었다. 그리고 다시 건조기에 넣고 돌리면 건조까지 완료할 수 있었다. 건조기에 옷을 넣으면 옷감이 빨리 상하거나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빨래, 건조 한꺼번에 할 수 있어서 꽤 편리했다. 그래도 기숙사에서 빨래를 할 때가 편했다. 나중에 기숙사를 나와 맨해튼 곳곳에 위치한 코인빨래방에서 세탁을 했는데, 세탁이 끝날 때까지 시간이 꽤 길어서 한참을 기다렸던 것 같다.
기숙사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매일 125st station에서 지하철 red line 1을 탔다. 기숙사는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서 굉장히 먼 곳에 위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숙사라는 이유로 비용이 더 들었다. 다들 가격보다 위치가 불편하고 편의시설이 부족하니 기숙사에서 빨리 나가고 싶어 했다. 보통 그래서 뉴욕이 익숙해질 즈음, 기숙사에서 1~2달 살고 나와 살 곳을 구한다고 했는데 나는 그것보다는 더 살았던 것 같다.
뉴욕 지하철 역
우리는 뉴욕의 기숙사에서 처음 만났다. 도착한 날의 저녁이었는지, 도착한 다음날의 저녁에 그 아이가 들어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늦은 저녁 기숙사 방 안으로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키가 정말 컸는데 몸은 삐쩍 마른 아이. 그는 나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겨우 하루가 지나지 않은 시점에 미국에 왔다는 설렘은 잠시였고, 그 기숙사의 적막함이 심심하기도 외롭기도 해지려는 시점에 드디어 사람을 만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한국사람! 참고로 기숙사의 룸메이트는 한국인이 될 수도 있고 외국인이 될 수도 있다(처음 만난 룸메이트 이후에는 브라질 친구를 맞이했다). 한국에서 살다가 한국사람들만 만나다가 미국에 온 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금세 한국 사람이 그리워진 것은 뭐지? 암튼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먼저 인사를 나눴다. 짐을 풀기 시작한 그에게 이름을 물어봤다. 그리고 나이를 물어봤다. 아... 하필 태어난 년도가 똑같다. 그런데 문제는 나에게 있다. 나는 빠른 생일이라 7살에 학교를 가서 친구들이 나보다 한 살씩 더 나이가 많다. 그 순간 잠시 고민을 했다. 앞으로 이 아이와 친구로 지낼 것인가, 언니로 불릴 것인가. 이것은 대학을 졸업 후 사회에 나와서 나이를 알게 되는 시점에 늘 고민하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빠르게 '친구'로 결정을 내렸다. 그날 이후로 우린 계속 친구로 지냈다.
나도 그 아이도 뉴욕에 도착한 후 처음 만난 사이라, 그 후로 계속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평범한 듯 보이지만 통통 튀는 생각이나 센스를 가진 친구가 참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리고 나이가 동갑이라 더 편했던 것 같다. 첫날부터 그는 밤에 잘 때 코를 골았다. 나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도 코를 골기 때문이다. 친구는 삐쩍 말랐는데도 코를 골고, 나도 골고(뚱뚱한 사람들만 코를 고는 줄 알았다) 훗날 서부로 친구들과 여행을 갔을 때 코를 곤다는 이유로 우리와 아무도 자려고 하지 않아 그때도 호텔을 둘이 썼다.
뉴욕에서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다. 첫 주말, 우린 함께 어디로 가볼까 고민하다 '매그놀리아 컵 케이크'를 먹으러 갔다. 우리 둘 다 sex and the city 미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캐리와 미란다가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의 매그놀리아 컵케이크 가게에서, 컵케이크를 구매하자마자 크게 한 입 물고 먹으며 가게를 나오는 그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20대의 우린 그 모든 것에 반해서 뉴욕에 온 것이었지만 뉴욕의 첫 목적지가 그곳이 될지는 몰랐다. 그때만 해도 핸드폰으로 구글맵은 꿈도 못 꿀 때라 뉴욕 관광 책에 있던 매그놀리아 컵케이크 가게 위치를 확인하고, 맨해튼 종이 지도에 위치를 파악해놓은 후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에 내려서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로부터 7~8년 뒤에 뉴욕 근거리에 살게 되었을 때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며 가고 싶은 곳을 빠르게 찾아갔을 때, 새삼 세상이 이렇게 편해졌다니 하고 놀랐다. 그때의 우리는 이렇게 편리하게 길을 찾게 될 줄은 그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다.
뉴욕이 처음이라 뉴욕 메트로를 타는 것도, 내려서 그 컵케이크 샵을 찾아가는 것도 한참 헤맸다. 끝내 그 컵케이크 가게를 찾아냈다. 기다리는 줄이 엄청 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다행히 5분 정도 기다리고 바로 들어갔다. 우린 각각 4개의 컵케이크를 사서 돌아왔는데 2개는 금방 먹고, 남은 2개는 그다음 날 아침으로 먹었다. 처음엔 맛있었는데 이후엔 너무 달고 느끼했다.
뉴욕의 기숙사에서 살던 그때의 기억을 가물가물하지만 첫 룸메이트 그녀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계속된다. 우린 같은 해에 결혼을 하고 한 해의 차이를 두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얼마 전 그녀는 제주도에 다녀갔다. 이제 우리의 뉴욕은 너무도 오래된 과거라 이제 만나서 언급조차 하지 않을 그런 곳이지만, 우린 그때 룸메이트의 인연으로 만나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이제 만나면 서로의 아이에 대해, 우리의 새로운 삶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그녀는 그때만큼 여전히 다정하다. 언제나 우린 서로에겐 그때 그 모습 그대로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