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st, 2nd Ave 어딘가에서...

3. Newyork, USA

by Blair


드디어 기숙사를 떠났다. 생각보다 더 오랜 기간을 그곳에서 지냈다. 시간이 흘러서 룸메이트도 떠나고, 다른 친구들도 거의 기숙사를 떠나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새로운 집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주 뒤에 서부로 여행을 길게 떠나기로 해서 일단 한두 달 정도만 살아볼 집을 구했다. 지금은 125st언저리에 살고 있었으니 맨해튼 아래쪽으로 내려가 살아보고 싶었다.



다행히 짐이 많이 늘지 않았다. 커다란 이민 가방과 트렁크 1개가 전부였다. 지금의 나라면 아니 얼마 전의 나라면 맥시멀 리스트로의 모습을 뉴욕에서 과감하게 보여줬을 텐데 그때의 나는 뉴욕의 먹거리에 진심인 유학생일 뿐이었다. 내 돈은 쇼핑이 아니라 유명한 뉴욕의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느라 쓰였다. 그리고 지금의 나 같으면 그 비싼 레스토랑에서 재료 하나하나를 음미해보며 맛을 느낄 수 있을 테인데, 20대의 나는 그저 먹어 해치우는 푸드 파이 터였을 뿐이다. 그 나이 때는 뭘 먹어도 맛있을 때가 아닌가? 특히 집밥을 먹지 못하는 유학생에게는 무엇이든 맛있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짐이 많이 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때도 뉴욕의 월세는 비쌌다. 특히 그때의 나는 기숙사에 머무는 시간보다 밖에서 친구들과 놀고, 먹고, 돌아다니느라 집에서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서, 집에다가 별로 큰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밖에서 실컷 놀다가 늦은 밤 집에 돌아와서는 잠을 자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한 가격선에서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곳을 중점으로 찾게 되었다.








그때 뉴욕의 아주 유명한 한국 사이트가 있었는데, 그곳에 매일같이 새로운 매물 리스트가 올라왔다. 뉴욕의 월세를 생각하면 절대 혼자서 감당하기엔 부족했기 때문에 적당한 가격선에서 룸메이트로 들어가 사는 것을 위주로 찾아봤다. 집을 여러 군데 봤다. 그러다 나중엔 지쳐서 그냥 이 정도면 되겠다 싶어서 선택했던 것 같다.



지금 브런치에는 어디에 집을 구했다 이렇게 간단하게 써질 글이지만, 그때는 집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저렴한 집세에 혹해서 보러 갔다가, 너무 어둡고 컴컴해서 무슨 봉변을 당하는지 알았다. 여기선 절대 못살겠구나 싶어서 더 물어볼 것도 없이 되돌아 나왔다. 같이 간 친구는 아마 나보다 더 놀랬을 것이다. 원래 같으면 집을 보러 혼자 다녔을 텐데, 그날따라 같이 동행한 친구에게 고마워했어야 했다. 뉴욕에서 두 번째로 살게 될 집은 적어도 저녁에 집으로 들어갈 때 안전한 곳이어야 했다.




마침내 30~34st과 2nd ave 언저리에 집을 구했다. 다시 구글맵을 찾아봐도 대충 그즈음의 아파트였는데 정확한 주소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2 bed room, 1 livingroom 구조의 아파트였는데, 방이 아니라 거실 셰어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가격은 기숙사보다는 훨씬 저렴했지만 맨해튼 내라서 그런지 거실을 셰어 한 것 치고는 비싼 가격이었다. 그래도 기숙사의 비용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 같다. 125st 언저리에 살다가 34st 아래쪽에 내려와서 사니 집과 어학원을 오가는 시간도 줄어들고, 동네 자체도 안전해 보여(위쪽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웠다.
















그 즈음 찍어놨던 집 근처의 풍경





뉴욕에서 2번째 집이다. 이민가방 1개와 캐리어 1개를 들고 2번째 집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거실이 널찍했다. 그리고 거실엔 침대가 하나 책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방처럼 사용할 수 있게 문대신 커튼으로 막아놓아 드나들 수 있었다. 참고로 들어간 첫날 열쇠를 받고, 집의 설명을 들을 때는 제외하고는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을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만큼 그때의 집은 겨우 잠을 자고 씻고 나오는 곳에 불과했다.




대신 그 집에서는 주방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스무 살 언저리의 나는 할 수 있는 요리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 점심, 저녁 계속 사 먹어야 하는 생활에 조금 지쳐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뉴욕까지 가서 건강한 집밥을 만들어 먹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래도 아주 간단한 요리라도 해 먹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딱 하나였다. 계란밥, 말 그대로 계란 스크램블을 해서 밥을 넣고 볶음 다음에 간장으로 마무리하면 되는 정말 초 간단한 메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해 먹었으니 그 경력만 이미 10년이 넘은터였다. 난 이 메뉴에 재료 한 가지를 더 추가하기로 했다. 지금 같으면 그 계란볶음밥에는 이런 영양소가 필요하다며 야채를 추가했겠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딱 한 가지 소세지를 추가했다.




기다란 소세지가 5개인가 6개 정도가 포장되어 있는 것을 샀다. 종종 마트에서 사는 것들을 실패하곤 하는데 그때는 한 번에 성공해서 그 햄만 계속 사 먹었던 것 같다. 암튼 그 소세지를 잘라서 계란밥에 넣었다. 재료는 식용유, 계란, 밥, 소시지, 간장 이것만 있으면 되니 정말 간단했다. 나는 그것을 한두 달 정도 매일 아침으로 먹었다. 가끔은 넉넉히 해서 점심메뉴로 싸가져가기도 했다. 결국 그 밥을 기점으로 나중에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약 10kg가 쪄서 돌아오게 되었다. 미국에서 살이 찐 이유의 시초가 햄버거나 감자튀김이나 콜라도 아니고 계란밥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정말 당황스럽다. 그리고 원래의 몸무게로 돌아오는데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오..노...










그저 잠만 자면 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곳은 편하지 않았다. 아마 그 거실에 있었던 침대가 일반 침대가 아니라 라꾸라꾸 침대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곳은 딱 임시거처 느낌이었다. 딱히 편하지 않은데 불편하지도 않은 느낌. 나는 그때 가지고 있던 베개도 이불도 없었는데, 대체 어떻게 지냈나 궁금하다. 이렇게 기억은 사라진다.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야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 마법 같은 일이다.



그 집에서 살 때는 집에 들어오는 길에 들리던 작은 마트가 있었다. 인도인이 주인인 가게였는데 종종 들러 물 한병

과 과자를 사 먹었다. 그 과자는 우연히 발견한 과자였는데 너무 맛있어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다 먹었다. 이름이 밀라노 쿠키인데 다크 초콜렛 맛도 있고, 밀크 초콜렛 맛도 있고, 때론 초코 청크가 들어있는 쿠키도 사 먹었다. 뭐든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다 맛있어서 주체하지 못했을 시절이다. 이 글을 쓰다 말고 그 과자가 팔고 있나 검색해보니 이제 직구로도 쉽게 살 수 있다. 아, 먹고 싶다. 30대의 나도 아직 뭐든 맛있다. 후후





나를 살찌게 한 두 번째 주범






나는 그곳에서 살 때 운동도 할 겸 34st에 있던 어학원에 걸어다기도 했다. 내 기억에 ave만 몇 개 넘으면 학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개의 ave의 길이가 꽤 길기 때문에 대략 30분 정도는 걸렸던 것 같다. 아침에 30분을 맨해튼을 열심히 걸어 다니다 보면 아침과 동시에 활발하게 시작하던 곳도 만날 수 있었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보통의 아침에 출근하는 뉴욕 직장인들을 생각하면 한 손에는 베이글,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아마 내가 살던 곳이, 내가 지나가던 곳이 그런 직장인들이 유독 없던 곳이라 더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학원에 늦을까 서둘러 걷던 그날의 내 모습이, 친구들과 눈에 불을 켜고 음식을 먹던 순간들이, 오늘은 끝나고 뭐하고 놀까 고민하던 우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 돌아가면 더 재밌게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메인 사진 : https://pin.it/6bqLP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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