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캐리를 꿈꾼다
1. Newyork, USA
아주아주 긴 비행이었다. 아마도 태어나서 비행기를 가장 오래 탔던 날 일 것이다. 14시간, 그곳은 아주아주 먼 곳이었다. 나는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국에 간다. 그것도 꿈에 그리던 뉴욕이다.
대학 졸업을 기점으로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선택한 최종 목적지는 뉴욕이다. 뉴욕으로 어학연수 가는 대학생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겉 멋(?)이 들었었다. 그러나 20대의 나는 어학연수를 뉴욕으로 가다니 정말 획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아마도 sex and the city 미국 드라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아무튼 이왕 가는 미국, 뉴욕으로 가서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이가 들어 다시 생각해보건대 내가 잘했던 행동 중에 BEST 10 정도로 들지는 않을까? 그곳은 참 재밌고 신나는 곳이었다.
뉴욕 JFK에 도착했다. 때는 2월 말의 겨울이었다. 예약해놓은 리무진을 타고 내가 살게 될 기숙사로 향했다. 전날 내린 눈으로 창밖엔 녹다만 눈이 가득했다. 그날 차를 타고 보던 바깥의 풍경이 종종 기억이 난다. '여기가 드라마에서 보던 미국이구나' 생각했다. 띄엄띄엄 집이 있기도 했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도 보았다. 도로에 차는 꽤 많았고 길을 곧게 뻗어 있지 않고 구불구불한 느낌이었다. 때론 차가 막히기도 했다.
뉴욕... 내가 살게 될 그곳은 대체 어디일까? 차가 한참을 달려 내가 지내야 할 곳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짐과 함께 어느 건물 앞에 내려졌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알고 보니 그곳은 거의 뉴욕의 맨해튼, 그중에 할렘에 근접한 곳에 위치한 기숙사였다. 내가 도착했던 날은 주말이었는데 다행히도 기숙사를 관리하는 직원이 마중 나와 주었다. 기숙사에 대한 주의사항을 듣고 주위 건물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그 기숙사 직원인 줄만 알았던 사람은 나중에 어학원에서 선생님으로 만났다.
기숙사에서 바라보는 풍경
나는 2인실 기숙사에 들어갔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두 개의 침대가 놓여있었다. 나는 창가에 있는 자리를 선택했다. 밖이 꽤 추운 날씨였기 때문에 되려 기숙사는 따뜻했다(지금 되돌아보니 젊어서 그랬나 별로 춥지 않았다). 겨우 기숙사에 도착한 나는 뉴욕에 있다는 것이 꿈만 같고 신났다. 비행기를 타고 차를 갈아타고 이곳에 도착한 것이 비현실처럼 느껴졌다.
짐을 조금 풀고 나니 배가 고파왔다. 밖에 나가서 뭐라도 사 먹어 볼까 싶어서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기숙사의 방향에서 위로 갈지 아래로 갈지 고민했다. 위로 가자!(위험한 생각이었다. 위로 갈수록 할렘이 더욱 가까워져 온다) 위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작은 공원이 나타났다. 공원에 작은 성당인지 교회가 같이 있는 곳이었다. 거리의 눈은 다 녹아 질척거리는데 그 공원엔 금방 내린 듯한 뽀얀 눈이 가득했다. 20대의 나는 추운 것도 모른 채, 뉴욕에서 눈을 봤다는 것에 심취했었던 기억이 난다.
작은 공원을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봤다. 주말이라 그랬을까? 주위가 너무 조용했다. 분명 건물은 많은데 레스토랑이나 델리샵이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아까 기숙사 직원이 알려준 음식점이 있을 법한 곳으로 내려가 보았다. 그곳에서 나의 좋은 친구, 맥도널드를 발견했다(전 세계 어디를 가든 스타벅스나 맥도널드를 보면 안심이 된다. 어디에서든 익숙한 그것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맥도널드를 보자 마치 한국의 음식점처럼 느껴졌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파 커다랗고 먹음직해 보이는 신메뉴를 주문했다. 지금도 그때도 평소 때는 식욕이 충만하다가 혼자 먹을 때면 식욕이 저하되는 것이 정말 이상하다. 그 버거의 절반도 먹지 못하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다.
기숙사에 돌아와서 우여곡절 끝에 인터넷을 연결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wifi가 일반화된 시절이 아니었던가? 인터넷 연결이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네이트
온' 메신저에 접속해서 내가 잘 도착했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알렸다. 어찌어찌 연결된 인터넷으로 서핑을 조금 하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냈다. 미국에 도착했다는 설렘과 신남은 곧 적막과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미국에 도착한 첫날 기숙사에서의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다행히도 다음날 저녁 기숙사에 룸메이트가 들어왔다.
나중에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나는 미국에 살게 된다. 그것도 뉴욕 맨해튼 바로 옆의 지역에서 말이다. 그리고 정확히 그 기숙사 근처를 차를 타고 지나가게 되었다. 그때 그 옆에 위치했던 맥도널드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정말 신기했다. 그 맥도널드를 보고 그곳인지 알아차린 나도,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있던 그곳도 거짓말 같았다. 금세 추억에 잠겼다. 저절로 그때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몇 년 후 다시 이곳을 이렇게 지나가게 될지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인생은 참 재밌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