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Victoria, Canada
1-1. Victoria, Canada
종종 내가 살았던 그곳을 생각해본다. 캐나다의 BC주 주도인 빅토리아. 8월 1일. 나는 뉴욕을 떠나 그곳에 도착했다. 3주간의 영어 클래스를 듣고 9월 1일부터 시작하는 Tesol 클래스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 사이에는 나에게 열흘간의 방학이 주어졌다.
8월 1일, 나에게는 커다란 이민 백 1개와 작은 트렁크 2개가 들려있었다. 이민 백 1개와 트렁크 1개는 수화물로 보내고 제일 작은 캐리어 1개는 손수 들고 다녔다. 그 작은 캐리어에도 물건이 가득 들어있어 비행기 내부 수하물 칸에 올리는 것조차 무거워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미국 뉴욕에서 캐나다 밴쿠버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밴쿠버에서 빅토리아로 가는 작은 비행기를 한번 더 탔다. 작은 비행기에서 내리던 그 시간은 이미 해가 져서 세상이 깜깜해져 있었다. 내가 만약 캐나다에서 홈스테이로 시작하지 않고 혼자 이곳에 도착했더라면 어떻게 숙소를 찾아갔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후로는 나는 공항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차편을 필수로 예약해 놓고는 한다.
캐나다 빅토리아에서는 홈스테이를 하기로 결정했다. 공항에 도착한 첫날, 나를 데리러 온 홈스테이 주인은 나이 든 중국인 부부였다. 홈스테이가 처음이라 걱정되기도 했는데 또 외국에서 한 번쯤 홈스테이를 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그들은 세계 각국에서 오는 학생들의 홈스테이를 지속적으로 하는 분들이었다. 학생들이 고국에 돌아간 후에도 꾸준히 그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괜찮았던 분들이었던 것 같다.
홈스테이 아저씨는 직업은 요리사였다. 밤마다 정말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진수성찬의 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 본래 홈스테이를 하는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함인데 거의 그 돈이 식재료 값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매일 저녁 푸짐하게 차려주셨다. 한국을 떠난 지 몇 달째 매일 외식으로 식사를 해결하다가 누군가 직접 만들어주는 홈메이드 음식을 매일 먹으니 행복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평화롭고 안락했다.
실은 '캐나다 원어민'이 아닌 것에 대해 살짝 불평할 수도 있었는데, 이 집과 주인의 상태는 너무너무 훌륭한 것이었다. 실제로 나중에 학교에서 만난 언니의 홈스테이 집은 아주 열악한 곳이었다. 돈이 정말 필요해서 홈스테이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던 그 집은 작고 지저분했으며, 음식도 형편없을뿐더러 홈스테이 주인의 어린아이들과 함께 복닥복닥 정신없는 곳이었다. 물론 그것에 만족하는 학생들도 있었겠지만, 우리가 기대하고 원하던 현지인의 삶과는 조금 동떨어졌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내가 만난 첫 홈스테이 가족은 행운이었다.
캐나다의 홈스테이 집은 지금의 제주도 집보다도 3배는 크고 넓고 좋은 집이었다. 오래전에 캐나다로 이민 온 중국인 부부는 성실하게 돈을 모아 그 집을 마련했다고 했다. 나무로 지어진 멋들어진 집이었다. 지하 1층, 1층에 나와 다른 학생이 쓰는 방이 2개, 그리고 2층에 홈스테이 주인 방이 있었다. 매주 한 번씩 지하 1층에 있는 세탁기를 사용했고 건조기를 돌렸으며, 때론 거실에 앉아 담소를 나눌 때도 있었고 매일 밤마다 진수성찬이 차려진 부엌에 둘러앉아 저녁을 함께 먹었다.
그곳에는 이미 일본인 여자애가 홈스테이를 하고 있었다. Nayuri라는 이름을 가진 눈이 동그랗고 큰 예쁜 친구였다. 우리는 나이가 같았다. 밤마다 다음날 학교에 가져갈 샌드위치를 함께 만들었다. 종종 방과 후에 만나 버블티를 먹으러 가기도 했다. 아주 가끔 일본 여자아이와 한국 여자아이가 함께 갔던 차이나타운의 버블티 카페가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때로는 같이 근교로 놀러 가기도 했으며 각자 나라의 노래를 서로에게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리고 빅토리아 시내의 아시아 마켓에서 팔던 혹은 우리가 가져간 각자의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을 때도 있었다. 이곳은 재밌게도 중국인 부부와 일본인, 한국인 학생이 함께 사는 완전체 아시아 홈스테이 하우스였다.
그 친구와는 캐나다에 돌아온 후에 일본에 가서 만나기도 하고 몇 년을 연락하고 지냈었는데, 요즘은 잠시 연락이 끊겼다. 빅토리아에는 한국인 친구보다 일본인들이 더 많았다. 그곳이 그들에게 단기 어학연수로 인기 있는 지역이었던지 어학 클래스에는 일본인 아이들이 80% 나머지 한국인 그리고 다른 외국에서 온 친구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캐나다의 빅토리아는 아주 아기자기하고 예쁜 도시였다.
그곳에서 혼자 쓰는 방은 아주 안락하고 깔끔했다. 처음 자던 그날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푹신했던 퀸 사이즈 침대와 부드러웠던 침구 그리고 혼자 쓰는 적당한 사이즈의 원목 책상에 바닥은 밝은 색 카펫으로 깔려 있었다. 뉴욕에서 홀로 고생하다 와서 그런지 그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이 정도 홈스테이라니! 정말 감사할 일이었다. 첫날부터 나는 아침까지 푹 자고 일어났다. 일주일 동안 수업이 없어서, 푹 자고 일어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창문으로 보이는 초록색 잎들을 보면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도착한 다음날, 동네 산책을 나섰다. 그때만 해도 구글 맵은커녕 이제 막 아이폰이 나온 시점이라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며 걸어 다니는 것은 꿈도 못 꿀 때였다(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절이다). 홈스테이 아줌마가 여기서 조금만 걸으면 쇼핑몰이 나올 거라고 그랬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걸었다. 그런데 내가 그 산속을 걷다가 무얼 만났는지 알까?!! 무려 '사슴'을 만났다. 노루였던가, 고라니였던 가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뿔이 엄청나게 큰, 그것은 사슴이 확실했다. 처음 사슴을 보고 너무 놀라서 자리에 얼어붙었다. 사슴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 반대편으로 가서 아무렇지 않게 앞을 보고 걸어갔다. 아마 그날 산속에서 '곰'을 만났더라면 난 이 자리에 없었겠지. 그래도 그때는 젊었던지, 지금이라면 사슴을 보고 뒷걸음쳐서 집으로 되돌아갔을 텐데 나는 그 사슴을 지나쳐 계속 걸었다. 20분 정도를 걸어서 쇼핑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 내가 살았던 그 집은 지금의 제주 집보다 더 깊은 산속에 위치하고 있었다. 꽤나 오래전 일이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곳의 위치를 기억해 낼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가진 여러 이메일을 찾고 또 찾으면 그곳의 주소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만약 주소를 못 찾는다면 나중에 다시 찾아가 보고 싶어도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캐나다 홈스테이 집은 도심과 한참 떨어져 있어서 도심으로 학교를 가려면 버스를 타고 나가야 했다. 버스 타임 테이블이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춰서 나가면 버스가 도착했다. 그러나 그 시간을 놓치면 버스 시간 간격이 커서 학교에 늦을 수밖에 없었던 같다. 내 기억으로 40분 정도를 버스를 타고 가면 도심에 도착할 수 있었다(대체 얼마나 멀리에 살았던걸까...)
버스를 타고 학교 가던 길이 딱 한 구간 생각난다.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후에 지나가는 넓은 정원이 있던 곳 앞에 버스가 섰는데 그곳에 한국 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참 신기했다. 그때만 해도 내게 캐나다의 빅토리아는 마치 오지와도 같은 느낌이라, 여기에도 한국인이 살고 한국교회가 있구나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은 얼마 가지 못했다. 한 달이 조금 더 흐른 시점에 중국인 부부는 홈스테이를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고 했다. 이유는 홈스테이 아줌마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는 갑자기 홈스테이를 새로 알아봐야 하는 것에 화가 나서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는데, 지금 되돌아보니 홈스테이 아줌마의 나이가 많았고 그렇게 건강해 보이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리고 개인 샵까지 운영하고 계셔서 매일 시내로 출퇴근하셨다. 거기에 홈스테이 학생들까지 받고 그들의 뒤치다꺼리까지 하고 있으니 힘드실만했다. x 금전적인 여유가 없던 부부도 아니었으니 홈스테이를 그만해도 아쉽지 않았으리라.
안락했던 집과 내 방,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새 친구, 홈스테이 부부까지. 그 모든 것에 대해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곧바로 다른 홈스테이를 알아봐야 했다.
이 글을 쓰며 캐나다, 빅토리아의 지도를 구글맵을 통해 한참 봤다. 이 먼 나라에서 그곳의 모습을 로드뷰로 보고 있자니 감격이다. 그때의 나는 그곳을 떠나오며 다시 내가 언제 그곳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세상이 이렇게나 많이 발전했고, 나는 여전히 젊고 언제고 마음먹으면 다시 그곳에 가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