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살아요

3. Victoria, Canada

by Blair

1-3. Victoria, Canada

나는 이제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 캐나다에 와서 홈스테이를 두 번이나 실패하고 나니 참으로 처량했다. 남들은 잘만 지낸다는 홈스테이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편지도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간다던데 나는 이렇게 끝날 줄이야. 그런데 홈스테이를 또 해야 할까? 어쩌면 다음 홈스테이도 또 금방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슬픔 예감이 들었다.



나와 같이 수업 듣는 학생들은 절반 넘게 홈스테이로 살고 있었다. 그 외의 학생들은 기숙사에 혹은 따로 집을 구해서 살기도 했다. 해외에 잠깐 있는 유학생들이 개인별로 집을 구해 사는 경우가 그 동네에서는 흔치 않았던 것 같다. 마침 나와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나보다 먼저 홈스테이에서 나와 기숙사로 들어갔다. 먼저 그곳을 들어갔던 언니는 내 고민을 듣고는 적극적으로 기숙사를 추천했다.



학교에 소속된 기숙사가 몇 개 정도 빅토리아 시내 근처에 분포하고 있었다. 보통 학교에서 걸어서 30~40분 정도, 버스로는 10~20분 내외로 걸리는 곳이었다. 일단 기숙사의 가까운 거리가 마음에 들었고, 홈스테이의 1/2도 안 되는 비용이라 가격도 조금 매력적이기는 했다. 적어도 몇 달 남지 않은 기간 동안 더 이상 홈스테이로부터 버림받을 일은 없었다. 대신 다른 사람과 방을 함께 써야 한다는 단점은 있었다.











캐나다에 와서 외국인들과 함께 살아볼 수 있다는, 홈스테이의 낭만을 꿈꿨지만 이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숙사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여러 개의 기숙사 중에 내가 들어가게 된 기숙사는 3층짜리 집이었다. 각 층에 방이 2~3개 정도 있었던 것 같고, 2층에는 넓은 공용 부엌이 있었다. 들어오고 나가는 학생들이 많아서 함께 사는 인원은 늘 달라졌다. 각각의 기숙사마다 같은 나라, 비슷한 나라의 학생들이 모여서 살았던 것 같다. 이전에 빅토리아가 일본 학생들도 많았다고 얘기했었는데 내가 살던 기숙사에는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났던 기억나는 일본인 친구는 두 명이다. 한 명은 학교에서 가장 유명할 정도로 시끄럽고 화려한 남자아이였고, 한 명은 기숙사에서 꽤 오래 살았던 단정한 일본 여자아이였다. 가끔 기숙사에 파티를 열곤 하면 화려한 남자아이를 따라 일본 아이들이 잔뜩 와서 놀다 갔고, 일본 여자아이는 타코야키 기계를 꺼내 타코야키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 여자아이는 그 남자아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조금 시끄럽기는 하지만 속내는 아주 착하고 의리 있는 남자애'라고 말해줬던 것 같다. 나와 그들은 수업 후 기숙사에서만 보는 친구들이라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함께 지내는 몇 개월 동안 정이 들어서 내가 가던 날, 여자아이는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직접 떴다는 스카프와 초록 잎이 그려진 원단이 매력적인 휴대용 티슈케이스, 그리고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신 고양이 인형 집게를 선물로 받았다. 그 선물은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다. 그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Victoria, Canada





홈스테이는 밥이 제공되었는데, 이곳에서는 내가 직접 만들어 먹었어야 했다. 지금은 못하는 요리가 없을 정도의 실력자(?)지만 그때만 해도 겨우 스무 살 남짓, 할 줄 아는 요리가 있을 리가 없다. 요리의 ㅇ도 몰랐을 때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뭘 먹고살았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참을 기억 해내 보려고 노력했는데, 그때 내 주식은 빵과 초콜릿이었다. 캐나다에 가면서부터 책상 서랍 한편에 초콜릿을 두고 먹기 시작했는데 초콜릿을 매일 엄청 먹어댔다. 당이 떨어지면 큰일 나는 사람처럼 부스럭부스럭 거리며 끊임없이 초콜릿을 먹어댔다. 지금은 초콜릿을 먹어도 어느 순간 그만 먹어야지 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초콜릿을 먹고 또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먹고 싶었다.



그 이후 빵과 초콜릿으로 5kg 정도가 쪘다. 빵은 자주 먹었다기보다 밤에 자기 전에 베이글을 메이플 시럽을 찍어 먹으며 TV를 볼 때가 있었는데, 그게 진짜 맛있었다. 생각해보니 초콜릿 쿠키도 많이 사다 먹었다. 이미 그전에 찐 5kg의 살과 캐나다에서 찐 5kg의 살이 합해져서 총 10kg 정도가 찐 것 같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기 직전, 밤마다 걷기 운동을 했다. 하지만 운동하고 돌아와서 빵 먹고 초콜릿 먹고 그렇게 하니 살이 빠질 리가 없었다. 그때 내 인생 가장 뚱뚱한 때였는데, 그 살을 빼느라 4년이 걸렸고, 그 시절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내가 엄청 뚱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








기숙사 생활을 할 때는 수업을 듣고 매주 발표에, 실습기간도 있어서 사실 정신이 없었다. 어차피 자격증을 따러 간 곳이라 그렇게 한가롭게 놀 생각은 없었다. 정해진 기간에 내가 원하는 자격증을 따서 한국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서 기숙사 생활은 딱히 불편할 것도 편할 것도 없이 흘러갔다.



그런데 그 기숙사 생활에서도 안 좋은 추억이 하나 있다. 기숙사에 들어오게 가장 큰 계기가 그 당시 가장 친했던 M 언니 때문이었다. 같은 방을 썼어도, 같은 수업을 들어도 우리 사이는 여전히 좋았다. 그런데 기숙사에서 가장 큰 방이었기 때문에 그 방에는 우리 말고 다른 언니 H도 함께 살았다. 이후 내가 다른 언니 H와도 친해지게 되며 그리고 어떠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일에 의하여 우리 둘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결국 M 언니는 기숙사에서 혼자 쓰는 방으로 나가게 되었고 그리고 졸업 직후 인사도 없이 한국으로 떠나버렸다. 아주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언니가 생각난다. 그때 만나던 그 오빠랑은 결혼했을까? 언니는 지금 어디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을까? 잊을만할 때쯤 아주 가끔 생각이 난다. 우리에게 그 일이 있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껏 친한 언니, 동생으로 지내고 있었을까? 지금 기억해봐도 나보다 세 살 많았던 그 언니는 마음도 넓고, 나에게 항상 잘 대해줬으며 고마운 사람이었다.








캐나다의 마지막 기억이 이렇다. 홈스테이 2번 실패에, 가장 친했던 언니와도 사이가 틀어지며 사실 나에게는 캐나다를 기억하는 것은 불편하게 돼버렸다. 그래서 내가 살았던 다른 곳과는 다르게 '그냥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기억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을 했는데... 해외생활에서 가장 먼저 이야기를 쓰게 될 곳이 이곳이 될 줄은 몰랐다.



이 글을 쓰다가 캐나다에서 만났던 일본 친구가 생각나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 친구들과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얼굴을 볼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고, 아이도 낳고, 코로나까지 터지니 얼굴 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10년도 전의 일을 다 기억해내고 싶었다. 더 잊히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아쉽게도, 아니 너무 당연하게도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어제의 일처럼 다 기억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이렇게 기억은 사라지고 왜곡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세월의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 것이 아쉬울 때도 있다. 이제는 괜찮다. 내가 경험한 모든 일은 오늘을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에겐 새로운 용기가 샘솟기 때문이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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