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사해?

2. Victoria, Canada

by Blair

1-2. Victoria, Canada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새로운 홈스테이를 찾는 것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았다. 홈스테이는 이제 학교 오피스에서 다시 새롭게 정해줄 것이다. 다만 내가 어디로 가게 될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다양한 홈스테이 중에 랜덤으로 한 곳이 결정되는 것이라 불안하기도 했다. 두 번째 홈스테이에서 오랫동안 잘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때 친하게 지내던 Naho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곧 캐나다를 떠나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자기가 살고 있는 홈스테이 집이 깨끗하고 괜찮으니, 거기로 옮기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래? 집이나 한번 구경 가볼까?"



친구를 따라 새로운 홈스테이 집에 갔다. 바닷가 근처의 집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도심과는 꽤 거리가 있었다.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집이 나타났다. 흰색의 아담한 이층 집이었다. 이번 홈스테이에는 나이 많은 아줌마가 주인이었다. 결혼을 했던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는데 그 당시에는 싱글이었다. 아줌마는 고가구를 사고파는 셀러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집과 방에 있는 가구들이 정말 예뻤다. 내 방이 될 공간으로 들어섰다. 그곳에 짙은 브라운 침대와 화장대 겸 책상, 클로젯 그리고 랄프로렌 블루 침구가 있었다. 너무도 깔끔하고 우아했던 그 방이 여전히 선명하게 생각이 난다. 나중에 내 집을 갖게 되면 꼭 이렇게 꾸며야지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꽤 마음에 드는 홈스테이 하우스였다. 특히 방이 너무도 예뻐서 홈스테이를 바꾸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내가 살았던 두 번째 집과 닮았다.





그곳에 살던 일본 친구가 떠나자마자 내가 대신 들어갔다. 그곳엔 이미 한국 여자애가 살고 있었다. 한국인 여자애는 같이 살던 애가 떠난다고 해서 아쉬웠는데 언니가 들어와서 너무 좋다고 했다. 그녀는 나보다 2~3살 정도 어렸고 아주아주 커다란 눈이 인상적이었다. 언제나 언니, 언니 하면서 따르는 붙임성 있는 아이였다. 성격이 얼마나 좋았는지 그 아이를 보며 내 성격은 내성적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하교 후 매일 집에 돌아와서 하는 일은 남자 친구랑 전화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방이 바로 붙어있어서 자주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국제 전화를 매일, 이렇게 길게 통화하지?' 궁금했다. 그때만 해도 10$, 20$하는 국제전화카드를 사서 쓰거나, 때론 인터넷에 이어폰을 끼고 음성채팅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인터넷 전화기가 있었다.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를 가진 그 전화기는 한국으로 국내통화료 혹은 무료로 전화할 수 있었다. 다음에 외국에서 살게 되면 꼭 그 전화기를 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몇 년 후 나는 미국에 갈 때 개통해서 가지고 갔었다. 곧 소용없게 되었지만...



내가 두 번째 집에 들어가던 날, 대만 남자아이도 함께 홈스테이를 시작했다. 그는 지하 1층에 있는 룸과 화장실을 혼자 사용했다(아마도 게스트룸이었던 듯). 그는 '꽃보다 남자'에 나오는 '구준표'를 닮았었다. 훈훈한 외모에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들리는 소문에는 대만에서 엄청 부자라는 소리가 있었다. 잘생긴 데다 부자라니! 누구라도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부산에서 온 어떤 여자애를 좋아해서 쫓아다닌다는 소문이 학교 안에 파다했다. 실제로 그녀의 이야기를 나눌 때면 눈이 반짝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이곳이 캐나다, 빅토리아에서의 마지막 집이 될 줄 알았다. 예쁜 집, 성격 좋은 홈스테이 친구들,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듯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음식이 너무 형편없었다. 어쩌면 이것은 상대적일지도 모른다. 이전에 살던 홈스테이 아저씨가 요리사여서 그동안 너무 잘 먹고 지냈던 것 같다. 그런데 두 번째 홈스테이 아줌마의 요리는 정말 형편이 없었다. 그래도 노력하셨던 것 같다. 가끔 요리 책자를 아주 오랫동안 보시며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주셨다. 한 가지 기억나는 요리가 있다. 저녁으로 소고기와 야채를 오랫동안 끓여서 주셨다. 먹는 내내 이게 무슨 맛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것이 캐네디언 음식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퍼'라고 부르는 저녁 식사마다 내가 무슨 요리를 먹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여자아이인 나에게도 턱없이 음식 양이 부족했다. 거기에 매일 저녁마다 만들어서, 점심마다 학교에서 먹는 샌드위치도 지겨워져 갔다. 이것은 나에게만 생긴 문제가 아니었다. 나머지 두 친구들도 외식을 하고 오는 날이 잦아졌다.



어느 날 홈스테이 식구들은 모여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후 담합해서 아줌마에게 음식 맛이 입에 맞지 않고, 양도 너무 부족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차마 맛이 없어서 못 먹겠다는 얘기는 하지 못했다. 그 결과 다 같이 마트에 가서 원하는 음식(인스턴트)을 골라보기도 하고, 점심을 샌드위치 대신 간단한 도시락을 싸가기도 하면서 우리가 닥친 상황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아줌마는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똥 손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저녁마다 요리하는 것조차 벅찰 수도 있었겠다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요리를 잘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 후로 이런저런 일들이 조금씩 벌어졌던 것 같다. 그러다 홈스테이 아줌마의 사업에 문제가 생겼다. 그것을 계기로 집을 팔아야 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홈스테이 아줌마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머리를 기대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결국 우리 셋은 그 홈스테이를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만 친구는 친구와 함께 살기로 했고, 한국인 동생은 다른 홈스테이로 들어간다고 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새로운 홈스테이를 가야 할까? 아니면...? 그때 한참 테솔 클래스가 진행 중이었다. 캐나다에 온 목적은 테솔자격증인데, 자꾸만 사는 집에 문제가 생기니 마음이 심란했다. 벌써 때는 가을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두 번이나 홈스테이가 실패하고 나자 이제 나는 어디서 살아야 할까 한참을 생각했다.








두 번째 집의 추억은 이러하다. 아담한 하얀 이층 집, 짙은 브라운과 블루로 단정하게 꾸며진 나만의 방. 외국에 살고 있다는 기분이 물씬 드는 그런 곳이었다. 집안의 가구들도 엔틱하고 예뻤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 열심히 걷고 걸으면 바다가 나왔다. 때론 친구와 바닷가에서 만났다. 해가 질 무렵까지 바다에 앉아있다 보면 노을이 참 아름다웠다. 우리는 그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이제는 그곳을 떠올려도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던 20대의 내가 생각난다.




그리고 나는 세 번째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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