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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ul 05. 2022

프로 혼밥러

'엄마, 나는 이제 혼자 밥 먹는 게 제일 좋아' 오랫만에 제주에 온 엄마랑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말이 나왔다. 내가 커피를 혼자 마시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되었는데... 언제부터 밥을 혼자 먹게 된 걸까?



예전의 나는 절대 혼자 밥을 먹지 못했다. 왠지 너무 민망하고 부끄럽고 뭔가 혼자 먹으면 친구도 하나 없는 것 같고, 밥 먹는 내내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일 것 같아서 절대 못 먹을 것만 같았다. 그때도 밥을 혼자도 잘 먹는다는 언니들을 있었는데 내 눈에는 그게 그저 신기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맛있는 음식을 주문해서 혼자 먹는 일이 너무 당연해졌다. 그리고 이것이 지속되다 보니 되려 혼밥이 더 즐겁고 행복해졌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해서 느긋하 음미하며 먹는 일, 그것은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그 시작은 샤브샤브였다. 그때의 나는 샤브샤브에 빠져있었다. 누군가는 물에 빠진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나는 고기가 물에 빠지든, 굽든 사족을 못쓰고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샤브샤브에는 고기보다 거기에 함께 듬뿍 나오는 여러 가지 다양한 야채들더 마음에 든다. 다양한 야채, 버섯, 만두, 어묵 등을 넣고 끓이다가 하나씩 건져 소스를 찍어먹는 그것이 나의 행복이었다. 하나하나 건져 먹을 때마다 정말 맛있어서 웃음짓던 내가 생각난다. 고기 야채를 다 건져먹고 거기에 국수를 끓여먹고 죽까지 추가해서 먹으면 종일 배가 든든했다.


어떻게 혼밥을 샤브샤브로 시작하게 되었나. 재밌게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샤브샤브 가게는 다 같이 먹는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 팟이 있는 1인 샤브샤브였다. 그런데도 처음엔 사람들과 같이 갔다. 처음에는 남편과 같이 갔고 그다음은 친구, 그리고 동생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었다. 그런데 한번 데리고 간 사람들을 또 같은 곳에 가서 먹자고 할 수가 없었다. 친구가 그렇게 많아서 매번 같이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나의 절친인 남편은 아무리 맛있어도 똑같은 음식을 계속 먹는 것을 꽤나 싫어해서 자연스럽게 나는 홀로 샤브샤브를 먹게 되었다.



나는 기회가 되면 혼자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다. 여름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 내가 주식처럼 먹은 것은 샤브샤브였다. 먹어도 먹어도 절대 질리지가 않아서 약속이 있을 때는 주 2회를 먹은 적도 있었다. 한달 내내 먹은 적도 있다. 샤브샤브언제 먹어도 맛있었고 그로 인해 혼밥의 참 행복을 알았다. 그런데 얼마전 서울을 떠나게 되었고 샤브샤브와는 조금 멀어졌다. 그렇다고 혼밥이 끝난 것은 아니다.





샤브샤브는 나의 최애음식







지금은 제주에 산다. 제주는 왜 김밥이 유명한 걸까? 익히 널리 알려진 오는정김밥 , 다정이네 김밥 등등... 그런데 서귀포에 위치하고 있어서 거의 가지도 못하는데다 가끔 서귀포에 가더라도 오랜만에 가니 김밥만 먹고 올 수는 없으니 거의 먹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걱정 없는 게 제주시에는 내가 좋아하는 김밥집이 있다. 이곳도 꽤 유명해서 줄을 서서 먹는 맛집이다. 원래 음식을 그렇게 기다렸다 먹자 주의는 아닌데 여긴 그렇다고 못 기다릴 정도는 아니다. 적당한 기다림 끝에 먹는 김밥은 정말 맛있다.




참치김밥을 좋아해요





그러나 여기도 손님이 정말 많아서 혼자 먹을 때 빨리 먹고 비켜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그리고 2인석에 앉아서 먹는데 2인석도 1개밖에 없어서, 그동안은 4인석에 앉아 먹어본 적이 없어서(주지도 않을 좌석) 그곳에 앉게 될까봐 걱정이긴 하다.



혼밥으로 김밥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간단하지만 든든하게 먹기 좋은 것이 이만한 게 없다. 김, 밥, 당근, 참치, 맛살, 계란 등등 갖가지가 들어간 것을 먹다 보면 배가 엄청나게 불러온다. 산해진미를 먹은 것보다 더 맛있고 건강하다. 이 세상엔 김밥만큼 완벽한 식사는 없다.



 오늘도 최고의 한 끼였다.








기분이 좋지 않던 어느 주말. 원래대로라면 아이와 남편과 함께 집에 있어야 하는데 혼자 나와버렸다. 나가서 걷다가 커피라도 마시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싶어서 차를 끌고 나다. 일단 가장 가까운 바다로 가자. 이호테우 해변에 차를 세웠다. 하필 주말인 데다 오후가 되며 선선해지니 사람들이 해변가에 가득했다. 해변가는 물론 그 주변까지 놀러 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바를 보며 걸었다. 역시 기분이 좋아지는 방법에는 걷기가 최고다. 마음에 있는 근심을 훌훌 털어버리며 걷기에 집중했다. 한참을 걷다가 돌아왔다. 곧 배가 출출해졌다. 뭘 먹을까 잠시 고민했다. 시원한 물회가 먹고 싶어졌다. 그러면 속까지 시원해질 것만 같았다.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아무래도 지난번에 먹어본 그 해녀의 집이 좋을 것 같았다. 그대로 달려가서 주차를 하고 대기표를 받았다.






물회도 맛있고 전복죽도 맛있는 해녀의 집 

 




물회로 혼밥을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시원하고 매콤한 국물에 쫀득하다 못해 단단해진 전복을 열심히 씹어먹고 나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주로 혼밥을 할때는 식당의 티비를 보며 밥을 먹는데, 오늘따라 나는 맨 뒤에 앉고 티비는 맨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꾸 맞은편의 손님들과 눈이 마주쳐서 조금 불편하긴 했다. 어쩌나 티비가 앞에 있는걸...  몇 번을 눈이 마주쳤지만 나중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물회도 밥도 반찬도 깨끗이 싹싹 야무지게 먹고 나왔다. 이제는 그런 불편함이나 민망함보다 고픈 나의 배가 든든해지는 것이 먼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 지난번 왔을 때 전복죽도 너무 맛있었던 터라, 누구와 함께 오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긴 했다. 아주 조금...








이제 나는 혼밥이 좋다. 내가 먹고 싶은 메뉴 골라서 선택할 수 있고, 질리도록 먹고 싶은 것 계속 먹어도 누구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특히 혼밥은,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해서 혼자 오롯이 음미하며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결국 혼밥 하는 음식을 잘 살펴보니 내가 평소에 먹고 싶어 하던 것 위주다. 그리고 워낙 먹는 범위가 정해진 것에서 변하지 않다 보니 '먹었던 그, 잘 아는 맛'을 주야장천 열심히 먹다 보니 그것 위주로 혼밥이 돼버린 것 같기도 하다.



나만을 위한 밥. 나는 그것을 혼밥이라 부르고 싶다.

앞으로도 혼밥 하며 잘 지내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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