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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an 26. 2023

더 이상 특별한 날이 아닐지라도

길고 긴 명절 연휴였다. 연휴 동안 특별한 계획은 없었지만 제주에 눈이 계속 온 덕분에 집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명절 연휴 기간엔 눈이 와도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되니까 괜찮았다. 그런데 문제는 연휴가 끝나는 날에 눈이 가장 많이 와버려서 연휴가 끝난 다음날에도 밖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무려 5일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 게 여기에 한 가지 간과하면 안 될 문제가 있었다. 그 연휴가 끝나는 날이 내 생일이라는 사실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30n의 생일을 보냈다. 지금 10살 꼬꼬마도 아닌 주제에 매년 생일을 기다리며 1년을 기다리는 내가 생일날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끝까지 눈이 오다니! 조금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날씨는 내 생일이라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게 왜 문제냐고? 지난 삼십여 년간 생일은 무조건 특별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래서 생일 며칠 전부터 생일선물로 뭘 살까 고민하고 무엇을 하면 재밌을까 하고 계획을 세웠다. 보통 10~20대에 하고 있을 법한 행동을 여태껏 하고 있었다. 반면 남편은 매 생일을 시큰둥하게 지나다. 그는 생일이 다가오면 되려 기분이 착잡해진다는데 나는 그 반대로 여전히 기분 좋고 신나 있었다.



그래서 매년 생일, 그날을 위해 무엇을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다. 코로나 이전엔 꼬박꼬박 해외여행을 가기도 했고, 그것이 아니라면 값비싼 셀프 선물을 사기도 하고, 멋진 레스토랑에도 가고, 호텔에서 티타임이라도 하고, 이런저런 특별한 날을 만드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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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해 생일은 조금 달랐다. 일단 눈이 와서 집 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 물론 늦은 오후가 되며 눈이 녹긴 녹아 밖으로 나가서 식사를 할 수도 있었는데 왠지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또한 눈이 많이 와 제주 비행기 결항으로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못한 남편이 으니 당연히 누가 준비해 주는 미역국도 생일 케이크도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서 냉동실에서 있던 미역국과 케이크를 아이와 나눠먹었다(되려 냉동실에 얼려둔 미역국도, 해동시켜 먹는 케이크가 보관되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올해 생일 덕분에 조금 깨닫게 된 것 같다. 생일을 그렇게 특별하게 보내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다는 사실을... 그 말인즉슨 생일이라고 꼭 값비싼 선물을 받고, 좋은 호텔에 간다던지,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한다던지 하는 것들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었다는 의미이다.



생각보다 올해 생일은 꽤 괜찮았다. 지난 생일날들과는 극단적으로 다른 날이 이었지만, 처음으로 '기대'를 내려놓고 평상시와 다름없는 생일을 보내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생일이라고 꼭 커다랗고 맛있는 케이크를 먹지 않아도, 손수 끓인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 집엔 일 년 내내 생일을 기다리는 아이가 있으니 앞으로는 나까지 그렇게 호들갑 떨며 생일을 챙기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써준 생일카드









이번 생일을 보내며 특별한 날을 보통의 날로 치부하며 지나가는 것은 괜찮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생일을 기점으로 점점 이렇게 즐거운 날이, 흥미로운 일이, 특별한 날이 사라지게 될 것 같아 조금 울적한 마음은 들었다. 일 년에 겨우 며칠 되지 않는 스페셜한 날들, 예를 들면 밸런타인, 생일, 크리스마스 등의 그런 여러 가지 이벤트 날에 조금씩 시큰둥해지는 것을 생각하니 조금 씁쓸해져 왔다.



내 주위의 어른들은 가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게 맛있어?" "그게 재밌어?" "생일이라고 뭐 별거 있나" 하고 말이다. 그런 말을 듣다 보면 어른들의 세상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어른이 되 많은 일들에 부딪히고 다양한 일들이 겪어가는 동안 세상에 무심해 것이 느껴졌다.



오래전부터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그래서 더 생일에 집착하고, 그런 날들에 뭘 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설레는 마음으로 현재를 즐기고 싶었으니까. 역시 나는 마케팅의 술수에 당한 걸까? 그래도 괜찮다. 아직 조금이라도 젊을 때 뭐든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결국 지금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모든 것은 귀찮아질 테고, 그러면 지금보다 재밌을 수도 없을 테니까.



벌써 생일이 평범해진다면 다른 날들도 그렇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물론 생일 그 하루는 특별하게 보내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이런저런 날을 기다리며 두근거리는 마음 정도는 가지고 살고 싶다. 어른이라도 이 정도는 분명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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