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고향

2. Cebu , Philippines

by Blair

3-1 Cebu, Philippines

세부에서 만난 그들은 나의 스무 살, 그때의 해맑고 순수했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여전히도 그러하다. 시간은 흘러 흘러 스무 살 언저리였던 우리들은 이제 나이가 들었다. 그때 만났던 인연들과는 거의 연락이 끊어지고 두 명의 언니만이 지금까지 연락을 이어간다. 그중에 한 언니와는 십여 년 만에 바로 옆 아파트에 살게 되어 매주 얼굴을 보던 때도 있었다. 지금의 우리는 만나도 더 이상 그때를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나이가 들어버렸지만 우리가 만날 때 만큼은 그때 그 모습, 마음 그대로 인 것만 같다.



여전히 그때가 그립다. 겁이라고는 하나 없이 깊은 바다에서 호핑을 하고, 때론 지프니를 타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밤이면 우르르 몰려가 어딘가에서 놀고 있던 우리가 그립다. 해가 질 무렵 걸어 다녔던 거리가 간간이 떠오르고 그 거리를 걷다 보면 노점에서 나오던 매캐한 연기가 생각나기도 한다.










세부, 그곳에 간 이유는 기본적으로 어학연수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갔다가 영어 기본기를 어느 정도 익힌 후 호주로 연계해서 가는 것이 순서처럼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왔었다. 그러나 나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겨우 두 달 동안 그곳에 있던 것이 전부였다.



매일 수업은 3타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매일 오전은 1:1 수업, 그 후 1:4 수업 그리고 점심시간 후 1:8 수업으로 이루어졌다. 중간에 한 시간 정도의 쉬는 시간이 있었다. 1:1 수업시간에는 그곳에서 제일 잘생기고 귀엽다는 티쳐의 수업을 들었었다. 내가 정할 수 있던 티쳐는 아니고 무작위로 정해진 것이었는데 운이 좋았나? 아무튼 학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던 그에게는 이미 한국인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버린 그의 여자 친구와 종종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1:1 수업은 그래머 시간이었는데 우린 수업보다도 잡담을 많이 나누었다. 분명 수업을 듣는 중이었는데 정신 차리고 나면 잡담 중이었던 때가 많았다. 그때의 나의 영어실력은 아주 형편없을 때인데 어떻게 그런 많은 얘기를 나눴는지 모르겠다.



우린 가끔 수업을 빼먹고 몰래 밖으로 나가서 아침을 먹곤 했다. 시간 내로 다녀와야 하니까 택시를 타고 나갔다. 택시를 타고 오전의 정신없는 세부 거리를 5분 정도를 가면 프렌치 레스토랑이 나왔다. 아침메뉴로 크로와상을 팔았다. 갓 구운 빵과 커피나 핫초코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바삭하게 구워져 나온 크로와상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침에 밥만 먹고살던 내게(굶는 적이 더 많았지만) 아침메뉴는 빵으로 가볍게 먹어야 한다는 첫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1:4 수업은 리딩 시간이고 1:8 수업은 스피킹 시간이었다. 1:4 수업의 선생님은 가장 성실하고 열정적이었다. 선생님 이름은 Iren이었는데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진다. 그때 선생님에겐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결혼을 할지 말지 고민 중이었던 것 같다. 나는 왜 맨날 이렇게 서로의 연애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재밌었는지 모르겠다. 암튼 1:1 수업보다는 조금 긴장을 하며 수업을 듣곤 했다.



크리스마스 때 Iren 선생님 집에서 파티를 초대해줘서 다녀왔다. 필리핀 현지인의 집은 처음이었다. 크리스마스 데코로 정성스럽게 꾸민 작은 마당의 집에 도착했다. 크리스마스 파티 초대라니 기대되고 설레던 순간이다. 크리스마스 디너의 하이라이트는 레촌이라는 새끼돼지통구이였다. 필리핀 전통음식이라고 하던데 고기를 먹은 기억은 나지 않고 바삭하게 구워진 돼지 껍질을 먹었던 것 같은데 정말 맛있었다. 학생들은 몇 명 초대되었고 우리말고도 다른 초대 손님이 꽤 있었다. 우린 모두 서서 그릇에 음식을 조금씩 담아 그것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돌아왔다.



막상 레촌의 사진을 찾아 함께 올리긴 했는데 자꾸 보면 볼수록 부담스럽다. 우리나라에서 가게 오픈식에 자주 보이는 돼지머리 느낌이랄까?




새끼 통돼지 구이 : 레촌





1:8 수업은 보통 8명이 꽉 채워지기보다 6명 정도가 들었는데, 고만고만한 영어실력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스피킹과 토론 수업이라니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도 잘 기억나지 않고 다만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던 친구들과 수업을 함께 들었던 기억이 난다. 후에 그 친구들과는 꽤 친해져서 주말마다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세부에 간 것은 겨울방학이었다. 그래서 연말을 그곳에서 보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이 되는 새해에는 필리핀 세부의 전 지역은 불꽃으로 불야성을 이뤘다. 우리나라처럼 한강에서 거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모두가 크고 작은 불꽃놀이를 하는 것 같다. 이는 세부뿐만 아니라 필리핀의 새해맞이 풍습으로, 12시부터 시작되는 불꽃놀이는 집안의 사악한 기운이나 불운 악령 따위가 떠나간다고 믿는다. 우린 불꽃놀이를 하기보다 보는 쪽을 선택했다. 어학원이 위치하던 호텔 옥상 위에 올라가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시내 전체가 불꽃놀이의 연기로 가득 차서, 그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조금 구경하다 호텔로 내려와 맥주를 마시는 것을 선택했지만 세부 시내 가득한 불꽃놀이는 꽤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어학원에서 10~15분 정도를 걸어가면 아얄라 몰이라는 큰 쇼핑센터가 나왔다. 우린 그곳을 참새 방앗간처럼 넘나들었다. 그곳에서 수영복을 사기도 하고 패스트푸드를 먹기도 하고, 나중에는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그 곳의 마트에서 말린 망고와 좋아하던 과자를 잔뜩 사서 왔다.



그곳에 졸리비(Jolibee)라는 필리핀 브랜드 패스트푸드 점이 있었는데, 주문하려다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그곳의 패스트푸드점에는 밥이 함께 팔았다. 뭔가 롯데리아 안에 밥이 팔면 이상할 것 같은데! 그것은 라이스버거가 아니라 그냥 밥이었다. 그때는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이가 생긴 지금은 패스트푸드 점에서 밥을 함께 팔면 좋겠다 싶어진다.










10여 년이 훌쩍 넘어서 코로나 직전 필리핀 세부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20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곳을 30대가 돼서 갔더니 꿈만 같았다. 그곳에서 핑크빛의 꿈만 꾸고 있을 20대의 나의 앳된 모습이 떠올라 눈가가 촉촉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찾았던 세부 쇼핑센터 아얄라 몰은 내 기억보다 작아져있었다. 사실 쇼핑몰의 내부가 거의 기억나지 않았는데 십여 년 전 그때 그 자리에 있던 게임센터 자리가 여전히 그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때 그 자리에 위치하며 내 기억에 존재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참고로 찾아보니 어학원이 위치했던 호텔도 그때 그 자리 그대로이다. 대신 그 어학원은 내가 떠난 직후에 위치를 옮기고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꽤 오랫동안 유지했던 것 같은데 코로나 때문이었을까?



20대 초반의 나는 혼자 세부의 곳곳을 훨훨 날아다녔지만 30대의 나는 아이와 함께였다. 그때의 나는 시간이 흘러 이곳에 아이와 함께 방문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십여 년 사이에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는데 그곳에서의 기억은 그대로였다. 곳곳에 남겨진 추억을 하나씩 주워 담아 왔다.








메인, 본문 사진 2 : freepik

본문 사진 1 : 네이버 이미지 검색 (레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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