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를 휴양지에서 한다고?

1. Cebu , Philippines

by Blair

3-1 Cebu, Philippines

중학생 때 친구들이 방학 동안 캐나다로 영어캠프를 떠났다. 나도 가고 싶었는데 그때 그곳을 방문하는 비용은 꽤 비쌌다. 몇 백의 돈을 내고 고작 며칠 정도 캐나다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지방에 살던 나는 mbc에서 기획한 그 광고를 보고 혹했다. 어느 날 가까운 친구들 몇 명이 그곳에 간다고 예약한 상태라는 것이다 정말 부러웠다. 나도 가고 싶었지만 겨우 며칠 가는 것에 그렇게 비싼 돈을 내고 갈 수 있을까? 보내주실까? 하는 마음이 들어 부모님께 가고 싶다 말도 꺼내보지도 않았다.



아직도 기억난다 며칠 동안, 하루에도 몇 번이고 가고 싶다 말해볼까 고민했지만 결국 말 꺼내길 그만두었다. 왜 그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비싼 비용 탓이었겠지. 그때의 몇백이라는 돈은 내가 절대 손에 쥘 수 없는, 그런 큰돈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용기 내어 가고 싶다 말했더라면 나는 그곳에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못한 내가 바보 같았지만 그때는 어렸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스무 살이 되었다. 대학을 입학해서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스무 살 그 당시만 해도 나에겐 해외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고작 고등학생 때 가족끼리 태국에 다녀와본 것이 다였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니 그때 못 가본 캐나다가 아니 외국이 너무 가고 싶었다. 어른이 되었다 생각하니 나니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보다 다른 나라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겨우 며칠 여행하는 것 말고 그곳에서 머무는 것이 하고 싶어졌다.



대학생이 되면 어학연수를 가는 것이 유행일 때였다(지금은 필수겠지?) 내가 학교를 다닐 때도 휴학을 하고 1년 정도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것은 거의 필수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다녔던 과 특성상, 어학연수는 전혀 필요 없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고 싶었다. 머리를 썼다. 이런저런 핑계를 생각해냈다. 처음이니까 부모님께 부담되지는 않으면서도 적당한 어학연수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결국 정하게 되었다. 휴양지의 호텔에서 먹고 자며 영어공부까지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필리핀' 마침 주위에서도 다녀왔던 사람이 있어서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단기 어학연수를 핑계로 필리핀 세부로 떠났다. 겨울방학이 되어서 떠났던 어학연수. 겨울 잠바 안에 반팔을 입고 겨울 부츠를 신고 도착한 그곳은 세부 막탄 공항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여름나라의 더운 공기가 확 느껴졌다. 언젠가까지만 해도 그때 맡았던 냄새가 기억났는데 해외여행을 2년, 3년 가까이 동안 가지 않았더니 이제 내가 해외여행을 다녔던 적이 있을까?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필리핀, 세부를 가며 처음으로 비행기를 혼자 탔다. 지금이야 비행기를 너무 많이 타서 지겨울 만큼(?)의 경지에 올랐지만 그때는 비행기도 몇 번 안 타본 시절이었다.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엄청 설레었다. 혼자 비행기를 타다니! 세부 막탄 공항에 도착하니 저녁이었다. 어학원에서 픽업을 왔는데 매니저와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나만 그 어학원에 가는 줄 알았는데 그날 같이 도착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나와 동갑인 남자들 4명과 나는 함께 차에 올라탔다. 그들은 친구들이라 이야기를 나누며 가고 있었고 나는 입을 다문채 어두워져 잘 보이지 않는 창밖을 응시했다. 우리는 일단 어학원이 위치한 호텔로 이동했다.




어학원은 세부 시내에 호텔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호텔에 있는 어학원이라니 신기하기도 했다. 밤이 늦은 터라 간단하게 설명을 들었다. 어학원에서 제공하는 호텔은 1인, 2인 그리고 3인실이 있었는데 나는 2인실로 예약을 했다. 나는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정해진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서니 Jessica라는 언니가 방을 쓰고 있었다. 눈이 엄청 크고, 몸이 가냘프지만 태닝 된 섹시한 몸을 가진 언니였다. 언니는 나보다 4살인가 6살이 많았다.



일단 방에 들어와서 언니와 인사를 나눈 후, 들고 온 겨울 잠바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내내 신고 있었던 겨울 부츠를 벗었다. 겨울인 한국에서 출발한 것이라 부츠를 신고 있었는데(멋 부렸군) 결국 그 부츠는 2개월 동안 한 번도 신지 못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꺼내 신었다.








필리핀, 세부 시티 전경




어학원이 호텔에 있다는 것은 꽤 편리한 일이었다. 여행 갔을 때 호텔에서 머물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방이 깨끗해져 있는 것처럼, 일주일 두어 번 하우스 키퍼가 왔다. 그들이 다녀가면 방이 깨끗해졌다. 이불 정리는 물론, 청소, 세탁까지 매번 호텔서비스를 받는 기분이었다. 최고급 호텔은 아니라 엄청난 수준의 퀄리티는 아니었지만 스무 살의 나에겐 최고급 서비스였다. 무엇보다 우리가 스스로 청소나 빨래를 하지 않아도 돼서 편리하고 좋았다.



내 방은 호텔의 맨 끝, 사이드에 있었는데 창이 엄청 넓고, 방도 넓었다. 두 의 책상이 각각 창문으로 붙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책상을 거의 사용한 기억이 없다. 어학연수이긴 했지만 수업만 충실히 듣고 그 외의 시간은 또 열심히 놀았다.



우리 방의 창문은 굉장히 크고 넓었다. 나중에 수업이 가끔 비는 시간이 있어서, 혹은 점심을 먹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낮잠을 잘 때가 있었는데, 저녁에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낮잠을 자고 나면 보였다. 넓고 커다란 창문으로는 파란 하늘이, 하얀 뭉게구름이 보였다. 그럴 때면 마치 내가 구름 속에서 자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종종 그 커다란 창문의 파란 하늘이, 그 아래 침대에 누워있는 스무 살의 내가 생각난다.



어학원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을 제공했다. 현지인 요리사로 구성된 주방이었지만 주 메뉴는 한식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아침도 먹을 수 있었고 점심도 저녁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가보면 음식은 마련되어 있었는데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나조차 아침에는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서 먹으러 가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다. 대신 점심시간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복잡했고, 자리에는 간신히 앉았고, 음식도 어찌어찌 먹었던 것 같다. 그래도 맛은 있었다. 그때도 음식에 불평이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맛의 차이는 느끼겠지만 그렇게 매일 차려주는 밥이라면 더 감사하며 먹을 것 같다.



저녁은 많이 나가서 사 먹곤 했다. 어학원 뒤편 조금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마당이 있는 바비큐 가게가 있었다. 그곳에 종종 가곤 했다. 다양한 고기를 구워 파는 곳이었는데, 소스에 깔라만시 즙을 짜서 포크밸리를 찍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었다. 그 깔라만시 즙을 산미구엘 맥주에 넣어 먹어도 참 맛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맥주도 많이 못 마시는 베이비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맥주도 고기도 끊임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그곳에서 파는 갈릭 라이스는 사랑이었다.



매번 밖에서 먹어도 별로 비싸지 않은 가격이었는데 대신 위생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배탈이 난 적은 한 번도 난적이 없으니 스무 살의 나의 위장은 튼튼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필리핀 세부에서 지냈던 2개월이라는 시간은 지금의 제주도 두 달 살기 뭐 이런 느낌이다. 고작 두 달 동안 다녀온 어학연수가 얼마나 쓸모 있었냐만은 그때의 그 작은 시작이 지금까지 영어의 끈을 놓지 않고 살게 만들어주긴 한 것 같다. 적어도 업으로 살기도 했으니, 그리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되었으니 말이다.



스무 살, 갓 대학에 들어간 첫겨울방학을 세부에서 지냈다. 그때의 나는 밝고 신나고 즐거웠다. 미래의 걱정 따윈 없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내면 됐었다. 그렇게 철없이 살아가던 20대의 시절이 있어서, 이렇게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많아서 참 다행이다 싶다.





나의 홀로서기는 필리핀, 세부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