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air Jan 30. 2023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

아이를 키우다 보면


오늘 제주에는 눈이 펑펑 내린다. 눈을 피하려고 가까운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았는데 창가 맞은편 건물로 아이들과 엄마들이 여럿 지나다니는 것이 보인다. 고개를 들어보니 나도 한번 다녀와본 적 있는 동네에 유명한 소아과가 그곳에 위치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가 내리는 눈에 맞지 않도록 품 안에 쏙 넣은 엄마부터, 아빠 몸에 얼굴을 파묻은 아이를 안고 무방비 상태로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아빠까지 끊임없이 아이들과 부모들이 오갔다. 이 날씨에도 소아과는 굉장히 분주할 것이다. 방금 전에는 소아과에서 진료를 마치고 내려온 아기가 손을 내밀어 눈을 만지려고 하고 있다. 엄마는 아마도 감기에 걸렸을법한 그 아이를 서둘러 힙시트에 올려 앉히고 약국으로 들어갔다.



우리도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자주 다닐 때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한 달에 한 번은 소아과를 다녔던 것 같다. 지금보다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소아과는 마치 매일 가는 어린이집처럼 일상일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이사를 다닐 때면 소아과를 먼저 알아보고 찾아보는 것이 중요한 일중에 하나였다. 제주에 와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주에서 유명하다는 소아과를 찾아 모두 다녀왔다. 한 곳은 예방접종을 하는데 기다리지 않아돼서 초반에 몇 번 다는데, 약이 굉장히 세서 가끔 급할 때만 가고 있고 한 곳은 왠지 주차가 불편해서 잘 안 가게 되었고, 한 곳은 그럭저럭 괜찮아서 계속 다니고 있다. 그리고 주말에만 가는 소아과는 또 따로 있다. 소아과를 여러 군데 다니다 보면 그중에 우리 아이와 가장 잘 맞는 소아과를 찾을 수 있다.



 

아무튼 소아과에 가는 것은 아이가 아프다는 일이니, 그곳에 가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리가 없다. 오늘 이렇게 눈이 펑펑 오는데 소아과에 오고 가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얼마 전 있었던 만약에 일어났더라면 끔찍할 뻔한 사건이 생각이 났다.




 






지난 금요일 비염으로부터 시작된 콧물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주말을 집에서 보내며 호전된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콧물, 가래가 가득다. 콧물이 저렇게 많이 나오는데 중이염은 오지 않았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하원 후 소아과에 들렀다.



제주에서 정착한 소아과는 늘 환자가 많다. 게다가 주차장도 협소해서 불편한데 근처의 소아과 중에 그나마 괜찮은 것 같아서 그곳을 다니고 있다. 오늘도 환자가 많았다. 기본 20~30분 대기니까 그러려니 다. 아이가 더 어릴 때 육지에서 다녔던 곳은 1시간이 기본이었어서 지금은 이것만이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늘은 환자가 유난히 많았던 것 같다. 내 앞에 10팀은 있었나 보다. 막상 진료 보러 들어가면 1분도 안 돼서 나오는 것 느낌인데... 기다리다 보면 훨씬 오랜 시간 잡아먹는 느낌이다. 오랜 시간 기다려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준비해 놓은 말을 속사포처럼 했다. 지난주 금요일보다 콧물이 더 끈적해졌다. 콧물이 뒤로 넘어가 가래가 많이 생긴다.  약을 먹고 변이 묽어졌으니 유산균 처방을 부탁드립니다. 중이염이 걱정되니 한번 자세히 봐주십시오 등등... 의 이런 아이 상태에 대한 정보들. 의사 선생님은 늘 바쁘시니까 할 말을 빠르게 해야 한다.



지난번 아이가 아팠을 때 선생님께서 중이염을 찾지 못해서 아이는 조금 고생했다. 이번엔 잘 봐주셔야 할 텐데 생각했다. 아이의 귀를 체크하려고 귀 속에 카메라를 넣었다. 아이 귀 속 사진을 찍는데 내 눈에 그동안 안 보던 귀 속에 하얀 것이 눈에 띄었다. 엄마는 언제나 궁금한 것이 많으니까 "선생님 이 부분이 뭔가요?" 하고 여쭤봤다. "뼈예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하시더니 잠시 후 아이 귀에 '종양'이 조금 의심되니 이비인후과에 가서 체크하라고 했다.




"네??????????? 갑자기 종양이요??"




선생님께서 언급하신 종양의 이름은 '진주종'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선생님은 진주종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단지 "경험이 부족해서 잘 모르겠으니 이비인후과에 가서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자세한 얘기도 해주지 않으신 체 이비인후과에 가보라니 당황할 수밖에...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가벼운 한마디는 엄마에게 청천 벼락같았다. 선생님도 잘 모르는 병명을 엄마에게 던져두고 알아서 확인해 보라니? 진료를 보고 나오자마자 손이 떨렸다. 그동안 건강하게 자라왔던 아이에게 '종양'이라니. 아니 중이염 걱정하다 무려 종양이라니!! 병실에서 나와 잠깐 검색을 해봤는데 '종양' '수술' '큰 병원' '잇몸진주종' '청력' 이러한 관련된 글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 소아과 건물의 2층에 이비인후과가 있다. 바로 뛰어내려 가 등록을 했는데 기본 40~1시간 걸리는 곳은 물론이고, 현재 코로나에 집중되어 있는 병원이라 다른 이비인후과를 찾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주시에서 제일 큰 이비인후과가 생각났다. 차라리 빨리 그곳으로 가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아과에서 나와 주차된 차로 걸어가는 시간, 그 잠깐 사이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세상이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이비인후과로 가는 내내 진주종에 대해 검색을 했다. 짧은 시간 다시 검색을 하며 또 심장이 떨렸다. 곧 이비인후과에 도착했고, 역시나 손님은 많았다. 예약하지 않은 나는 기본 3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미리 맘카페에서 검색을 해보고 제일 믿을 만한 원장님께 진료접수를 올렸다.



소아과에서 나와 이비인후과로 가서 기다리는 그 40분~50분 내내 나는 열심히 기도했다. 내가 뭘 잘못한지도 모른 채 주님께 조아렸다. 내가 다 잘못했으니 제발 아무 일도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했던 아주 작은 잘못까지도 다 기억해 내서 죽을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제발 이번 한 번만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제발 제발... 부모라면 내 심정을 알 것이다. 글로 표현되지 않는 그 간절한 순간을...




그 순간만큼은 그동안 걱정했던 아이의 크지 않았던 몸과 키가 그리고 태어나 여태 잘 먹지 않았던 모든 날들도, 숫자공부를 하며 수학머리가 없다며 걱정했던 순간도 놀랄 만큼 배부른 소리였다. 특히 내가 매일 밥 먹으라고 혼내던 모든 순간들이 증오스러웠다. 아이가 놀아달라고 할 때마다 귀찮아했던 순간들이 미안해졌다. 유치원에 가기 싫은 날도 꾸역꾸역 보낸 날들이 모두 후회되었다.




기다림을 끝내고 이비인후과 진료실로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아이의 귀는 정상이었다.










소아과 선생님은 아실까. 선생님이 말한 한마디가 이렇게 큰 영향을 줬다는 것.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그 부모는 지옥에 다녀온 것 아실까. 모르실까? 뭐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중이염을 못 찾았다는 것을 모르실 텐데... 그래도 다행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일어났더라면 아마 세상이 바뀌었겠지? 곧바로 서울의 대형병원을 다시 알아보고, 진료를 보고 수술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평생 아이의 청력을 걱정했겠지. 휴...




후에 다시는 그 소아과에 가지 않을 줄 알았다. 선생님 때문에 잠시 지옥을 다녀오긴 했지만 어쩌면 미리 발견해서 은인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또 괜찮아졌다. 한두 달이 지나 감기로 다시 소아과 진료 보러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은 다시 한번 그 종양에 대해 물어보셨다. 순간 선생님께 화낼뻔했다. 그러나 늘 친절했던 선생님이라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이전부터 결코 절대 생기지 않을 일에 대해 생각하고 걱정해 본 적이 있다. 저 종이에 눈이 찔렸더라면, 저길 걸어가다가 차에 치일뻔했더라면, 순간 발을 삐끗해서 저기서 넘어졌더라면... 절대, 아마 평생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를 생각해 보고는 미리 걱정하기도 했었다. 왜...?



언제나 우리 주위에 안전사고는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 몸에도 우리가 원치 않는 병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특히 미리 걱정을 예견해 본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하여 앞으로 더욱 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를 들면 덕을 쌓아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을 막고 싶다면 더욱 선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다.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을 유예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정직하게 살 것이다. 그리고 아직 우리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감사한지 가슴에 두고두고 기억하며 지내야겠다 생각을 한다.



더불어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세상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면 좋겠다.







메인 사진 : https://pin.it/4EVbk9a

본문 사진 : https://pin.it/yx1XPtP

매거진의 이전글 남은 것이 후회가 되지 않도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