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오면 꼭 생각나는 과일이 있다. 바로 '무화과'이다. 결혼하기 전 명절에는 친가 외가 할머니 댁을 오가며 보냈는데, 무화과는 추석에 외할머니 댁에 가면 먹을 수 있는 과일이었다. 분명 이맘때면 흔하게 보이는 과일이었겠지만 아가씨이던 시절에는 직접 마트나 시장으로 장을 보러 다니는 것도 아니었으니 당연히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추석에 외할머니 댁에 가면 늘 이모네가 사 오신 무화과가 있었다. 이모부의 고향은 전라남도 강진군이다. 추석 이전에 명절을 쇠러 갔다가 추석 당일이면 꼭 외할머니댁 그러니까 이모의 친정에 오셨는데, 그때 올라오던 길에 사 오시던 것이 바로 이 무화과이다. 이모부 덕분에 추석 때마다 먹을 수 있었다. 어릴 때는 무화과의 맛을 전혀 몰랐지만 점점 커가며, 나이가 들어 무화과의 맛을 알게 되어 가며, 정확히 무화과를 먹는 때를 인식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추석 즈음 먹는 과일'이라고 생각하며 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추석 때 무화과를 먹으면 과하게 익어서 싱싱함이 없다고나 할까? 아니면 추석에 가져오는 것이라 며칠 전에 딴 것을 사 왔을 테니 이미 보관된 날이 길어서 그랬던 걸까? 그래서 요즘은 추석이 되기 전에 미리 무화과를 먹자고 생각한다.
올해는 추석을 기다리며 일찍이 무화과를 사 먹었더니 역시 나 맞았다. 무화과가 적당히 익어있고 싱싱했다. 몇 개는 덜 익어서 조금 덜 달지라도 그 싱싱함이 달랐다. 무화과를 살짝 씻어서 양손으로 잡고 살살 반으로 쪼개어 한입씩 베어 먹으면 은은한 단맛이 느껴졌다. 아! 이 맛이야! 일 년을 기다려온 맛이다.
아이는 이번에 제대로 무화과라는 과일을 인식한 모양이다. 어느 날 하원을 한 아이가 유치원에서 무화과를 먹었다고 했다. '유치원에서 무화과를?' 알고 보니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정원에 무화과나무가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그곳에서 무화과를 따보고 그것으로 잼을 만들어 먹었다고 했다. 무화과 잼을 크래커 위에 발라먹었던 것이 정말 맛있었던 아이는 하원 후 계속 무화과 얘기만 했다. 처음 본 그 과일이, 직접 따 본 무화과가 참 인상적인 듯 보였다.
실제로 나도 무화과나무를 본 적이 없었다. 늘 스티로폼 상자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무화과를 먹어보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화과나무를 발견했다. 우리 제주 집 옆에는 집만 한 공터가 있는데 그곳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텃밭을 돌보는 부부는 아주 가끔 와서 그곳을 돌보곤 했다. 나는 원체 농사에 관심이 없어서 그곳에 무엇을 기르는지 살펴볼 생각도 안 했다. 그러던 지난날 태풍이 오기 전 부부가 와서 한참을 시끄럽게 밭일을 하고 돌아갔다. 이만큼 떠들썩해지자 그제야 대체 이 텃밭에서 무엇을 기르는 걸까 궁금해졌다. 텃밭과 바로 붙어있는 창고의 창문으로 가서 텃밭을 기웃기웃 거리며 살펴봤다. 깜짝 놀랐다.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초록색의 그것. 그것은 바로 아직 익지 않은 무화과의 열매였다.
1. 무화과
이렇게 가까이에서 무화과나무를 볼 줄이야. 초록색의 그 모양은 분명 무화과 열매였다. 과실나무를 키우고 있었으니 농장 주인들이 자주 오지 않았던 것이 당연했다. 나무에 열린 무화과의 생김새를 보아하니 아직 초록색이지만 얼추 판매하는 사이즈만큼 컸다. 곧 무화과가 보라색으로 익어가는 것을 보겠다 싶어졌다. 그런데 곧바로 제주에 태풍이 왔다. 그것들은 어떻게 됐으려나. 잘 수확했을까? 분명 태풍을 못 이기고 떨어진 것들도 있었을 테다. 안타깝다.
며칠 전 마트에 갔는데 무화과가 세일을 한다. 지금만 먹을 수 있는 과일인데, 세일까지 하다니 더 잘되었구나 싶어서 사 왔다. 어찌나 싱싱하던지 혼자 먹기가 아쉬웠다. 아이에게 무화과를 잘라서 스푼으로 떠줬는데 한입 먹어보더니 맛이 없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무화과가 맛있다고 했잖아?" "응 그런데 이건 맛이 없어" "그래 원래 뭐든 친구들이랑 같이 먹으면 맛있는 거야" 그래서 그 상자에 들은 무화과는 모두 내가 먹었다는 얘기. 아! 남편에게도 무화과를 가져다줬는데 무화과를 한 개 먹더니 역시 이것은 자기 취향이 아니라나 뭐라나.
이번에도 약간 덜 익은 무화과를 샀는데 하루 이틀 지나니 숙성되어 더 달달해졌다. 싱싱하고 달콤한 무화과를 혼자 다 먹으며 며칠을 행복했다.
2. 무화과의 계절
아이는 앞에서 무화과를 먹는 내게 자꾸 나에게 하얀 부분을 먹으라며 강조했다. "아니 너는 먹지도 않으면서, 대체 어디서 들었길래 꼭 부분만 먹어야 하는 거야?"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무화과는 농약을 치지 않고 재배하는 과일이라 껍질도 먹어도 된다고 한다. 오, 음식 쓰레기도 안 남고 참 좋네.
어떻게 보면 무화과는 복숭아나 포도처럼 달지는 않다. 그래서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잘 느껴보면 무화과에 사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단맛이 자꾸만 생각나서 이맘때가 되면 꼭 무화과를 생각난다.
무화과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디저트로 먹으면 더 맛있다. 어느 날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근처 카페에 들렀을 때 먹었던 무화과 케이크 맛은 너무도 훌륭해서 두고두고 생각났다. 딱 이때만 나오는 무화과 케이크라서 그런지 더 맛있었다. 이래서 '계절 한정' 메뉴에 약한가 보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무화과 케이크를 만나기가 어렵다. 내가 시기를 놓쳤거나 아니면 무화과 케이크를 만드는 곳보다 아닌 곳이 더 많아서 그렇겠지.
3. 무화과 케이크
케이크 말고도 빵에 무화과가 들어가면 맛있다. 평소에 견과류가 가득 들어간 호밀빵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안에 크랜베리, 무화과가 들어있을 때가 있다. 건강한 호밀빵에 하나둘씩 콕콕 박혀있는 달콤한 것들을 함께 먹을 때면 맛이 배가 되는데 무화과는 호밀빵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모른다.
또한 무화과로 오픈 샌드위치에 만들어 먹으면 마치 프랑스에서아침을 먹는 느낌이다. 무화과 자체도 훌륭한데 그 위에 살짝 꿀을 올리면 단맛이 올라가서 더 맛이 좋다. 무화과 오픈 샌드위치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식빵에 크림치즈나 브리치즈를 올리고 무화과를 잘라 올리고 그 위에 취향에 맞게 견과류나 꿀을 조금 올리면 되니 얼마나 쉬운지! 때론 샐러드 위에 올려먹어도 딱이다. 야채와 무화과를 함께 먹는 순간, 아! 가을이구나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4. 무화과 오픈 샌드위치
무화과의 계절이 벌써 저물어 간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무화과는 과하게 익어버린다. 올해도 무화과를 야무지게 많이 먹어 두었다. 이제 내년 가을에 만날 무화과를 기다려봐야겠다. 생각만 해도 참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