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해서 참을 수 없어! 포도

by Blair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하다. 벌써 여름이 끝났나? 일어나 창문을 여니 상쾌한 공기가 느껴진다.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보니 새벽 내내 비가 내렸는지 바닥이 촉촉하다.



요즘 포도를 즐겨먹고 있다. 마트에 갔더니 갖가지 포도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샤인 머스캣, 캠벨포도, 거봉 , 외국산 포도 등등... 한때 샤인 머스캣의 달콤함과 우아한 자태와 컬러 독특한 맛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적이 있다. 그해 여름부터 몇 년을 나는 샤인 머스캣을 사지 못해 안달이었다.


처음에 샤인 머스캣이 나왔을 때는 정말 비쌌다. 한송이에 2~3만 원이 기본이었다. 자주 사 먹을 수 없는 포도라서 애틋했고 더욱 먹고 싶었다. 조금 비싸지만 그럼 조금만 먹으면 되니까 그래서 샤인 머스캣을 보면 사 먹고, 보면 사 먹고 그랬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정도면 되었다 싶을 때가 찾아왔는데 그게 작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작년부터 샤인 머스캣의 가격이 적정 수준으로 내렸고 대신 맛이 그만큼 옅어졌다. 처음에 샤인 머스캣을 먹을 때 눈이 동그래졌던 맛이 절대 아니었다(물론 내가 먹었던 것이 그랬었을 수도).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샤인 머스캣을 좋아한다. 얼마 전 함께 마트에 간 날, 샤인 머스캣과 캠벨포도 중에 무엇을 먹을 거냐고 물으니 단연코 샤인 머스캣이다. 왜 보라색 포도는 싫어?라고 물어보니 보라색 포도는 알이 작고 씨가 너무 많이 들어있어서 게다가 껍질까지 뱉어내야 해서 싫다고 했다. 반면에 샤인 머스캣은 알도 크고 껍질도 먹을 수 있고 안에 씨도 없어서 먹기 편하다고 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긴 하다.



샤인 머스캣 가격 한송이에 9900원, 세일한 가격이기는 하나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할 가격이다. 이제야 비로소 평범해진 가격, 냉큼 사줬다.



집에 돌아와 샤인 머스캣을 깨끗하게 씻었다. 그리고 그릇에 담아 아이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나도 한 알 맛보았다. 아, 싱거워. 이번에도 실패다!









올해는 분명히 달랐다. 나는 이제 샤인 머스캣을 봐도 더 이상 그렇게 흥분되거나 기쁘지 않다. 특히 한 공간에 캠벨포도와 샤인 머스캣이 함께 있는데 먼저 캠벨포도로 눈길이 간다. 칠레에서 온 청포도도 맛있지만, 달달한 샤인 머스캣도 맛있지만 이제 다시 저 평범한 포도가 좋다. 잠시 화려한 자태와 인공적인 단맛에 이끌려 잠시 다른 포도로 눈길을 주었지만 어릴 때부터 맛보았던 캠벨포도가 역시 최고라는 느낌이다.



캠벨포도를 먹고 있으면 늘 그 생각이 난다. 미국에 있는 한국 마트에서 까만 포도가 가득 담긴 상자를 사서, 저녁을 먹고 밤마다 야식으로 먹던 때가 떠오른다. 미국에서도 여름, 늦여름이 되면 포도가 가득 담긴 상자가 팔곤 했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그 포도를 참 좋아하셨다. 그래서 마트에 포도가 팔기 시작하면 우리 집도 한 상자씩 사다주시고는 했다. 후에는 나도 발견하는 즉시 사다 드리기도 했으니 우리는 포도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저녁을 먹고 아랫집으로 마실을 가면 차와 포도를 내어주시곤 했다. 그 포도는 정말 달았다. 그 달달했던, 씨도 많은 포도가 얼마나 맛있던지... 그때부터 그 까만 포도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캠벨 포도를 먹을 때면 종종 아줌마 생각이 난다. 잘 지내시려나... 어느덧 미국에 못 가본 지도 거의 5년이 되었다. 세월이 이렇게 빠르게 흐른다. 어서 미국에 방문해 포도 한 상자를 들고 인사드리러 가고 싶다.







오늘도 포도 한 송이를 깨끗이 씻어서 그릇에 담아 자리에 앉는다. 작고 까만 알을 하나 따서 입안에 넣는다. 손가락으로 쥔 까만 알을 가볍게 눌러 초록색 알만 입안에 남긴다. 까만 껍질에 남은 즙도 쪼옥, 그리고 초록색 알에 들어있는 씨를 뱉어낸다. 아 달콤하다. 내가 좋아하는 포도의 달콤한 맛. 바로 이거다!



이 계절이 가면 까만 포도가 나오지 않으니 부지런히 먹어야겠다. 때마다 부지런히 먹어야 할 것이 어찌나 많은지 이래서 내가 살이 절로 오른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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