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에 서울에 다녀왔다. 제주로 이사한 지 거의 일 년 만의 방문하는 서울이었다. 그러니까 비행기도 일 년 만에 탄 것이다. 제주도에서 일 년 살기를 하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적어도 두세 달에 한 번은 서울에 다녀올지 알았는데 그럴 새가 없었다. 남편은 이런저런 일로 여러 번 다녀왔고, 지난여름 방학 아빠와 아이가 서울에 다녀오긴 했지만 나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왜 서울에 가지 않았냐고? 왜냐하면 나는 서울이 전혀 그립지 않았다. 그리고 겨우 일 년밖에 살지 못하는 제주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고, 정원 있는 주택살이는 처음인 데다가, 사계절의 제주는 놀기에도 바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 년살이 끝에 다시 서울로 갈 테니 당연히 별로 그립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설 명절에도 가지 않았다, 대신 양가 부모님들이 명절 전후로 들렀다 가셨기 때문에 더욱이 갈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일 년쯤 지나고 추석이 다가오자, 이번엔 서울에 한번 다녀와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제주생활을 연장하리라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간 것이 아닌가 싶다. 아마 일 년 살이가 이번에 끝이 났더라면 그때도 가지 않았을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일 년 만에 서울에 다녀오게 되었다.
서울에 가려고 비행기를 타러 공항 가는 일은 별로 신나지 않았다. 분명 서울에서 제주로 오는 비행기는 신났었는데! 반대가 되니 딱히 별 생각이 없었다. 되려 캐리어를 들고 아이와 공항에 가는 길은 번거롭기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그런 기분이 들었다. 특히 공항에 내리자마자 공항 옆 쇼핑몰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오랜만에 본 대형 쇼핑몰 때문에 더욱 기분이 신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웠다 쇼핑몰...)
특히 운전을 하지 않아도 공항에서 집 바로 앞까지 연결되는 편리한 교통은 최고였고, 집과 가까운 거리에 마트, 레스토랑, 백화점 등등.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가까이 밀집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던 어색함은 저리 가고 금세 서울은 익숙해졌다. 여전히 서울은 온갖 새로운 것들, 반짝이는 것들, 재밌는 것들로 가득했다.
물론 오랜만에 서울 맡은 서울 공기는 조금 매캐했다. 강남 한복판에서 맡은 공기라 그랬을까?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올 때는 몰랐는데, 도착지에 내려서 외부로 나가 맡은 공기는 답답했다. 어쩔 수 없이 매연냄새가 느껴졌다. 미묘하게 미세먼지도 있는 것 같았다. 남편에게 "제주도에 이 시간에 집 밖을 나가면 아주아주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데..."라고 말하며 제주도민 행세를 했다. 조금 웃겼다.
서울에서 지내는 며칠은 명절이라 가족들과 친척들을 만났다. 잠깐 친구도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밥을 먹을 때는 전복죽, 갈치, 흑돼지 이런 것 대신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내가 아는 서울'의 맛을 골라 식사를 했다. 새로 나온 쉑쉑 버거라던지, 리코타 샐러드라던지, 멕시칸 음식이라던지... 암튼 늘 먹던 것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먹으니 정말 행복했다. 제주도에도 맛있는 음식도 유명 레스토랑도 많긴 하지만 자주 먹곤 했던, 익숙했던 맛이 그리울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마침 서울에 갔을 때 포켓몬을 전시하고 있어서 아이와 다녀왔다. 아이는 거대한 피카추도 만나고 전시된 포켓몬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다양한 포켓몬 장난감들을 사서 돌아왔다. 아이도 오랜만에 서울에 와서 신이 나 보였다.
롯데타워 앞의 포켓몬 전시
오랜만에 보고 싶었던 친구도 잠시 만나고,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며칠간의 서울 여행은 꿈만 같았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제는 익숙한 제주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서울 사는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내냐고 오늘 자기들은 함께 피부과에 다녀왔다고 했다. 울쎄라, 써마지 등등 이름만 들어본 피부과 시술 얘기를 해주었다. '오! 나도 따라가고 싶다!'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역시 그곳은 재밌고 신나는 일이 가득하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피부과에 간지 참 오래되었다. 피부과는커녕 여기 와서 네일아트도, 미용실도, 에스테틱도 거의 가지 않고 있다. 여기서는 갈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제 발로 찾아갈 일이 없었다는 것이지 제주도에 그런 곳이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잠시 서울이 그리워졌다. 나도 그 속에 끼어 피부과도 다니고, 네일아트도 받고, 헤어트리트먼트도 하고 싶고, 요즘 유행하는 베이글도 먹어보고, 새로 오픈한 레스토랑도 다녀오고 하고 싶어졌다. 그러다 뭘 그리워 하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이 들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지금 제주에 있으니 여기에 만족하고 지내야겠지?'라고 체념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시골쥐와 서울쥐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실 예전에는 무조건 도시에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서울쥐에서 벗어나면 큰일 날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시골쥐가 편하다. 고작 일 년일 뿐인데 되려 나에게는 이 시골쥐 생활이 더 어울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와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시골에서 태어났기 때문이겠지?
겨우 이년 살이의 제주 삶이지만 이후에도 나에게 도시생활과 시골살이는 선택인 것 같다. 분명 어떤 때에는 시골쥐가 또 어떤 때에는 서울쥐가 되고 싶을 테다. 앞으로는 어느 한 것을 고집할 께 아니라 그때그때에 맞는 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