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는 바다가 보여요. 가까이 전봇대를 지나, 숲을 지나, 마을을 지나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바다예요. 한라산 중간산 즈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제주 시내를 가려면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내려가는 내내 저 멀리 바다가 파랗게 넘실거려요. 아침마다 그 바다를 보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지 몰라요.
밤이 되면 그 바다가 반짝여요. 지난번 제주를 배경으로 찍었던 드라마에서는 백 개의 달로 표현되었던데 우리 집에선 그 장면을 매일 볼 수 있어요. 동그란 달이 바다에 가득 떠있어요. 원래는 고기잡이 배들인데요. 멀리서 보면 어찌나 반짝이는지 정말 수많은 동그란 달이 떠있는 것 같아요. 이곳은 밤이면 지척이 깜깜한데, 저 멀리 바다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있는 지표기도 해요.
제주에 산다는 것은 분명 바다와 가까워진다는 얘기였어요.
제주에 가면 바다를 품고 있는 집에 사는 줄 알았어요. 제주 바다 바로 앞, 마당이 있는 구옥에 살고 싶은 로망이 있었거든요. 예전에 신혼일기라는 예능프로에 나온 모델 장윤주씨네 가족이 머물던 집이 딱 제가 원하던 제주의 집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바다 가까이 1층 집의 모습이 얼마나 고즈넉하던지, 꼭 저런 집에 살아보고 싶었어요.
신혼일기 2, 장윤주씨네 제주 집
그런데 내가 이 말을 하니 모두가 말렸죠. 바다 앞은 위험하다, 바다 앞이 얼마나 습한 줄 아냐, 바다 앞에 살면 가전제품도 빨리 고장 나고, 무릎도 많이 아프다더라(?) 등등 얼마나 무수한 반대가 있었는지, 내가 살 건데 왜들 이러시는지...
문제는 우리가 집을 구하러 다닐 때 바다 앞에 집은 하나도 만날 수가 없었어요. 살고 싶어도 살 수 없었던 것이죠. 더 기다렸더라면, 더 적극적이었더라면 그런 집에서 살아볼 수 있었을까요?
여러 개의 집을 돌아보고 지금 살게 된 집을 선택했어요. 큰길에서 산 위로 위로 자꾸만 올라갔는데 단정하고, 깔끔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더라고요. 제주 도심에서도 10~15분 정도 거리로 가깝고, 1층엔 정원을 품고 있고, 돌담으로 쌓인 그리고 2층에서는 바다가 보이는 그런 아기자기한 집이었어요. 솔직히 한눈에 딱 이 집이다! 싶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마음에 들더라고요.
월정리의 주택과, 제주 도심의 아파트, 애월의 타운하우스 등을 보고 나서 결정한 집이었어요. 결과적으로는 아주 만족합니다.
제주에 집을 구하고 살아보니 우리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도심과의 거리였어요. 제주에 산다고 매일 관광지에 가는 것도 아니고, 바다 앞에 앉아있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가장 많은 일과를 거의 제주 도심에서 보내고 있어요. 심지어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도 그곳에 위치하고 있어요. 주 2~3회 마트도 가야 하고, 제가 가는 요가 학원, 도서관도 모두 그 곳에 있어요. 바다가 보고 싶을 때는 차를 타고 가면 되니 문제없어요. 가장 가까운 바다도 10여분이면 가거든요. 보통 여행은 주말에 가곤 하고요.
제주의 집의 연세 가격은 천자 만별이에요. 육지에서는 월세를 내는데, 제주는 일 년 치를 한꺼번에 내고 이것을 '연세'라고 부르더라고요. 어찌 보면 한 번에 내야 하는 금액이 크니 부담스러긴 해요(어차피 내는 금액은 똑같죠) 일 년 전 여름, 우리가 집을 보러 다녔을 때 연세 분포 가격 1000~3000만 원을 오갔어요. 집의 생김새, 위치에 따라 연세의 차이가 나더라고요.
우리처럼 주택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도심의 아파트나 빌라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가족이 아니라 1인이라면 작은 평수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 국제 학교 근처의 새로 생긴 넓고 럭셔리한 집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연세의 가격은 선택하기 나름이에요. 제주지역에서도 도심 근처와 저기 표선, 성산 쪽의 연세 차이가 분명히 있더라고요. 그건 육지와 비슷하더라고요(물론 예외도 있겠죠).
지금 우리 집은 다른 집에 비해 보증금은 더 비싸고 대신 그 덕분에 연세가 조금 저렴해요. 당연히 바다 앞의 집보다는 저렴하고, 타운하우스보다도 조금 저렴한 것 같아요. 참고로 현재 제주의 집은 서울 도심에서 살 때와 보증금이 비슷하고, 월세는 서울보다 50~70 정도가 저렴해졌어요(요즘 물가 생각하면 더 저렴할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서울에서는 아파트 관리비에 전기, 수도 등등 포함되어 20만 원대로 냈었는데 여기에서는 전기세, 수도세를 따로 내고 있어요. 전기세는 늦 봄, 여름, 가을엔 거의 기본값을 유지하다가 겨울, 초 봄 에는 10만 원~20만 원 이렇게도 나오기도 했어요. 집에 전기 잡아먹는 난로와 2층 난방이 전기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인 까닭이에요. 그래도 태양광을 설치한 집이라 전기세가 많이 세이브되긴 하는 것 같아요. 지난겨울 태양광이 고장 나서 전기세가 들쑥날쑥하긴 했었어요. 그리고 수도세는 비슷한 것 같고요. 대신 그 외에 늦가을부터 겨울, 봄까지(5월) 1층 난방, 온수는 등유가 필요해서 그게 한 달에 30~50 정도 들어가네요. 그러니까 일 년 사용하는 비용의 평균을 생각하면 매달 내는 서울 아파트의 관리비랑 비슷할 것 같아요.
매달 월세 + 난방비를 합쳐서 꽤 나오는 것 같아도 서울에서 살던 아파트보다는 저렴한 것 같아요. 남은(?) 돈은 제주에서 카페, 외식, 관광지, 손님맞이 등으로 지출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에는 아이가 커서 교육에도 조금 더 투자하고 있어서 서울과 생활비가 거의 비슷하게 들고 있어요.
제주에서 사는 것은 미국에서 살 때와 비슷해요. 특히 도심에서 겨우 10여분 거리에서 사는데 외출하려면 꼭 차가 필요해요. 한 달에 한두 번쯤 걸어 나가 버스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한 시간에 한 대 정도밖에(저희 동네 기준) 없어서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더라고요(미국에서도 한 15분쯤 걸어 나가 버스를 탈 때도 있었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운전에 담쌓고 살던 우리 부부는 매일 차로 이동합니다.
동네에 학교가 하나 있는데, 문구점은 없어요. 편의점은 한 개, 슈퍼가 하나 있는데 슈퍼는 문 닫는 때가 더 많아요. 어린이집은 근처에 큰길 건너 (걸어서 15~20분 거리) 하나가 있고요. 아이는 현재 제주 시내로 유치원을 다니는데 그곳은 차량 운행이 안 돼서 오전, 오후 차로 라이딩 중인데, 생각보다 힘드네요. 그래도 지난해 잠시 다니던 어린이집 차량은 근처까지는 데려다줬었어요. 당연히 동네에 학원은 없어요. 대신 초등학생들이 이용하는 학원의 차량이 다니더라고요.
다행히도 배달되는 치킨 집이 하나 있고, 카페는 세 군대나 있어요. 음식점도 몇 개 있는데 이용하진 않게 되더라고요. 문제는 대형마트에서 배달은 꿈도 못 꿔요. 대신 배달비를 듬뿍 준다면 음식 배달은 가능한 곳도 있는 것 같아요. 대신 쿠팡은 제주 전 지역 가능한 것 같아요! 다행이에요. 그래도 미국에서 살 때는 도보 10분 거리에 카페도 편의점도 없었으니까 그것보다는 나은 것 같기도 해요.
제주에서 한 달 살기와 일 년 살기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한 달 살기는 가볍고 일 년 살기는 무겁고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되돌아보건대, 일 년밖에 살지 않을 건데 하고 아무 곳에나 집을 구했다가는 불편한 일이(우리 부부 기준) 많을 것 같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희가 구한 집은 85% 정도 마음에 듭니다. 이보다 더 좋은 곳을 구하는 것은 욕심 같아요. 설마 제주에서 다른 집을 살아보지 않아서 이 정도에 만족하는 걸까요?
그런데 아마 이번에 제주 우리 집의 계약이 연장되지 않았더라면 서울로 다시 돌아갔을 것 같아요. '제주에서 제주로의 이사는 하고 싶진 않아요'라는 것이 우리 부부가 내린 결론입니다.
한 가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제주에 집을 구하실 때는 본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잘 파악하셔서 그것에 맞는 집을 구하시는 것이 필수인 것 같아요. 저흰 그런 의미에서 운이 좋았던 것 같고요. 잘 선택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