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낭만

제주의 사계절을 함께하다

by Blair

운명처럼 제주에 산지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작년 10월 중순 제주도에 도착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제주,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깜깜한 동네를 한참을 올라왔다. 우리 집을 내비게이션에 찍으면 항상 집 뒤편을 가르쳐 주는데 그날도 당연히 그래서, 첫날인데 택시에서 잘못 내려서 한참을 되돌아 그렇게 집에 들어왔다.



한 달 전 집을 구할 때 한번 보고 한 달여 만에 오는 집이라 이곳이 맞나? 긴가 민가 했었다. 문자로 남겨진 비밀번호를 꾹꾹 누르며 집안에 들어섰다. 집 구할 때와 다르게 싹 치워진, 깨끗한 집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사 오기 전 했던 고민과 걱정이 싹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이삿짐은 내일 들어올 예정이라 하루 전에 미리 도착해 청소를 할 생각으로 일찍 들어왔는데 이미 청소가 되어 있어 깨끗하기만 했다(집주인 만세). 이사를 도와주러 왔던 엄마도 "펜션에 놀러 온 것 같아" 하고 말씀하시며 마음에 들어 하셨다.



그날 밤, 창문 밖에는 고양이가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우리를 반기는 고양이인지, 아니면 밥을 달라는 고양이 인지 한참을 아주 오랫동안 우리를 쳐다보며 있었는데, 왠지 퉁퉁 심통 나있던 얼굴이 웃겼다. 그 고양이는 이후로도 종종 찾아오곤 했다.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늘 고양이를 살뜰하게 챙겨주었던지 한참을 여러 고양이들이 오갔다.







제주에서 가을을 시작했다. 산굼부리의 갈대를 보고 새별오름에 올라 갈대를 만났다. 가을이 가버릴세라 서둘러 허브동산에 방문해서 핑크 뮬리도 실컷 감상했다. 제주의 가을이 갈세라 곳곳에 다니며 원 없이 만끽하였다. 제주생활 시작의 설렘이 함께여서 그런지 더욱 만족스러웠다.






제주의 가을, 산굼부리






제주의 겨울은 내 평생 겪어본 가장 큰 추위였다. 겨울이 되기도 전에 난방 텐트를 꺼내야 했고, 전기보일러를 구매해야 했다. 특히 주택살이는 처음인 데다 기름보일러는 낯설었으며, 거기에 넣는 등유는 넣어도 넣어도 끊임없이 들어가는 데다가, 가격이 꽤 비싸서 적당한 수위만을 유지해야 했다. 그런데 작년 10월 말 1120원이던 기름값은 조금씩 조금씩 오르더니 22년 10월 오늘 기준 1620원까지 올라버렸다. 1년 만에 리터당 500원이나 오르는 게 말이나 되는 건가! 아무튼 다시 생각해도 겨울은 정말 추웠다. 오히려 집 밖이 집 안보다 따뜻할 것만 같았다. 주택의 겨울은 어마어마했다. 덕분에 주택의 낭만은 조금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제주는 서울보다 덜 추워서 수도가 어는 일은 없었다. 재작년 세탁기가 얼었던 기억을 생각하면 인간이 추운 이곳이 나은 듯 싶기도 하다.





제주의 겨울, 눈 내린 귤나무





제주의 봄은 온통 벚꽃이었다. 그동안 서울 여의도 벚꽃길, 양재천 벚꽃길 이렇게 보다가 거리 전체가 벚꽃으로 가득 찬 제주를 만났다.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출퇴근길이 벚꽃으로 가득했다. 얼마나 풍성한 벚꽃이던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벚꽃으로 유명하다는 공원도 다녀오고, 전농로 벚꽃길도 구경 가고 내 생애 벚꽃을 가장 원 없이 본 한 해였다. 벚꽃에 진심이었던 나는 정말 행복했다.





제주의 봄, 상예동 벚꽃거리





드디어! 기다리던 여름이 되었다. 제주의 여름은 오직 바다였다. 제주에 와서 가을, 겨울 그리고 여전히 추운 봄을 보내며 바다는 아직 제대로 가보지 않았는데 이제 매일같이 바다를 가리라! 하고 다짐했다. 제주 곳곳의 해수욕장을 탐방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해변부터 아무도 없는 곳까지 천천히 찾아다녔다. 물속에 들어가 까르르 웃는 아이를 보며 한참을 행복해했다. 함께 모래성도 짓고 모래놀이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제주의 여름, 월정리 해수욕장








그리고 다시 가을을 맞이했다. 제주의 사계절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풍성하고 값진 시간이었다. 내 생애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던 그런 풍요로운 시간이었다. 매일이 여행이던, 삶을 즐거움으로 바꿔준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래서 더욱 고민되었다. 이렇게 좋은 곳에 어떻게 일 년만 살고 끝내지? 아직은 복잡하고 혼잡스러운 원래의 곳으로(그곳에 가면 내 머릿속이 그렇게 됨, 지금 off상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일상이 여행인 삶을 버려두고 다시 돌아가는 것은 누구라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행복을 위해 불편한 것쯤은 조금 눈감고 지내기로 했다.





앞으로의 제주도 생활도 기대된다. 분명 또 다른 낭만이 더해질 것이다. 이곳에 더 재미난 이야기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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