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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Oct 25. 2022

우리 집 총량 보존의 법칙

오랜만에 유기농 매장에 들렸는데 유자청이 세일하고 있었다. 매년 겨울 우리 집에 떨어지지 않게 사다 놓는 유자청이라 반가웠다. 게다가 한라봉청과 청귤청은 1+1 행사를 하고 있었다. 하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모과청은 세일을 하지 않아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금세 1+1 하는 한라봉청과 청귤청은 사다 놓으면 너무 많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2병을 어느 세월에 다 먹을 수 있을까? 그래서 일단 포기하고 세일하는 유자청이라도 사갈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그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돌아다. 왜냐하면 집 냉장고 한편에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는 자몽청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 빨리 먹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작년 겨울 내내 유자청, 모과청, 자몽청을 사다 두고 마시며 겨울을 났다. 더욱 춥게 느껴지는 겨울 주택생활에는 따뜻한 차가 필수였다. 무려 유자청은 3병을 먹었고, 모과청은 2병을 먹었다. 그리고 자몽청1병을 다 먹고 다시 같은 걸로 샀은데 아직 그것의 1/3 정도가 남아있다. 여름이 되면 탄산수에 얼음 넣어 먹을까 했는데 역시 잘 먹지 않게 되었고, 결국 다시 가을이 왔고 겨울이 다가온다. 자몽청이 남은 이유는 혼자 대용량 사이즈였다. 유자청과 모과청이 0.5kg 정도였다면 자몽청의 사이즈는 2배, 1kg였기 때문이다. 1kg씩 두병이라니 총 2kg 자몽청 양 좀 많긴 했다. 결국 먹다가 질리고 말았다.




어젯밤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 나오니 이미 한 겨울 느낌이다. 몸이 너무 춥길래 빨리 따뜻한 차를 마셔야겠다 생각했다. 냉장고를 열어 1/3쯤 남은 자몽청의 뚜껑을 열었다. 몇 달 만에 맛 본 자몽청은 그래도 맛있다. 추운 계절이 와서 그런지 딱 마시기 좋았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 유자청이 아른거리는 게 자몽청을 어서 먹고 사러 가야생각한다. 이따 남편도 자몽차  잔 타 줘야겠다.



아! 유기농 매장엔 작두콩차도 1+1 행사 중이었다. 그런데 지난달 사다 놓은 작두콩 차 티백이 5개나 남아서 세일을 하고 있는데도 샀다. 아... 진짜 좋은 기회인데...




'그럼 그냥 사지 그래? 사놓지 그래?'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사다 놓으면 언젠가 마시기야 하겠지만 집에 하나둘씩 쌓여있는 식재료를 보는 마음무겁다. 때때로 욕심내고 쟁여둔 음식이식료품이 잊힐 때도 있고, 나의 경우에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식료품을 보면 때때로 보는 것으로 이미  질려서 먹지 못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나에겐 식료품 팬트리가 차고 넘치는 것이 가장 스트레스다. 이전 집에서는 집이 작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넓은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래서 우리 집 식료품들은 웬만하면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사다 두는 편이다.




질량 보존의 법칙은 우리 집 팬트리에 존재한다. 어느 정도의 범위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역시 세일이 무섭긴 하다.




얼마 전에 미소 된장을 사야 하는데 1+1이었다. 사실 그때는 좋다고 샀는데 된장 새로 오픈하고 나서 알았다. 된장국을 매일 끓여먹는 것도 아니니 줄어드는 것이 정말 더디다. 그래도 장 종류는 두고 먹으면 되긴 하는데 팬트리에 새것으로 남아있는 +1의 미소된장을 누구에게 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다고 정가로 1+1인 것을 내버려 두고 1개만 가져올 수는 없었다. 이럴 때 옆에 친구라도 살아서 함께 나눠먹으면 좋을 텐데...




그래도 과일청이나 된장은 두고 먹다 보면 언젠가 다 먹기 마련이다. 그러나 물건은 저절로 사라질 일이 절대 없다. 밖에 나가 잃어버리거나, 오랫동안 사용해서 못쓰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아있다.










이렇게 살고 있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댁에서 오랜만에 택배(주로 아이 장난감)를 보내셨다. 지난봄에 자주 택배를 보내시길래 전화를 드려서 택배를 보내지 말아 달라 부탁했더니 한참을 보내지 않으셨다. 한동안 택배가 오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데 다음 주 할로윈을 앞두고 택배가 도착한 것이다. 뻔히 그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 예상되니 문 앞에 놓여있는 택배 상자를 봐도 기쁘지 않았다(아, 내 택배가 아니라 그런가?!!)








역시나 택배 안에는 할로윈 맞이 장난감들이 가득했다. 불 들어오는 봉, 전등, 망토, 스노우 볼, 할로윈 바구니 등등 여러 가지가 들어 있었다.  손자가 생각나 택배를 보내신 부모님의 마음을 알면서도... 싫었다. 실은 나도 이번에사고 싶은 할로윈 제품들이 있었는데, 이미 가진 할로윈 소품이 많아서 사지 못했다. 그래서 더 싫었다. 구매한다면 내 마음에 드는 것으로 사고 싶었고, 올해는 작년에 산 것들이 있어서 절대 사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작년에도 이미 택배로 보내주셔서 한가득 짐이 된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다(+크리스마스 택배).




택배를 보고 잔뜩 실망 내 얼굴을 남편이 보더니 나에게 말한다. "마음에 안 들면 버려~" "아니 새것을 어떻게 버려!, 처음부터 안 보내주시면 좋잖아" 나는 물건을 버리는 것은  죽어도 못하겠다. 심지어 이번에 사서 새것인 제품들을 버리는 것은 환경을 생각한다면서 정말 최악의 경우이다. 그래서 택배를 받는 것도, 선물도 싫은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진 물건을 잘 관리해서 쓰거나 내 마음에 드는 것들만 사서 오래도록 쓰고 싶은데... 때론 이렇게 어긋난다.



어쩔 수 없었다. 할로윈 장난감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바로 주말에 놀러 온 아이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는 것이다. 어차피 새것이라 선물하기에도 제격이었다. 나는 선물 생색을 냈고, 아이들은 기뻐했며, 부모님께서는 택배를 보내고 기뻐하셨다. 갑자기 생긴 물건으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이뤘다. 참고로 이번 경우는 참 다행인 경우다.




이미 가진 할로윈 장난감들로도 충분하다









얼마 전엔 엄마가 제주에 놀러 오시며 농사지으신 호박을 5개나 가져오셨다. 제주도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아니면 앞집에라도 드리면 좋을 텐데, 이미 앞집에서도 호박을 가득 주셔서 받아둔데다 호박을 다시 드리기가 뭐해서 적당한 양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엄마 보고 도로 가져가시라고 했다. 엄마가 나에게 그러신다. "그냥 두고 먹고, 못 먹으면 버리면 되지! 호박을 내가 무겁게 가지고 온 호박을 다시 가져가야 해?"



"응! 먹지도 않으면서 가지고 있는 것도 싫고, 그것을 가지고 있다가 먹지도 않을 거면서 썩혀버리는 것은 죄야 죄. 그리고 그게 잘 안돼. 안 쓸건대 가지고 있고, 가지고 있어서 부담이 되면 다 짐이야 짐! 그러면 내 마음이 불편해!"




어쩌면 미니멀 병에 걸린지도 모르겠다. 물건이 쌓이는 것을 참지 못하는 병,  쉽게 버리지 못하는 병, 원하지 않는 선물을 극도로 싫어하는 병,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고 싶어 하는 병. 그래도 난 이런 내가 좋다. 미니멀에 진심으로 다가가는 내가, 허투루 살지 않겠다는 엄격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참 좋다.



물질에서 벗어나 가뿐하게 살고 싶다. 물건에 둘러싸여 살고 싶지 않다. 남들 눈에는 내가 답답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융통성 하나 없이 살려는 내가 대견하다. 내가 살림을 하는 한 우리 집 물건의 총량 보존법칙은 계속될 것이다. 제발 크리스마스에는 택배가 오질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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