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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Nov 01. 2022

1년에 한 번 입는 옷

나가려면 입을 옷이 없어



오늘은 옷을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겨울은 다가오고 있고, 아직도 정리하지 못한 여름 옷 그리고 입고 있으나 손이 가지 않는 가을 옷이 뒤엉켜 옷장 안을 가득 잠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옷장을 열면 옷이 가득한데 나갈 때 옷을 입으려고 한참을 뒤적여도 마땅한 옷이 없는 마법 같은 일.



며칠 전 친구랑 전화 통화를 하는데 나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분명 옷장에 옷은 가득한데 입을 옷이 없다고... 내 말이 그 말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분명 우리의 옷장에 옷은 차고 넘치는데 입을 옷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벗고 외출을 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옷이 차고 넘치는 것이 맞긴 하다. 그리고 계절이 변할 때면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스무 살 이후로 계속되는 무한반복 지옥 상태이다.











요즘 나는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에 빠져있다. 원래 이렇게 많이 영상을 보는 날들이 없었는데 갑자기 타오르는 중이다. 그런데 내가 보는 영상의 70% 정도는 미니멀리스트들의 이야기다. 내 주위에는 미니멀로 살아가는 사람이 없어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조언을 얻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다. 그래서 그동안은 책만 의지했는데, 요즘은 영상을 통해 조금씩 배워가며 나아가는 중이다.




요즘 즐겨보는 영상 중에 미니멀리스트 부부가 있는데. 그들은 살고 있는 집이 작은 데다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냉장고 사이즈도 작았다. 특히 부부가 가진 옷의 양이 현저히 적었다. 왕자 행거라도 불리는 그 행거의 위, 아래를 각각 남편, 아내가 하나씩 맡아서 쓰고 있었다. 분명 사계절의 옷이 행거 하나에  모두 걸려있다. 대단하다. 인간의 사계절의 옷이 저 정도밖에 안 되다니... 놀라울 일이다.



그리고 미니멀로 살아가는 다른 부부 영상도 봤는데 그 부부는 가방에 모든 짐을 다 넣고 다닐 정도로 단출한 생활을 한다. 이 미니멀 부부는 자칭 국제 홈리스 부부로 여행을 즐겨하는데 그래서 가진 물건이 위의 미니멀 부부보다 적어 보인다. 가지고 있는 모든 옷과 물건이 모두 트렁크 한 개와 백팩에 들어가 있으니 다 꺼내면 몇 개나 될까?



그런데 여러 영상을 보다 보니까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 가끔 영상 중간중간에 택배를 받는 장면과, 택배를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무슨 택배인지 봤더니 가진 옷 한 벌을 판매해서 그 돈으로 다른 옷을 사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와! 좋은 생각이다.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옷을 구입했다가 몇 번 입고는 흥미를 잃어 새로 사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영상을 보는 내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해볼까? 확실히 책 보다 영상으로 보는 것이 미니멀 생활에 더 자극이 되긴 했다.








우리 남편도 거의 미니멀리스트에 속하는 편이긴 한데 미니멀 부부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현재 옷장 하나의 절반만을 사용하고 있고 거기에는 사계절 옷이 다 들어가 있다. 물론 그렇게 쓰고 있는 것은 맞으나 아래쪽에 접혀서 쌓여 있는 옷이 조금 되는 것을 보면 미니멀 부부들에 비하면 엄청난 맥시멀 리스트다. 그러나 내 눈엔 저 정도도 굉장한 미니멀 리스트다. 솔직히 내 눈에는 매일 같은 옷을 입는 느낌이다. 그러나 신경 쓰지는 않는다. 본인의 취향을 존중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집의 가장 큰 문제는 나다. 그렇다고 문제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지만 역시 나는 아직 멀었다. 특히 나는 옷도 액세서리도 이 세상의 모든 귀여운 소품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미니멀 리스트로 살기로 마음먹은 후에 더 이상 예쁜 쓰레기들은 사지 않긴 한다.  화장품에그렇게 많은 돈은 들지 않는 것 같다(다행이다) 그러나 아직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 있으니 옷이다. 계절이 바뀌면 너무도 당연하게 옷이 사고 싶어 진다. 아, 이놈의 물욕. 나도 나이가 더 많아지면 변하겠지 생각하고 싶지만, 일흔이 넘으신 우리 어머님이 옷을 구매하는 속도를 보다 보면 이것은 변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알 수 있.




그래서 나는 오늘도 노력해야 하는 미니멀 리스트 초보이다.








일단 옷장에 있는 옷을 매의 눈으로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미니멀 생활을 하게 되며 옷을 덜 사게 되면서 가진 옷을 정말 열심히 입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옷장에 옷이 가득했다. 오늘의 주된 타깃은 일 년에 한 번 정도밖에 입지 않지만 주야장천 걸려있는 옷을 제거하기로 했다.



그 옷들은 때때로 일 년에 한 번도 입지 않고 지나갈 때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을 흘러가고 있는 가능성도 있다. 그 몇 년 동안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입긴 하지만 절대 먼저 손이 가지 않는, 그냥 다른 옷을 입는 기분을 내려고 입는 옷이 분명히 존재다.



그 옷을 퇴출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유행이 지나가서 못 입는 옷이나,  아예 손이 안 가서 입지 않는 옷은 정리하기가 쉬운데, 있으면 일 년에 한두 번 입는 옷은 '언젠간 입을 건데, 입긴 하는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리를 하고 보니 바지 두 개와 카디건 두 개, 원피스 두 개가 나왔다. 그리고 경량 패딩도 있었다. 내가 가진 경량 패딩은 두 개인데 되는데 하나는 내가 산 것이고 하나는 어머님이 안 입으시길래 가져온 것이다. 경량 패딩이 두 개나 있을 필요가 없어서 하나는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오래된 바지 한 개는 버리기로 마음먹었고, 나머지는 모두 당근에 올려 판매해보기로 결심했다. 일 년에 한 번 입었던 옷들이라 상태가 거의 새것 같았기 때문이다. 카디건은 유행타지 않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금방 팔렸다. 그리고 원피스 한 개는 택배로 보내기로 했다. 나는 하루 만에 옷을 두 개나 정리할 수 있었다. 나머지 옷은 조금 더 판매 연락을 기다려보고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여유 있는 옷장을 가지고 싶어






이번에 일 년에 한 번뿐이 입지 않는 옷을 정리하면서 마음먹은 것이 있다. '언젠간 입겠지 하는 옷은 빨리 정리하자' , '진짜 마음에 드는 옷이 아니면 절대 사지 말자' , '내가 산 옷만 관리하자' 이다.



1. 언젠간 입겠지 하는 옷은 결국 입지 않게 마련이다. 차라리 빨리 정리하는 차원이 옷장의 여유를 위해서도 낫다. 앞으로 일 년에 한두 번 입을 만한 옷은 사지도 말아야 한다.



2. 분명 2% 부족한 옷을 구매한 적이 있다. 팔이 지나치게 풍성하다거나, 치마의 허리 부분이 불편하거나 하는 등의 옷을 세일이나, 충동구매로 사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원하는 모든 조건이 만족되지 않는 옷은 절대 사지 말자.



3. 가끔 누군가 나에게 옷을 주거나, 옷을 좋아하는 어머님이 잔뜩 사놓은 옷 중에 순간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 골라 가져올 때가 있다. 결국 그 옷들은 내가 산 옷이 아니라 애정도 없고, 때가 지나면 이걸 왜 가져왔지? 후회하기 마련이었다. 앞으로는 내가 산 옷만 우리 집 옷장에 들여야 한다.




아직 나는 행거 위, 아래 하나에 계절 옷이 다 들어가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앞으로도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옷을 잘 입는 패셔니스트는 아니지만, 계절마다 어울리는 예쁜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번에 일 년에 한 번 입을 옷을 정리하면서 느끼게 된 것이 있다면, 공간만 차지하는 옷을 사는 것보다 매번 열심히 입으며, 자주 손이 가는 그런 옷을 사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나 매번 입을 수 있는 편하면서 예쁜 옷을 사서 자주 입고, 그 옷이 낡아서 옷을 바꿀 정도가 돼서 새로운 옷을 구매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단 오늘 1년에 한 번 입옷들은 거의 골라낸 것 같으니 남은 옷장에 걸린 옷들부터 열심히 입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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