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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Dec 10. 2022

옷장에 차곡차곡


작년 제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샀던 아주 귀여운 카디건이 있다. 왜 아주 귀여운 카디건이냐고 하면 양쪽 팔 뒤편에 스마일이 커다랗게 수놓아져 있기 때문이다. 지나가다가 본 커다란 스마일 자수에 꽂혀서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분명 제주에 와서는 쇼핑을 하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그 스마일을 놓고 갈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 옷을 사 왔고 가을에 겨우 한 두 번 입고 난 후 금세 겨울이 되, 카디건은  옷장의 공간자치하게 되었다.



그게 작년 가을의 일이다. 딱 이맘때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날씨가 쌀쌀해지니 따뜻하고 도톰한 옷이 입고 싶고, 갖고 싶어 그 카디건을 구매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니 저걸 왜 샀지? 하며 후회하게 되었다. 충동구매는 늘 이런 결말을 맞이하고는 한다. 당연히 올해 또 마음에 드는 아우터가 나타났다. 매년, 계절마다 새로운 옷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참고로 지금 우리 집 2층의 거실 옷장으로 빙 둘러 쌓여 있다. 그 공간은 내가 아주 예전에 살았었던 원룸의 크기의 두배 정도는  되기 때문에 아주 크고 넓다. 그래서 옷장마다 내가 가진 옷을 하나씩 옷걸이에 걸어 여유 있게 놓을 수 있다. 지금 내가 가진 옷장을 세어보니 무려 9칸이다. 2층에 5칸, 1층에 4칸이 있다(게다가 절반 사이즈의 옷장도 5칸이나 있다)




그중에 내가 사용하는 것만 긴 옷장 5칸이다. 이전 집에서는 분명 2칸 정도로 버텼는데 5칸으로 확장되니 재벌 옷장이 부럽지 않다. 당연히 이전과 다르게 옷이 빼곡히, 숨도 못 쉴 정도로 들어찬 옷장 아니라, 마쇼룸처럼 걸려있는 옷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의 모든 옷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은 채 옷걸이에 하나씩 차곡차곡 컬러별로 걸려있는 모습은 가히 황홀하다. 볼 때마다 뿌듯해지는 것이, 이런 옷 방이 내 소유라면 얼마나 여유 있을까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2층의 오른쪽 옷장을 나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다시 원래의 집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다시 2칸의 옷장만 써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옷을 늘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one in, one out을 더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했다. 스마일 카디건을 제거해버리자! 그냥 버리거나 드림하긴 너무 새것이라 아까우니 당근 마켓에 반 값에 팔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제 값은 받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산지 1년은 된 것이니까, 아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옷장의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것보단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옷을 제거하면 새로운 아우터를 살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옷 하나가 들어오면 하나가 나간다는 생각은 때때로 초보 미니멀리스트에게는 위험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호락호락할 수 없다는 듯이, 카디건은 열흘이 지나도록 거래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산 옷이니 올해는 아우터를 새것으로 사지 말고 스마일 카디건을 잘 입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매우 아쉬웠지만, 당연히 새로운 옷을 사고 싶었지만, 그래도 나의 소비에 책임지고 싶었다. 이번 일을 통해 다시는 충동구매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반성해야



그런데 매우 운명 같은 일이 벌어졌다. 왠지 시간이 많은 오늘, 옷 매장을 지나가다 맘에 두었던 아우터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보러 가볼까? 생각했다. 보는 데는 돈이 들지 않으니까 그리고 정말 살 정도로 마음에 들었던 것이 확실한 것인지 다시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이미 나의 행동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런데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아우터를 확인하러 그 옷 가게에 도착한 순간 당근 마켓의 알람이 울렸다. '당근!' '설마????' 이렇게 당근 소리가 반가울 수가 없었다.



스마일 카디건의 거래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실은 오후에 더 가격을 낮게 해서 무조건 판매해볼까 했는데 그전에 거래가 되었다. 물론 기존의 가격의 반값으로, 그리고 처음 올려놓은 가격보다 5천 원이나 저렴하게 거래되었지만 말이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매번 이렇게 내 옷을 판매하는 것은 아니. 지난번 옷 정리를 하며 당근에 내어놓아 본 것이 내 옷의 첫 거래였다.  의외로 옷을 그렇게 많이 사는 편은 아니라(정말이다) 내 것으로 거래할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 아우터를 샀냐고? 그때 옷가게에 가던 길에 당근을 하고, 매장에 들어가 지난번 맘에 들었던 아우터를 입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마음에 들지 않아 구매하지 않았다. 덕분에 돈도 굳었고, 당근으로 돈도 벌었다. 애초에 다른 옷을 사려고 판매를 했지만, 그 카디건에 대한 미련은 하나없으니 다행이었다.




대신 다시 옷장을 열었다. 또 겨울이 되며 '입을 옷이 없네'라는 생각이 들어 옷을 사기 전에 조치가 필요했다. 일단 옷장의 겨울 옷을 모두 꺼내 입을 수 있는 조합으로 매치하기 시작했다. 먼저 상의 + 하의를 조합한 다음에 그것에 어울리는 겉옷을 옆에 함께 옷장에 차곡차곡 걸어놨다. 이제 그것 중에 하나를 골라 입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보니 앞으로 열흘 정도는 더 이상 뭘 입고 나가야 할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이렇게 해봤니 내가 가진 겨울 옷을 더 샅샅이 살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옷걸이에 차곡차곡 걸어놓기 시작하니 좋았던 점은 어떤 옷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한눈에 파악되기 때문에 앞으로의 충동적인 쇼핑을 조금은 막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렇게 해놓으니 그 계절 내내 무슨 옷을 입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그만큼 우린 옷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래서 보다 계획적인 쇼핑이 가능하게 되었다.




스마일의 귀여움에 눈이 멀었던 작년의 나를 반성한다. 그리고 앞으로 충동구매로 인해 옷을 당근으로 판매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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