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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Nov 15. 2022

하나뿐인 캔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지난주는 거의 늦여름 날씨였는데, 갑자기 쌀쌀한 가을이다. 더웠다 추웠다 좀처럼 감잡을 수 없는 날씨이다. 가을이 되면, 겨울이 다가오면 따뜻한 차와 캔들이 생각이 난다. 아무튼 주택이라는 곳은 처음인데, 아침저녁으로 정말 한겨울 느낌으로 싸늘하게 식어버리는데 아침으로 숭늉을 그리고 밤마다 차를 마시며 추위를 떨쳐내고 있다.



오랜만의 여유시간이다. 한참을 사용하지 않았던 캔들과 워머를 꺼내본다. 일 년 여정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정리해볼까 해서 꺼내봤다(요즘 나의 취미는 집안의 갖가지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 캔들과 캔들워머는 지난 집 집들이에 친구에게 선물 받았던 것이다. 분명 지난 집에서는 자주, 꽤 유용하게 썼었다. 그러다 제주에 오면서 방치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전에 아주 잘 사용하던 것이라 바로 정리하는 것이 고민이 되었다. 그럼 다시 한번 더 사용해볼까?



왠지 이 집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캔들을 워머에 넣고 켜놓으니 은은하니 잘 어울린다. 집이 문제가 아니었다 계절의 문제였다. 가을이 되니 캔들이 어울리는 날씨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선물 받았던 우드윅 캔들




오랜만에 꺼낸 캔들을 종일 켜 두었다. 집안에 은은한 향기가 가득했다. 향기 덕분인가 나도 릴랙스 되며 기분이 좋아졌다. 지난해에는 왜 캔들을 켜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난 집과 이 집에서의 다른 점은 꽃과 캔들이다. 지난 집은 꽃도 꼭 사다 놓고, 캔들도 열심히 켰었는데 여기선 꽃 대신 정원이, 캔들 대신 히터가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앉아있는데, 앞 집과 우리 집을 오고 가며 놀던 아이는 집에 들어와 캔들이 켜있는 것을 보았다. "엄마 집에 향이 정말 좋아요~~" 그리고 캔들 가까이에 다가가서 향을 더 깊이 맡는다. "아~ 정말 좋다!" 향에 늘 관심 많은 아이는 로션의 향기, 캔들의 향기, 엄마의 향기, 커피의 향기를 맡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 일어났다. 다음날, 아이는 꺼진 캔들워머에 있는 캔들을 꺼내 향을 맡고 싶어 했다. 점심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던 나는  "응~ 가져가서 맡아봐~ 대신 무거우니까 조심해" 하고 이야기해줬다. 아이는 워머에서 캔들을 꺼내 가져 가다가 금세 바닥에 떨구고 만다.




결국 캔들은 깨지고 말았다. 바닥에 여기저기 유리파편이 눈에 띈다. 꽤 두꺼운 유리병이라 깨질지 몰랐는데 아이 키우는 집은 늘 조심해야 다.  아이를 조심히 시킨 후에, 만들던 점심을 뒤로한 채 수습에 나섰다. 아, 안에 유리가 깨지면 머리가 아프다. 아이가 다칠까 봐 걱정인 것이 가장 다. 아마도 아이가 더 어렸다면 사용도 하지 못했을 캔들이었다.




이번에 정리할까 말까 고민한 캔들이었는데, 막상 깨져서 앞으로는 사용하지 못한다 생각하니 아쉬웠다. 오랜만에 켠 캔들의 향이 역시 나의 취향이어서 그랬을까. 그리고 캔들을 선물해준 친구 생각도 나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2년을 훌쩍 넘긴 캔들의 유통기한이 다 되었겠다 생각이 들었다. 2020년 초에 받은 선물이니 족히 2년 반 정도가 되었고, 내가 켜지 않은 것만 몇 개월이니 어쩌면 이번에 정리되어야 할 것이 맞긴 했었다. 좋게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정리된 것이다.




얼마 전 매일같이 사용하던 유리 냄비가 깨졌다. 자주 사용하던 냄비라 바로 다시 살까 말까 고민했지만, 대신에 좀처럼 사용하지 않고 남아있던 한 개의 냄비가 그 자리를 메꿨다. 냄비가 깨지고 캔들이 깨지고, 물건이라는 것은 종종 이렇게 슬그머니 나의 곁을 떠난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래서 새로운 것을 살 수 있고, 기존에 있던 것을 대체해서 쓸 수도 있는 것 같다.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물건. 그런 것은 없는 것 같다. 결국 유행이 지나거나, 이렇게 망가져서 사용하지 못하게 되거나, 되돌아보건대 이런 물건이 수십, 수백, 수천 개가 날 스쳐 지나갔다. 어쩌다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캔들을 살 수도 있을 테지만 어쩌면 집에 있는 향수나, 룸 스프레이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여 자연스럽게 정리된 물건들이 고맙기도 하다. 아까워서, 소중하고 귀해서 제대로 사용하는 물건이 얼마나 많았던가도 되돌다 본다. 이번 기회를 통해 물건을 물건으로 대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캔들이, 유리냄비가 깨진 것은 나에게 이런 작은 깨달음을 주려고 그랬나 보다. 물건을 잃는 것이 아까웠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보내주어야겠다.







메인사진 : https://pin.it/1gzbvw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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