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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Dec 18. 2022

무심하게 지나치기



매년 연말마다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스타벅스의 다이어리를 받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일이다. 올해도 17잔의 커피를 마셔야 한다. 17잔이나 마셔야 한다고 하지만 매년 어렵지 않게 모으고 있다. 왜냐하면 거의 매일 가는 카페를 그곳으로 가면 되고, 특히 나는 해야 할 일을 커피숍에 가서 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제주에서 살게 되며 일어났다. 제주는 카페가 정말 많기 때문에 그 많은 카페를 두고 스타벅스를 가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스타벅스도 그렇게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의 중심가에는 몇 발자국 걷다 보면 스타벅스를 몇 개씩 만나곤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겨울이 왔고, 나는 다이어리가 필요하니까 다시 열심히 스타벅스에 다녀야 했다.   




그동안 스타벅스 다니며 시즌마다 새롭게 음료를 마시는 것도 좋고, 따뜻한 오늘의 커피를 마시며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롭게 나오는 md 들을 보며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해, 매번 새로운 md마다 컵, 텀블러, 자질구레한 것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샀었다. 정말 정말 열심히 사들였었다. 나에게 그럴 때가 있었다는 것이 굉장히 오래전 이야기 같지만 최근에도 보기만 하면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제주로 내려오며 스타벅스를 가는 횟수가 1/10로 줄어드니 md를 볼일도 없고, 그러니 당연히 갖고 싶은 생각도, 물건을 살 일도 확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번 겨울, 다시 프리퀀시를 모으러 스타벅스에 다니다 보니 다시 md에 눈길이 갔다. 이번에도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새로운 제품들이 새로 나와 있었다. 그것 외에도 갖고 싶은 것은 늘 빠르게 눈에 띄는 법이다. 새로운 것을 보면 여전히 갖고 싶어 지는 마음을 보면 역시 나는 초보 미니멀리스트가 확실하다.





2023, 스타벅스 크리스마스  md








오늘은 지나가다 본 장바구니와 유리컵이 마음에 들었다. 응? 장바구니가 마음에 들었다고? 장바구니는 스타벅스 로고가 커다랗게 박힌 동그란 지퍼에 장바구니가 쏙쏙 들어가는 그런 모양이었다. 세상에 장바구니마저 탐나다니... 그러나 이미 집에 여러 개의 장바구니 존재하고 있다. 물론 장바구니를 내가 산 것은 없고, 어디에선가 사은품으로 받은 것들이 하다. 그 많은 장바구니들을 여러 번 아니 수십 번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튼튼다. 그러니 스타벅스에서 장바구니를 사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주전자를 발견했다. 이 주전자는 유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주전자의 손잡이는 나무로 되어 있고, 로고가 커다랗게 박혀있다. 심플하며 클래식하니 마음에 든다. 여기에 드립 커피를 담아 따라 마시면 딱 일 것 같은데... 문제는 집에 유리 주전자가 두 개나 있다는 것이다. 그때도 이런 마음으로 주전자를 샀다. 작은 사이즈 주전자 한 개는 내가 샀고 커다란 사이즈 한 개는 선물 받았다. 굉장히 잘 쓰고 있다. 그러니 다시 하나를 살 이유가 전혀 없다.




아... 나는 이미 가진 것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새로 살 수 없게 말이다! 아쉽다. 이유는 그동안 열심히 소유한 탓일 것이다. 누굴 탓하리...





탐이 난다 탐이나!








어느 날 엄마와 이야기를 하는데, 어릴 적의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갑자기 그런 말을? 어린 내가 얼마나 작고 작은 것을 많이 사던지 서랍 가득 그런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고 했다. 대체 나는 얼마나 사들였던 걸까? 그때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를 낳아보니 처절하게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사들이는 작고 작은 것들로 집안에 가득하다. 평소에 별로 사주는 것 같지도 않은데 집안 곳곳 그 작은 것들이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저녁마다 그것들을 정리하고, 분류하고, 치우는 것의 한계를 느낀다.



그런데 나도 어릴 때 이랬다는 거지?



지금의 나는 한 집안의 안주인이 되었다. 아마 지금의 내가 어릴 적의 나처럼 물건을 사들인다면 내 것과 아이의 것이 합쳐져 우리 집은 폭파하기 직전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되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릴 적 엄마가 그렇게 물건을 사지 않으셨던 걸까?




주위를 둘러보면 늘, 언제나 예쁜 물건이 곳곳에 가득하다. 앞으로의 나는 여전히 그것들을 구경하며 희열을 느끼고, 비록 사지 못해 억울한 마음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냥 사면되지 뭘 그렇게 고민해!"라고 말하는 주위 사람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예쁘고, 귀여운 것을 봐도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때때로 마음이 요동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귀엽고 탐이 나는 물건이라도 그것을 욕심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나는 달라질 수 있을까? 내년의 나에게 더욱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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