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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Dec 05. 2022

예감이 좋지 않았다.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어쩐지 서울에 가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데 결혼식에 다녀와야 해서 갔는데 결국 코로나에 걸려오고 말았다. 3년 동안 버텨왔던 방어막이 해제되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버텨왔던 3년인데 결국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사람보다 걸린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말이다.


 

서울에 가기 위해 들린 제주공항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지? 여행 성수기구나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을 뚫고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공항 근처에 쇼핑몰에 가서 식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오전 치과를 거쳐 대형 건강검진센터를 갔다. 그리고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 후에는 그곳에서 가장 큰 쇼핑몰에 가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백화점을 두 군데 들려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만 삼만보의 걸음을 걸었다. 이미 이 정도로만 나열해도 내가 서울에 갔다는 것은 코로나에 걸릴 수많은 요소를 만났다는 것이다. 어쩌면 제주 이전에 서울에서  때 걸리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이다(오히려 그때 더 조심했던 것 같다).




사실 작년 제주에 내려왔을 때는 코로나 청정지역을 기대했으나, 이사 올 때부터 코로나가 급속도로 전파되어 걸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제주 보건소를 지나며 아주 길고 길게 늘어 선 pcr 검사자들을 보면서도 안타까워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우리는 제주에서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걸릴 리 만무했다. 어찌 보면 몇 달이나 다녔던 요가센터에서도 걸리지 않았던 것은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아니 관광객들이 그렇게 많이 오가던 카페에도 자주 갔는데 지금껏 걸리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몇 달 전 코로나가 재유행하며 지인들 99%가 걸렸을 때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도 차라리 코로나에 빨리 걸리고 지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에 다녀와 코로나에 확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 명절에 무사히 다녀왔기 때문에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코로나는 듣던 대로 무서운 녀석이었다. 제주도로 다시 돌아와 코로나의 인기척을 느꼈을 땐 이미 늦었다. 기침과 인후염을 시작으로 두통과 몸살이 나에게 찾아왔고, 코가 막히더니 이후로는 콧물이 계속 나왔다. 작년 겨울 내내 감기에 걸려있을 때 목도 아팠고, 콧물도 계속 나올 때가 있었는데 코로나는 이 모든 것이 한 번에 이뤄진다. 마치 종합감기 세트의 느낌이다.  그런데 거기까지만 하지 미각도 후각도 잃은 것은 너무했다. 현재 후각은 전혀 돌아오지 않은 상태고 미각은 달다, 짜다 등을 느낄 정도로만 미미하게 느껴진다.




코로나에 걸려 허우적거리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제주 우리 집은 우리 가족이 자가 격리하기 충분히 좋은 곳이었다는 것이다. 이곳은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외딴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달도 되지 않는 이곳에서 코로나를 견디는 것은 좀 어려웠다.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기엔 재료도 충분치 않았고 나의 체력도 회복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약을 먹어야 하는데 굶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찌어찌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하루하루 버텨갔다. 이럴 땐 누구 가까이 있었으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전히 아픈 내 몸을 이끌고 나에게서 코로나가 전된 아이와 남편의 수발을 드는 것은 조금 어려웠다. 아니 나도 아파서 좀 누워있고 싶은데 충분히 쉬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는 열이 치솟았다. 코로나에 걸리면 아이들에게 고열이 난다고 듣긴 했지만 이제 많이 컸다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열이 이렇게 많이 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자 열이 조금씩 내렸다.











현재 아이의 상태는 지극히 정상이다. 그러나 남편은 인후염을 호소하고 있고, 나의 후각은 아직 돌아오려면 멀었지만 미각은 아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 초창기엔 코로나에 걸리면 죽는지만 알았던 때도 있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그래도 서울에 다녀와서 코로나에 걸린 것이라니 여전히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서울에 가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버틸 수 있었을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언제라도 걸릴 수밖에 없었던 일.



설사 그것이 아니더라도 당분간은 아니 제주생활이 끝나는 날까지 다시 육지로 나가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역시 그것이 좋겠다. 그곳은 나에겐 여러모로(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내년에잠자코 제주에 조용히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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