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air Jan 13. 2023

엄마의 겨울방학

다시 아이의 겨울방학의 시즌이 돌아왔다. 여름방학 끝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겨울방학이라니 믿기지가 않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이의 겨울방학과 동시에 나의 겨울 방학도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무려 4박 5일이라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짧다면 짧은 그러나 나에겐 긴 그 방학 동안  혼자 여행을 다녀오면 좋겠다 싶었는데 제주에 있으니 그것은 쉽지 않았다.  



작년 여름 방학은 엄마 방학의 처음이었는데 꽤 알차게 보냈다. 계획한 거의 모든 것들을 실행에 옮겼었는데 그럼에도 아직 하지 못한 것들도 남아있다. 그중 두 가지는 밤바다에 가보는 것과 한라산 탐방이다. 여름 방학마지막 날 저녁, 맛있는 음식을 먹은 후에 밤바다를 즐기러 가고 있었는데 도로에서 갑자기 차가 멈춰서 버렸다. 그래서 바다 근처에는 가지 못하고 차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방학이 끝나버렸다. 정말 아쉬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밤바다를 보러 갈 수는 없다. 바다의 여름과 겨울은 굉장히 다르기 때문이다. 가 원한 것은 경쾌한 여름의 밤바다다.



여름 방학에 한라산 정상에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끝내 용기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겨울 방학에는 한라산 탐방을 계획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한라산 여름에도 못 갔는데 겨울에 갈 리가 없다. 아이젠도 없고 스틱도 없고 9시간 올라갈 자신이 영 없다. 이것은 제주를 떠나기 전 마지막 미션으로 남겨둘까 한다.  아마도 제주도에서 가장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하는 것이 한라산 등반인 것 같다.








새롭게 맞이하는 엄마의 겨울방학 계획도 알차게 짜야했다. 아이방학도 이렇게 알차게 짜기 쉽지 않을 텐데... 그런데 생각보다 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겨울이라 날씨가 추워서 행동반경에 제약이 생고, 또 요즘 제주 날씨는 거의 매일 흐리기까지 하니 어딜 가야 할지 딱히 마음에 들어오는 곳이 없었다. 그래도 까지 열심히 계획을 세워서 알차게 겨울방학을 보낼 수 있었다.



먼저 제주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것과 해보고 싶은 것을 생각했다.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평소에 쉽게 갈 수 없는 집과 반대편의 마을이다. 평소에는 아이와 함께 있으니 집과 유치원 그사이를 맴도는 일이 많다. 그리고 시간의 제약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조금 멀리 떠나보고 싶었다. 마치 제주여행하는 기분으로 말이다.  그리고 해보고 싶었던 것은 원데이 클래스를 듣는 것으로 정했다.




1. 제주에서 가보고 싶은 동네, 종달리에 가보기



종달리. 이름이 참 예쁘다. 작년 우도에 갔을 때 종달항을 지나왔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 주위에 들려보지 못했다. 제주에 살 때 꼭 한번 들려보고 싶었던 곳. 그런데 우리 집에서 무려 1시간이 훌쩍 넘게 차를 타고 가야 한다. 먼저 종달리를 지도로 살펴보고 가보고 싶은 빵집과 카페를 정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동선을 대충 짜고 출발했다. 구좌읍에 잠시 들려 커피를 한잔하고 더 달려서 종달리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빵집부터 찾아갔다. 아쉽게도 임시휴무로 문이 굳게 닫혀있다. 소금빵이 유명하다고 해서 먹어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그래도 휴인 것을 차라리 모르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었더라면 아마 종달리에 오는 것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종달리 동네 구경을 시작했다. 길을 걷다가 들어가 보고 싶은 책방, 소품샵, 와인샵, 공방 등을 둘러봤다. 종달리는 걷기 좋은 마을이었다. 그리고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들러 차를 한 잔 하고 돌아왔다. 제주에 살며 혼자 이렇게 멀리 운전하고 가본 적은 처음이기도 해서 정말로 제주 여행을 온 기분이 들었다. 평소와 다른 색다른 느낌이었다. 꽤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 수 있었다.




2. 원데이클래스에 참여해서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버이날에 만든 꽃바구니, 생신상에 올리려고 만들어봤던 떡케이크 등등 가볍게 참여해서 그럴듯한 결과물이 뚝딱 나오니 재밌을 수밖에. 평소에 라탄에 대해 관심이 많이 있었는데 시간대가 애매하게 맞지 않아 그동안 시도해보지 못했다.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보니 제주에도 작은 공방들이 참 많이 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과 먼 곳에 들을 수 있는 클래스가 있었는데 아이가 없을 때 멀리 가서 수업을 들어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먼 곳으로 신청해 보았다. 다행히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제품을 선택해서 만들 수 있었다.



공방을 가는 시간은 꽤 걸렸으나 만드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걸리지 않았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내 손으로 만든 컵받침과 트레이 두고두고 잘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또 힐링하는 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영차영차, 즐겁게 만들었다





3. 유동룡 미술관 다녀오기




제주에 이타미 준(유동룡) 미술관이 12월에 개관했다. 마침 제주도민에 한해 무료개방을 한다고 했는데 12월 내내 벼루다가 시간이 맞지 않아 가지 못했다. 1월부터 받는 관람료가 꽤 비싸기에 반드시 미리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12월의 마지막 날 즈음에 갔더니 미술관은 이미 도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입장하는데만 1시간 들었다. 그러나 기다린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멋진 곳이었다.




유동룡 미술관은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의 건축세계를 온전히 알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제주의 포도호텔, 방주교회, 수풍석 뮤지엄등에 그의 감각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미술관 1층에는 카페와 라이브러리가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차를 한잔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곳의 음악과 풍경, 차와 전시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4. 저녁 요가 수업 듣기



매번 낮 시간에 요가수업을 들었다. 커다란 창으로 밝은 빛이 들어오는 요가 수업도 좋지만 깜깜한 밤, 은은한 조명아래 요가수업을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늘 상상해 왔다. 그 상상을 직접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밤 6시 반 수업에 참여했다. 겨울이라 이미 깜깜해진 밤이었다. 낮에 하는 요가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하루종일 일을 끝낸 회사원들이 요가원으로 모여들었다. 종일 긴장하고 있던 몸을 이완해 주는 요가 수업. 그곳엔 오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바사나 타임엔 모든 조명꺼졌다. 깜깜해진 강의실 밖으로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요가를 배운 지 몇 달이나 지났는데 오늘은 마치 새로운 운동을 끝내고 온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숨을 고르다 잠이 들 뻔하기도 했다. 집으로 오는 길은 깜깜했다. 평소에 저녁시간에 요가를 다닐 일이 없어서 기분이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네 개의 큰 계획을 세우고 모두 실천해 보았다. 꽤나 알찬 시간이었다. 그리고  계획 이외에도 4박 5일 동안 요리하지 않기, 유튜브 넷플릭스 원 없이 보기,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있기 등을 계획했었다. 엄마가 되고부터는 1년 365일 중에 분명 300일은 요리를 하고 있으니 4박 5일 요리 파업은 정말로 좋았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 누워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원 없이 본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제대로 된 휴식시간. 이게 뭐라고 이렇게 좋았었는지 모르겠다.







이불 밖은 위험해, 엄마의 겨울방학






나를 위한 시간이 4박 5일이나 생겼었다.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작고 소중한 겨울방학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원래 기다렸던 일들은 금세 끝나버리지 않나.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한 겨울방학이지만 굉장히 알차게 보냈고, 정말로 신났었다는 사실이다. 방학은 애들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어른이 더 좋아한다는 사실!  어쩌면 어른에게 생긴 방학이 더 기쁜 것일 수도...  해를 거듭할수록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벌써부터 내년 여름방학이 기다려진다. 빨리 오렴 방학아~~~







>> 지난 글 엄마의 여름방학



https://brunch.co.kr/@169bee7fa0dc42e/217

매거진의 이전글 이별은 언제나 쉽지 않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