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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an 16. 2023

부모와 정반대의 육아

        

아이와 치과를 다녀왔다. 그동안 아주 살짝 흔들리던 앞니가 어제 친구와 부딪히는 바람에 곧 빠져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흔들거린다. 서둘러 이를 빼야 할 것 같아서 다녀왔다. 일단 치과에 가서 앞니를 뺐다. 많이 흔들리고 있어서 빼는데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아이가 휑한 앞니로 웃을 때마다 (못생겨서) 조금 웃음이 났다.



문제는 치아 검진에 있었다. 아래쪽에서 새로운 이가 나고 있었다. 기존 이가  빠지지도 않았는데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심지어 흔들리지도 않는다. 이가 나오면 바로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코! 게다가 양쪽 어금니가 양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충치균이 보인다고 했다. 오 마이갓!



아이는 억울해했다. 내가 얼마나 양치를 열심히 했는데! 하면서 말이다. 정말이지 아이가 그동안 양치를 덜한 것은 아니다. 단지 코로나 상황에서 유치원에서 점심을 먹고, 간식을 먹은 후 공용공간에서 양치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아무래도 충치라는 복병을 얻은 것 같다. 코로나에 걸리거나 충치에 괴롭힘을 당하거나... 어쩔 수 없는 숙명인 것 같다.



아무튼 집에 돌아와서는 새로 나오는 치아와 충치 때문에 마음이 복잡했다. 내 속도 모르는 남편은 아이가 앞니가 빠진 것에만 집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과 다르게 앞니 정중앙의 것이 빠지니 입을 벌리면 티가 많이 나고 심지어 이미지가 바뀌어 마치 다른 아이 같았다. 아이의 빠진 이를 보다가 갑자기 본인 어릴 적에 이를 어떻게 뺐냐면...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아이 아빠가 어릴 때는 이에 실을 달고 문에 걸어두고 문을 당 이가 뺐다고 했다. 예전에 그랬다는 얘길 들어보긴 했는데 직접 경험해 본 적은 없었다(몇 살 차이 안나는 부부) 내 경우에는 이가 많이 흔들리면, 흔들다가 이가 빠지려고 하기 직전 엄마가 실을 감아 뽑아준 기억이 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이유는 그 과정조차 정말 무섭기 때문이다. 그러나 흔들거리는 이를 뺐을 때의 시원함은 여전히 기억난다. 그러나 이에 실을 달고 문에 걸어둔 기억은 분명히 없었다.



"정말? 어릴 때 이를 그렇게 뽑았다고? 말도 안 돼."



남편이 이야기한 바로는 흔들리는 이에 실을 감아 문에 연결해 놓는다. 그리고는 문을 열어 이를 뺐다고 했다. 다시 듣다 보니 조금 소름이 끼친다.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받을 정신적 충격이 있지는 않을까? 혹여나 그 당시에는 흔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지금 시대에도 같은 행동을 한다면 약간 이상한 부모 취급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 요즘 부모라면 당연히 치과에 가는 것을 선택할 것이니까.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까지는 오빠랑 정말 많이 싸워서 종종 아니 자주 둘이 혼나 손을 들고 서 있던 적이 많았다. 그리고 엄마가 정말 화가 많이 났을 때는 우리를 문 밖으로 내보내셨다. 남매는 맨발로 문 앞에 서있었다. 그때 아파트에 살았어서 계단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었지만  '진짜 엄마 너무하다' 생각하고 창피하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가 진짜 화가 많이 나셨구나 싶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는 아이에게 집 밖으로 내쫓는 벌을 주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아마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수도..



하긴 예전에는 학교도 혼자 다녔다. 학원도 당연히 혼자다. 그때의 나는 동네의 학원을 다녔는데 시간 맞춰 학원을 가고 다시 돌아오고를 반복했다. 핸드폰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핸드폰이 있다고 한다. 핸드폰에 사로잡혀있는 것은 싫지만 그래도 언제든 연락이 가능한 것은 안심이 될 것 같다.



게다가 하교 후에 집에 돌아왔을 때 깜박하고 열쇠를 가져가지 않아 집에 못 들어가던 날이 왕왕 있었다. 열쇠가 없어서 놀이터에 앉아 연락도 되지 않는 부모님을 기다리던 날들이 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 끝에 집에 들오시던 엄마를 만났을 때의 반가움과 화남이란! 지금이야 핸드폰으로 연락도 금방 되고 전자터치 도어록이니 기다릴 일이 없어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유독 나의 부모님께서 자식을 자유롭게 키우셨던 걸까? 물론 그때도 과잉보호하며 키워지던 친구들이 있었을 테지만 내 주위엔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자유로운 모습아래 방관이 당연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이처럼 세월이 흘러 시대는 바뀌었고, 육아의 형태도 당연히 바뀌었다. 우리 부모님 때와 우리들의 육아는  분명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나니 이런저런 도움을 받아 감사했지만 조부모님의 육아 조언이 과하던 때가 있었다. 아이는 따뜻하게 키워야 한다며 계절과 관계없이 기침이 아닌 재채기에도 깜짝 놀라 아이에게 조끼, 양말, 모자까지 여러 겹 입혀놓아 보기에도 숨 막히던 아이를 바라보며 답답해했던 적이 있다. 집에 보일러 온도도 엄청 높여 놓았던 것은 당연하다. 혹은 우리 아이가 워낙 입이 짧아서, 그러나 애들은 많이 먹어야 다며 아이를 만나기 시작한 순간부터 집에 돌아갈 때까지 아이 입에 욱여넣는 상황이 발생한 적도 많았다. 게다가 모유를 먹이고 있는 며느리 옆에서 분유를 먹이는 게 더 영양학적으로 좋지 않겠냐며, 분유를 권유하며 모유수유의 노력을 몰라줘서 속상할 때도 있었다. 겨우 몇 가지 예를 적어봤지만 어쩔 땐 현시대와 조금 동떨어진 육아방식에 깜짝 놀라기도 했고 때로는 지금보다 되려 진보적인 육아에 의아해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조부모님도 그 시절과 달라진 육아에 놀라고 꽤나 당황하고 놀라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  




시대는 변했고, 육아도 변했다. 그러나 그때 했던 육아가 틀리고 지금 했던 육아가 맞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저 다른 육아방식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 자식에 대한 사랑은 끔찍했다는 사실 일 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아이. 부모의 육아도 나의 육아도 그것 만큼은 꼭 같았으리라.


 




메인사진 : https://pin.it/2 EaoxWt

본문사진 : https://www.pinterest.co.kr/pin/524036106625679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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