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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Feb 23. 2023

또 다른 기회비용

 그렇게 우리 집에 티비가 생겼다.

얼마 전 생일이 지나갔다. 생일을 잊을 리 없지만 가족들보다 친구들보다도 먼저 발 빠르게 생일을 축하해 주는 알람이 있었다. 생일이 다가오는 설렘을 알려주려고 이렇게나 미리 노력해 주다니 고맙기까지 했다. 일주일, 빠르면 이 주일 전부터 속속들이 도착하는 쇼핑몰의 문자가 그것이다. 그 문자에는 생일쿠폰을 함께 몇 프로 할인 혹은 통 크게 몇만 원 할인, 적립금 등을 안내한다.



때론 그냥 지나쳐버리기도 하지만 시간이 많았던 어느 날 오후, 쇼핑 사이트에 접속해서 하나씩 살펴보기로 한다. 뭘 살까, 뭐가 좋을까. 생일주간은 역시 물욕 지수가 솟아오른다. 그즈음 남편도 줄기차게 생일선물 뭐 갖고 싶냐고 물어봤다. 서프라이즈? 그런 것은 역시 맞지 않는다. 선물은 자고로 내게 필요한 것을 받는 것이 최고다. 역시 생일이니까 선물을 하나 골라야겠지. 룰루랄라~ 여전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미니멀 리스트로 살아가긴 아직도 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올해 생일은 명절과 겹쳤다. 명절을 보낼 겸 혹은 생일도 잘 보내볼겸 서울에 갈까 말까를 고민했다. 그러나 지난번 다녀온 직후 코로나에 걸려 호되게 고생했던 것이 생각나 서울에 가고 싶지 않았다. 대신 서울에 갔으면 쇼핑도 하고, 호텔이나 레스토랑에도 가고, 선물도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가지 않았으니, 그 모든 것을 이용하지 않았을 때의 비용이 세이브가 되었다. 글쎄 그 비용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50~100은 되지 않을까? 요새는 서울 제주 구간 비행기 값도 꽤 비싸져서 아마 충분히 되지 않았을까 싶다.



과연 이렇게 세이브한 것을 기회비용이라고 불러도 될까? 나에게 생긴 기회비용과 생일선물. 그러나 꼭 무엇인가 사지 않아도 되기는 하는데... 어떻게 하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 돈으로 스마트 TV를 사기로 했다. 몇 달 전에 집에 티비가 없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정말로 그 이후로도 계속 티비를 집에 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다.


 


>>지난번 쓴 글 '요즘 다들 집에 TV 없잖아요'


https://brunch.co.kr/@169bee7fa0dc42e/143




지난번 쓴 글을 다시 읽고 와서도 TV를 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생각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구매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일이라 선물을 받으려고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진짜 오랫동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동안 우리에게 TV는 없었지만 작은 갤럭시탭이 하나 있었다. 원래는 남편이 일할 때 쓰려고 산 것인데 나랑 아이가 주로 그것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면서 우리 것이 되었다. 그런데 그 갤럭시탭이 핸드폰보다는 훨씬 큰 사이즈이기는 하지만 언젠가부터 점점 화면 보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잠깐 영상을 볼 경우에는 왔다 갔다 편리하게 이용하곤 했는데 드라마나 영화라도(한두 시간 내외) 마음먹고 볼라치면 작은 화면에 집중하느라 몸이 수그러지는 것이 문제였다.



어느 날 밤 남편이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나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TV를 사야 할 것 같아, 안 그랬다간 몸이 구부러져서 금방 할머니가 되겠어. 요가를 하면 뭐 해 아침에 몸을 피고 와서 저녁 되면 몸이 저렇게 동그랗게 말리는 것을!" 하안타까워했다.



평소 나의 좋지 않은 자세도 문제였겠지만 그보다 작은 화면에 집중하려고 점점 수그러드는 몸이 더욱 문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재밌고, 유명한 드라마가 나올 때면 밤마다 한편씩 보는 즐거움으로 사는데, 매번 그렇게 화면을 열심히 보고 있다 보면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이 점점 화면 앞으로 다가가 마치 등이 구부러진 노인처럼 보였다. 문제는 이처럼 틀어진 자세로 인하여 관절에 부하가 걸리며 디스크나 협착증, 퇴행성관절염등 여러 통증질환 등이 유발될 수 있다고 하니 점점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면 드라마를 안 보면 되잖아? 유튜브를 끊지 그래? 하겠지만... 나는 인간이다.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인간이지 세상의 모든 영상을 끊고 사는 것은 지금 시대에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잠깐이나마 유튜브를 시작해 볼까 꿈꿨던 적도 있었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반대로 사지 않은 이유는 TV가 집에 있는 것을 원치 않아서다. TV를 정말 좋아하는 우리 가족이 그것을 사게 된다면 매일매일, 하루종일 그것만 볼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두려웠다.



모든 이유를 들어서라도 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난번 아이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이 스마트TV를 발견했다. 왔다 갔다 움직이기도 하고, 사이즈도 티비처럼 거대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의 내가 사용하는 것들 위주로 사용할 수도 있다. 특히 부모님들과 영상통화도 자주 하는 우리는 핸드폰 화면을 TV에 연결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길래 혹했다. 심지어 디자인조차 너무 내 스타일이었다.



만약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사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직접 사용해 보니 더 탐나는 것이 사실이었다. 얼마나 탐이났는지 그렇게 1년 정도를 고민했다. 솔직히 작년 생일선물로도 거론되었던 것인데 작년엔 선물조차 받지 않았다! 어쨌든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물건을 살 때마다 신중한데, 특히 티비처럼 커다란 물건을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은 정말 오래 하게 된다.



정말 사도 될까. 잘 쓸 수 있을까? 과연 진짜로 사도 괜찮을까 하는 고민이 끊이질 않는다. 일 년을 고민했으니 이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정말 사고 싶고 꼭 필요한 물건을 사서 잘 관리하며 오래 쓰기 위해 선택했다.



그렇게 우리 집 티비가 생겼다.





바로 이 녀석 !










스마트TV를 집에 들인 지 한 달 정도가 되었다. 우리 집에 티비가 생기면 과연 어떻게 되는 걸까 걱정했다. 처음엔 아이가 정말로 TV속에 빨려 들어갈 뻔했다. 집에 오면 그 커다란 것이 집을 지키고 있으니 계속 보고 또 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다행이도 시간이 지날수록 TV는 집안의 일부 가구처럼 치부되고 있다. 어차피 있어도 자기 맘대로 사용할 수 없는 전자기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TV이긴 하나 방송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커다란 스마트 기기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원래 핸드폰이나 아이패드에서 사용하던 방법대로 이용하고 있다. 재밌게도 이 티비에는 운동하는 앱도 있어서 밤마다 조금씩 따라 해보기도 했다. 잠자기 전에 열심히 움직여주고 나면 잠이 푹 잘 온다. 이런 기능도 잘 사용하고 있어 뿌듯하다.



실은 나는 값비싼 스피커에 대한 로망이 조금 있었는데, 이 것을 사면서 그 로망이 사라졌다. 티비의 기능뿐만 아니라 스피커로써도 훌륭했다. 일상생활에 음악을 듣는 정도가 더 많아졌다. 분위기 있는 화면과 함께  나오는 음악은 훨씬 더 듣기 좋았다.  



그리고 밤마다 드라마를 보는 것이 조금 더 즐거워졌다. 하루의 일상을 마무리하며 보는 드라마는 정말 꿀 같다. 종일 볼 것만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내 등은 펴졌다. 더 이상 작은 화면에 집중하느라 몸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참 다행이었다.  








TV가 생기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앞에만 앉아서 시간을 버리는 삶만을 상상했다. 그러나 일상은 똑같이 흘러간다. 평소에 책을 하루 한 권씩은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영상도 한두 편 정도 보고 있다. 책과 영상을 동시에 취급하며 세상 사는 재미를 골고루 느끼고 있다.



정답은 없다. 나에게 필요한 물건을 정확히 알고, 바르게만 사용한다면 해할 것은 하나도 없다.








*사진 : LG전자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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