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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Feb 04. 2023

조금만 더 쓰고 버리면 안 될까?


주택에 사는 장점은 언제든 시간과 상관없이 빨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좋은 점은 야외에 세탁물을 널어 건조할 수 있다. 그래서 해가 뜬 화창한 날에 이불 빨래하는 것을 좋아한다.  건조기를 사용하지 않도 날씨가 좋으면 금방 바삭하게 말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세탁기에는 이불이 들어갈 정도로 여유 있어서 세탁을 자주 하곤 했는데, 이 집에 설치된 세탁기 용량이 적어 매번  세탁을 해 후에 넣어야 해서 고민이 조금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불 빨래를 위해 매번 이불을 들고 세탁소에 가는 것도 귀찮다. 그래서 요새는 한 달에 한번 정도만 이불을 세탁한다. 깔고 자는 이불패드는 이불보다 얇으니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세탁할 수 있다. 베개 커버는 일주일에 한 번 세탁하어느 정도 잠자는 공간의 청결함이 잘 유지되는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불은 결혼할 때 백화점에서 단숨에 구매했던 이불 세트이다. 결혼 전에는 이불을 전혀 내 취향과 관계없이 집에 있는 이불만을 사용해서 그랬는지, 결혼할 때는 꼭 내가 원하 이불을 살 거야 하는 목표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쭈욱 사용했던 엄마가 맞춰베이지색 이불, 패드, 베개커버의 컬러를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지금은 온전히 이해함). 오랫동안 사용한 단순한 이불 컬러에 실증이 제대로 난 탓이었는지  결혼 당시 내 눈에 예뻐 보였던 것은 굉장히 현란한 이불이었다. 지금은 공짜로 줘도 집에 들고 올 것 같지 않던 화려한 이불을 그때는 거금을 주고 다. 10년 정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좀처럼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화려한 디자인이다. 그 이불 여전히 건재하게 우리 집에 있다.




아무튼 그 이불을 꽤 비싸게 구매했다분명한 이유로 오랫동안 사용 중이다.  참고로 그때 샀던 이불세트는 한국에서 신혼 한 달 동안 사용했다. 그 후로 잘 보관해 놓고(묵혀놓고) 미국으로 떠나 4년 만인가 돌아왔그 이후로 6년 사용할 수 있었다. 그 6년간 화려한 디자인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고급 이불이라 촉감이 다르긴 했다. 세탁하면 할수록 더욱 부드러워졌다. 그래서 사용하면 할수록 더욱 내 몸에 착 감겼다. 마치 아이의 애착이불처럼. 거기에 겨울이 되면 구스이불을 추가해 넣는다. 그러면 정말 폭신하다. 겨울에 그 이불을 덮고 자면 내 몸을 지그시 눌러주 잠이  잘 온다. 게다가 얼마나 따뜻한지 모른다.



그러나 자주 사용하고 세탁한 탓에 이미 베갯잇낡아버려 다른 디자인으로 교체해 버린 지 오래되었다. 이제는 그 이불도, 패드도 사용한 지  오래되어 분명 비쌌게 샀지만 이 정도 사용한 거로 이미 뽕 뽑은 느낌이다. 그래도 이불이 디자인 빼고는 촉감이 정말 좋아서 상태만 유지된다면 영원히 사용하고 싶은데, 문제는 언제고 찢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원단이 얇아졌다. 왠지 정말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오면 안타까울 것 같다.



그 이불 세트 외에도 이불과 패드가 더 있다. 두 개의 이불은 양쪽 집에서 남는 것이 있어 들고 왔고 패드는 두 개를 샀다. 지금 문제는 4년 전에 샀던 이불 패드이다. 면 100%인데 행사제품이라 저렴하게 구입했었다. 그것 또한 빨면 빨수록 부드러워지는 촉감 좋은 그런 이불패드였다. 이렇게 오래 사용하다 보면 마치 우리와 함께 태어난 듯한 기분이 들고는 한다. 그런데 이번에 패드를 세탁하고 다시 침대에 까는데 이불패드에 뭐가 묻은 것처럼 보여서 가까이 갔더니! 한 부분이 찢어져있었다. '이불이 이렇게 찢어지기도 하다니 쓸 만큼 썼구' 그 후에 한번 더 세탁했더니 패드 군데군데 찢어지고 있는 부분이 많아졌다. 이제 보내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불 패드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 가는구나 생각했다. 집을 세 곳이나 지나도록 잘 지내주었던 이불 패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 이불이 찢어지도록 열심히 세탁하고 사용해온 내가 대견다.





이불패드가 오래되면 이렇게 되는구나...











우리 집에결혼생활 10년을 거쳐가며 꽤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그중에 이 집을 기점으로 정리하거나 해야 할 것들도 꽤 있다. 이불 패드가 시간이 지나 찢어져서 사용하지 못하는 날이 오듯, 물건이 오래되면 본래 기능을 잃게 되거나 혹은 망가져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집에 있는 몇 가지 물건은 완전히 고장 나지는 않았지만 조금 망가졌거나 혹은 사용한 기간이 오래되어 바꿀 때가 되었다거나, 위태위태한 것들이 있다. 그러나 제주 떠나기 전까지 조금만 더 버텨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에어프라이기는 5년 전에 구입했는데 정말 잘 사용하고 있다. 우리 집 1위 전자제품인 건조기만큼 잘 쓰고 있다. 냉동식품을 방금 갓 만든 것처럼 데울 때도 좋고 치킨, 삼겹살, 생선도 냄새 없이 구울 수 있는 데다가 뭐든 넣고 구우면 맛있어서 애용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 그릇을 바닥에 떨어뜨려서 닫아지는 부분에 틈이 생겨버렸다. 지금은 다행히 어찌어찌 작동은 하기 때문에 그냥 사용하고 있지만 틈이 생긴 부분으로 열이 빠져나오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이번에 정리하고 가야 할 것 같다.



내열 유리로 된 전기 포트는 4년 전에 산 것인데 이것도 정말 정말 잘 쓰고 있다. 나는 전기포트를 하루 종일 사용하는 것 같다. 집에 있을 때는 거의 종일 따뜻한 물을 마시는 데다가, 차나 커피를 마시려고 또는 요리하기 전에 뜨거운 물로 데칠 것이 있으면 물을 전기포트로 데워 사용하기 때문에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그동안 열심히 사용했더니 어느 날 뚜껑 부분 손잡이가 부서져버렸다. 다행히도 주전자 손잡이는 아직 멀쩡해서 사용할 수는 있으나 물을 부을 때 뚜껑이 저절로 열리거나 떨어지고, 게다가 뜨겁고 불편해서 아마 이 집을 기점으로 보내줘야 할 것 같다.



내가 가진 것 중에 제일 오래된 전자제품은 14년 정도 전에 친구가 선물로 준 전자레인지이다. 이렇게 오래 소유하고 있었는지 몰랐는데 지나간 세월에 조금 놀랐다. 미니멀 리스트 중에는 전자레인지를 안 쓰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는 보통 하루에 한두 번은 꼭 사용하는 것 같다. 전자레인지를 14년이나 사용해도 되는 걸까? 하고 검색해 보니 전자레인지에는 마그네트론이라는 주요 부품이 있는데 이것의 수명이 10년이라고 한다. 마그네트론은 마이크로파를 방출해 식품을 데워주는 부품인데 이것이 고장 나면 전자레인지는 더 이상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14년 중에 잠시 사용하지 않은 시간을 빼면 10년은 사용했으니 이것도 이사 갈 때 가져가야 할지 말지 고민 중이다.



그리고 결혼했을 때 마련한 청소기이다. 결혼하고 4년 정도 사용하고 중간에 4년 정도를 사용하지 않다가 다시 2년 정도 사용했으니 6년 정도 썼다. 중간에 로봇청소기를 선물 받아 사용하게 되며 잠시 잊힐뻔했으나 지금 이 주택에 와서 톡톡히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런데 청소기는 오래되면 흡입력이 약해지는 것 같다. 이 청소기의 크기랑 소리는 거의 역대급인데 그에 비하면 흡입력이 정말 아쉽다. 이 청소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외에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로봇청소기, 에어컨 등은 거의 새것과도 다름없기 때문에 당연히 이사도 함께할 것 같고, 조금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작동이 잘되는 토스터기와 커피머신도 당연히 들고 갈 듯하다.








요즘 세상은 물건이라는 것이 넘쳐나기 때문에 낡거나 고장 나서 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저 새로 사고 싶으니까, 뭔가 신박해 보이는 물건이 등장했으니까, 요즘 유행하는 것이거나, 또는 예쁜 디자인이거나 충동적으로 등등의 이유로 새로 사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가지고 있는 물건을 굉장히 알차게 사용하고 있다. 얼마 전 이불 패드가 찢어질 때까지 쓴 것을 보면서 '조금 지독하게 알뜰한가?' 싶은 생각이 조금 들기도 했지만 그보다 물건을 끝까지 잘 사용했다는 뿌듯함이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나에게 와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될 것 같으면 절대 욕심부리지 않고, 필요한 물건도 오랫동안 충분히 고민한 후 소유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내가 가진 물건들의 수명이 제대로 다한 후에 버리는 현 상황은 꽤 만족스럽다. 그래서 지금이 좋다. 질 좋은 물건을 사서 잘 관리하며 오래도록 사용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지향하는 미니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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