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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Feb 07. 2023

아픔이 준 교훈

내가 걷는 것을 좋아했던가? 아닌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편한 신발을 신은 날에는 많이 걷고 싶다는 것이고, 불편한 신발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불편한 신발을 신고 오랫동안 걷다가 이 사달이 났다.



현재 발목이 다쳐서 며칠째 집에서 요양 중이다. 왜 갑자기 발목이 다쳤을까...? 처음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 명절 내내 집에 있었더니 답답해서 그다음 날 밖에 나갔을 때 산책을 조금 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걸었던 것 같다. 하루 500 보도 걷지 않은 채 집에만 있다가 갑자기 5000보 이상 거의 만보가까이 걸었다. 처음엔 발이 그냥 조금 불편한 정도였다. 되려 더 많이 걸으면 괜찮아질 거야 생각하면서 다음 날 또다시 걸었다. 그리고 그 불편한 발을 가지고 요가 수업까지 참여했다. 그렇게 내 발목은 내가 신경 쓰지 않사이에 어느새 퉁퉁 부어 있었다.



어쩐지 요가를 하는데 발이 조금 불편했다. 그래도 난 젊으니까 금방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다. 매일같이 커다란 어그를 신고 다니다가 주말에 행사가 있어 앵클부츠를 신었는데 한쪽 발만 꽉 끼는 게 조금 더 이상하긴 했다. 그렇게 불편하게 된 지 일주일, 결국 이 지경이 되고 말았다.






삐뽀삐뽀 발목부상





발목이 다친 것은 갑자기 많이 걸었던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불편한 신발을 신고 걸어서의 이유가 훨씬 크게 작용했다. 범인은 어그부츠다. 무려 몇 년 전에 샀던 어그 부츠를, 무려 친정에 몇 년이나 보관만 되어있던 그것을 끝까지 알뜰하게 신고 버려보겠다고 택배 배송을 받았다. 당연 배송비는 어그의 무게만큼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가진 어그는 요즘 유행하는 숏 어그도 아니고 무려 종아리까지 오는 긴 어그다. 왠지 서울에서 다시 꺼내어 신을 순 없었고(그곳은 왠지 유행의 메카니까) 지금 잠깐 어그가 유행할 때 제주에서는 마음 편히 신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내가 가진 물건을 끝까지 책임지고 잘 사용하는 것이 이 어그를 다시 신은 것의 핵심이었다.




주의 겨울은 추웠다. 그래서 집에서도 밖에서도 발이 늘 차가웠다. 양말을 신고 또 신어도 그 한기가 가시질 않았다. 그런데 마법처럼 어그를 신으니 발이 따뜻해졌다. 아무리 따뜻한 옷을 입고 외출해도 발이 시렸는데 어그를 신고 난 후에는 어떤 옷을 입어도 밖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래 어그를 매일 같이 신었다. 겨우내 열심히 신었다. '한번 신으면 절대 벗을 수 없는 마법의 빨간 두구' 로구나 하면서 어그는 나의 가장 애정하는 겨울 아이템이 되어있었다. '겨울에 이만한 것이 없지' 역시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추울 때는 패션이고 뭐고 따뜻해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입은 옷에 어울리든 말든 무조건 그 마무리는 어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발목이 다칠 줄이야. 주말 저녁 발목이 너무 불편한 나머지 절뚝이기도 했다. 그러다 자세히 봤는데 이미 발목은 퉁퉁 부어있었다. 그동안 어그를 신을 때면 종종 발목이 접히곤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래서 그랬을까? 게다가 좀 오래 걸을 때면 발이 어그를 업고 걷는 기분이긴 했다. 목이 기다란 내 어그가 무거운 탓이리라...





어그는 어그인데 다같은 어그가 아니다!






수년 전 내가 어그를 샀을 때는 긴 목, 중간 목의 어그가 유행이었다. 그러다 유행은 지나가버렸고 다시 시간은 흘러 다시 짧은 목의 어그, 혹은 슬리퍼 어그로 유행이 돌아왔다. 그놈의 유행!! 그런데 또 이번에 어그의 유행이 지나가 버리내가 가진 어그 신발을 또 몇 년 못 신게 되리라 생각이 들었다. 지난 경험상 오래된 신발은 신발이 삭기 때문에 결국 못 신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몇 년이나 보관만 하던 어그 멀쩡했다. 그냥 버리기아까워 더욱 어그를 열심히 신었던 건데 이렇게 돼버리니 정말 아쉽게 되었다.








유행은 돌고 돈다. 그러나 유행은 미묘하게 변해서 돌아오곤 한다. 당연하게 내가 가진 것들도 다시 유행을 탈것이다. 그리고 또 달라진 유행에 또 맞춰서 새롭게 구매하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유행탄 물건은 아무래도 손이 가지 않게 된다. 어그도 그렇게 잊히고 묵혀있던 물건이었다. 우연히 다시 유행이 돌아오긴 했지만 그때의 유행과 지금의 유행은 전혀 다르다. 그때는 이 긴 어그가 유행이었고 이번엔 짧은 어그로 분명 다른 까닭이다. 내가 유행을 다시 좇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발을 신으려던 나의 행동은 바람직했다. 물론 여기에 발목부상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차라리 유행을 생각하지 않고 나만의 멋이 있더라면 좋았겠다. 그 멋에는 따뜻한 신발을 신고 싶다는 실용적인 면이 더 앞섰더라면 완벽했겠다. 앞으로 내가 가진 물건이 유행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나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해, 매번 달라지는 유행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은 것, 필요한 것, 실용적인 것, 오래 쓸만한 것을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긴 목의 부츠는 분명 따뜻했다. 발밑의 털은 굉장히 폭신했고, 덕분에 내 발과 종아리는 늘 따뜻했다. 그러나 유행과 상관없이 발이 불편한 신발은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엔 없다. 분명 발이 불편하다 못해 파괴되곤 했던 하이힐을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는 것으로 끝났다 생각했는데, 어그부츠까지 못 신게 되다니! 앞으로도 내 인생에 예쁘지만 불편한 쓰레기 물건이 몇 개나 더 제거되려나 궁금하다.




아무튼 발목부상을 겪으며 다시 며칠째 집에 있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은 최대한 발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외출을 참고 있다. 언제까지 집에 있어야 할까? 발에 무리가 될까 봐 요가도 잠깐 쉬기로 했다. 이번 기회로 분명한 교훈을 얻었으니 유행과 실용적인 물건 사이에 갈팡질팡 하지 말고 앞으로는 잘 선택하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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