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air Mar 13. 2023

나는 어쩌다 이것을 모으게 되었나.

  Tin


이번에 남편이 홍콩에 다녀오게 되었다. 홍콩에 간다길래 생각난 것은 그곳의 유명한 '제니 베이커리 쿠키'였다. 나는 얼마 전부터, 아니 꽤 오래전부터 쿠키에 빠져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버터 풍미 가득한 홍콩 쿠키가 먹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쿠키를 주문하려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었다. 홍콩에서 한국으로 오는 배송비 그리고 제주까지 오는 배송비 추가로 들게 되니 쉽사리 주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쿠키 맛이 비슷하지 애써 위안하며 다른 쿠키를 먹고 있었는데 남편이 홍콩에 간다니! 다른 것은 필요 없으니 제니 베이커리 쿠키 한 상자만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홍콩에서 파는 이 쿠키 상자 특징은 철제로 되어있다. 중요한 것은 디자인이 해마다, 때마다 바뀐다는 것이다. 메인 주인공이 곰인 것은 바뀌지 않는데 배경이나, 옷, 스타일등이 매번 다르게 디자인된다. 그래서 예쁘고, 탐이 난다. 특히 철제로 되어 있어 보관함으로 사용하기에도 꽤 튼튼하다.



수년 전 최초로 선물 받은 쿠키 틴은 선생님 곰 그림이었다. 안경을 쓰고 있는 곰 뒤로 칠판이 그려진 디자인이었는데, 그림이 귀엽고 상자는 튼튼했다. 마침 아이 머리핀이 늘어나던 시기였으므로 그것을 머리핀을 담는 상자로 썼다. 수년동안을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잘 사용하고 있다.




이번에 홍콩에서 온 쿠키 상자  




이번에 남편은 쿠키를 세 상자나 사 왔다. 우리 집 한 개, 선물용으로 한 개를 사 와 달라고 부탁했는데 한 개를 더 추가로 사 온 것이다. 그중에 두 개는 내 것이니까 선물용과 내 것을 구분지어야 했다. 솔직히 그것 중 두 개를 어떻게 선택했냐면 쿠키 틴의 디자인으로 골랐다. 내부에 들어있는 쿠키 이야 먹어봐야 아는 것이고, 일단 쿠키 틴의 디자인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이쯤 되면 홍콩에서 온 쿠키가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쿠키 틴이 갖고 싶은 거라고 해야 맞겠다.



 





갑자기 언제부터 쿠키틴을 모으기 시작했을까. 최초의 쿠키 틴은 5년 전 홍콩에 다녀온 동생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사실 작년 이전에는 쿠키를 그렇게 좋아한 적이 없어서 살 일도, 모을 일도 없었다.



그러나 어느 해 스타벅스에서 나온 쿠키가 들어있던 빨간 통, 흰 땡땡이가 그려져 있던 틴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스타벅스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어 쿠키가 들어있는 케이스를 판매했는데 진저브래드 모양 쿠키와 케이스 둘 다 마음에 쏙 들었다. 뒤늦게 알게 되어 근처에는 재고가 없서 자전거로 30분 거리에 있는 곳에서 구매했던 것이다. 쿠키도 맛있었고 쿠키틴도 꽤 마음에 들었던 터라 아이장난감을 넣었다 뺐다 하며 몇 년을 잘 사용했다.





스타벅스 쿠키틴




그렇게 개의 쿠키틴을 사용하게 되며,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가끔 나는 왜 이상한 것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특히 본격적으로 집에 쿠키 틴이 모이게 된 것은 작년부터 올해까지 최근의 일이다. 작년은 남편이 제주에서 서울 다녀올 일이 꽤 많았는데 그때마다 쿠키를 사 왔다. 내가 쿠키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쿠키는 먹으면 없어지는 것이니까 그렇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쿠키를 모두 먹고 난 후 남은 틴 여러 개 생겼다. 쿠키가 들어있던 동그랗고, 네모난 꽃무늬의 틴은 생각보다 예뻤다.




틴이 몇 개 되지 않았을 때는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한 개는 나의 바느질 상자로 쓰였고, 또 다른 것은 아이의 장난감 보관함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두 개 생기고 더 생기면서부터 집착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쿠키를 사 오는 것부터, 무조건 틴에 담겨있을 것이라는 조건이 생겼다. 틴은 있으면 분명 유용하게 사용한다. 그러나 진짜로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올해 내 생일, 서울에 간 남편은 쿠키를 사 왔는데 그 틴은 그동안 사 왔던 쿠키상자 중에 가장 컸다. 쿠키는 다양했고 정말 맛있었다. 그러나 상자가 네모, 동그라미가 아니라 하트모양이라 무엇을 보관하기가 애매했다. 결국 그 가장 커다란 상자는 남편이 가져가서 컴퓨터 을 넣어놓았는데 굳이 필요하지 않아 보였다. 이제 보니 더 이상 쿠키틴에 담을 것이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왜 내가 갑자기 틴을 모았지?"






이쯤되면 쿠키를 산건지, 쿠키 틴을 산건지?

'







이제 보니 집에 틴의 개수가 꽤 많아졌다. 개수로는 10개 정도이다. 어쩌다 보니 빨간색, 초록색, 보라색, 주황색, 빨간색 땡땡이, 분홍색, 파란색. 컬러별로 다 생겼다. 분명 돈을 주고 산 것은 아니지만, 쿠키를 김에 받은 것이긴 하지만 집안 곳곳 여기저기 놓여있는 틴을 보니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유용하게, 잘 쓸 것 같았던 쿠키 틴은 개수가 많아지니 결국 집안 곳곳 놓여있는 쓰레기가 돼버린 느낌이다. 여전히 마음을 먹고 사용하면 잘 사용할 수도 있지만 굳이 그 속에 넣어 보관할 것이 없으니 더 이상은 틴을 모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남편에게 말했다."이제 쿠키도 끊고 틴도 그만 사들여야겠어, 가진 것 너무 많아" 그러자 남편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는 분명 내가 쿠키에 아니 쿠키 틴에 집착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태 내색하지 않았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쿠키를 먹을 만큼 먹었고, 이제 틴도 가질 만큼 가졌구나' 하는 것 같았다.







살다 살다 쿠키에 집착하고, 쿠키 에 집착하게 될 줄은 몰랐다. 분명한 것은 미니멀 리스트로 살기 위해선 한 가지에 집착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쿠키를 사면서 함께 딸려오던 쿠키 . 분명 돈 주고 사는 것은 아니었고 그곳에 물건을 넣고 잘 사용했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 나의 큰 착각이었다.



지금껏 모은 틴은 앞으로도 사용할 것이다. 물론 홍콩에서 온 쿠키꿀맛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무엇인가에 지나치거나 집착하지 말아야겠다. 과하면 독이 된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풀난 옷을 바라보고 있자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