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동생이 제주에 놀러 왔다. 그러니까 아이에게는 가장 가깝고 친한 이모가 제주에 오는 것이다. 아이에게 이모가 오는 날을 말해줬더니 날마다 이모가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에 온 이후로는 이모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게 거의 2년이 가까이 되었다.
나와 나이가 같지만(내가 생일이 빨라서 언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이모는 서울에 있을 때는 집에 자주 놀러 왔다.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꼭 집으로 놀러 와서 아이와 놀아주었다. 사실 아이 때문에만 왔던 것은 아니고 나는 혼자 살고 있는 동생에게 집밥도 먹여주고 싶고, 이야기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종종 부르긴 했다.
암튼 매달 만나던 이모를 2년 가까이 보지 못했으니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이모는 아이의 장난감을 바리바리 들고 와서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 가졌다. 그리고 나도 오랜만에 보는 동생과 제주도를 여행하며 함께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짧은 여행이 끝나고 벌써 이모가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다. 이모는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였다. 이미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이모는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다. "인사는 했어?" 하고 동생에게 물어봤더니 "응 어제 간다고 했지" 아침에 일어난 아이에게 이모가 갔다고 하니 별 반응이 없다. 아이가 이모가 갔다고 울고불고하면 그것도 당황스러운데 이것도 조금 그렇다.
이모는 집에 가고 밤이 되었다. 어제 이모가 덮고 자던 이불을 아이가 조심스레 들어본다. 들썩이는 이불로 향기가 난다. 아이는 이불의 냄새를 깊게 맡아본다. "엄마 이불에서 이모 냄새나!" 한다. 겨우 며칠 지냈던 이모 냄새가 이불에서 난다고? 그래서 이불을 들어 맡아봤더니 이모가 쓰던 섬유유연제의 향기가 진하게 묻어있다.
지난번엔 너의 이모가 이번엔 나의 이모가 제주로 오셨다. 엄마와 터울이 꽤 나는 이모는 아이 눈에도 이모할머니가 아니라 이모로 보였나 보다. 이모할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이모로 불렀다.
내가 어릴 적에도 이모가 집에 가끔 놀러 왔다. 오빠와 나는 이모가 놀러 오는 날이 제일 신났다. 우린 이모가 집에 갈까 봐 꼭 옆에 붙어서 잤다. 지금 나의 친척 동생이 우리 아이를 재워주던 것처럼 나도 이모 옆에 붙어서 이모 이야기를 들으며 잠들었다. 이모는 오빠와 나 사이에 잠들었다. 여전히 그 순간이 생각난다. 어릴 적 나의 전부였던 이모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모도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키우고 나도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내 아이를 키우느라 우린 점점 멀어졌다. 가끔 외할머니댁에 가면 얼굴을 보긴 했지만 안부인사정도 주고받는 것이 다였다. 그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게 내가 낳은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초등학생이 되었고, 이모도 아이들이 다 커서 취직을 했다. 그렇게 우린 제주에서 십여 년 만에 제대로 만났다. 애초에 예정된 3일간의 제주 여행은 일이 생겨 일정이 변경되며 그 기간이 일주일로 늘어났다. 오랜만에 만난 이모와 24시간을 일주일 동안 함께 보냈다. 마치 그 긴 시간 서로가 바빠 못 봤던 때를 모두 충족하는 느낌이었다.
이모는 제주의 어디를 가면 제일 좋아하실까 고민해 봤지만, 오랜만에 이모와 조카가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던 그 시간이 충분히 값진 시간이었다.
이모, 이모, 이모
이모는 대체 뭘까. 왜 삼촌이랑은 또 다를까? 나에게 분명 오빠가 있어서 아이에겐 친 외삼촌이 있는데 오히려 아이는 사촌이모를 더 좋아한다. 이모라는 어감이 좋은 걸까 아니면 엄마랑 닮아있는 그 비슷함에 우리가 더 끌려하는 걸까.
나도 삼촌보다 이모이다. 이모 이름만으로도 아련해지는 그 이름, 엄마와 비슷하지만 날 더 잘 이해하는 것만 같고, 나의 이야기를 오픈마인드로 들어주며, 젊고 감각 있으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더 많이 해주던 사람. 지금도 이모를 생각하면 나는 이모 옆에 누워서 자던 그때 마음 그대로이다.
그러나 나는 고모이다. 나는 여동생이 없고 오빠만 있어서 조카들에게 고모로 불린다. 이모는 왜 또 고모랑 다른 지 모르겠다. 분명 이모나 고모나 누군가의 동생, 누나인데 왜... 고모는 이모랑 다른 걸까. 고모는 왜 이모처럼 될 수 없는 걸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나도 고모와 이모는 다르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에겐 고모가 5명, 단 한 명의 이모가 있다. 그런데 고모가 5명이나 되는데 그 한 명이 이모가 더 좋고 마음이 간다.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해 보니 이모, 고모는 영어단어의 'aunt' 한 단어로 불리던데 결국 우린 같은 존재인데...? 우린 왜 다르지?
나는 과연 내 조카들에게 이모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냥 고모에 만족해야 할까? 나는 왜 고모로 태어난 걸까? 잠시 이런 생각도 해본다.
그것은 차차 해결해 보기로 하고 어쨌든 나에겐 이모가 있으니 다행이다. 나의 아이에게도 한 다리 건너의 이모가 있어서 좋고 말이다. 우리에게 이모가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참 기쁘다.